예수와 세례 요한에 대한 왜곡

최세창
  • 1319
  • 2022-10-28 06:30:04
<마태복음 11:16-19>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소통에 중요한 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하는 것이고, 그에 못지않이 중요한 것은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소통에 말을 잘하고, 말을 잘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통점, 또는 공통 관심사가 있는 것입니다. 벼슬에 관한 말을 많이 해도, 벼슬아치에 대한 거부감이 있거나 무관심한 사람과는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당리당략을 고집하는 한, 소통은 되지 않습니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한 심부름꾼이라는 의식이 있을 때에 소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후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시거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귀가 있어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불통의 세대

세례 요한에 대해서 설명하며 칭찬하신 예수님은, 세대의 영적 무지와 영적 몰지각, 모순과 변덕, 왜곡과 비방 등으로 인한 불통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는 약 400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인 세례 요한의 선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받아들이지 않고 배격하는 당시의 세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터넷의 좋은 글이나 슬픈 글에 악플을 다는, 비뚤어진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혼례식 놀이나 장례식 놀이를 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한 편이 상대편을 향하여 흥겹게 피리를 불면 덩실덩실 춤을 추어야 하고, 애곡하면 슬픈 표정을 하고 가슴을 쳐야 합니다. 그런데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으면 다툼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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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살(I. H. Marshall)은 누가복음 7:32의 주석에서, “처음 그룹은 금욕주의자인 요한에게는 춤추라고 요청하고, 축제의 삶을 말하는 예수에게는 애곡하라고 요청하는 유대인들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유일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가진 백성이라는 자만심을 가진 유대인들이, 실상은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배척하는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의 결과는 다 각각 잘난 줄 알기 때문에 불통과 무반응, 단절과 멸망입니다.
문 모 목사님이 소개한 유머입니다.
한 남자가 쓸쓸한 표정으로 역 앞의 국수집에서 5000원짜리 메밀국수를 먹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30년 전부터 거의 매일 점심시간마다 이 가게를 이용했지만, 한 번도 주인과 대화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남자는 주인과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저씨, 오늘 나 퇴직했어요.” “네, 그랬군요. 앞으로 많이 힘드시겠네요.” 대화는 그렇게 중단됐습니다. 별다른 이야기 거리가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남자의 퇴직은 가게를 방문하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갑자기 남자가 먹고 있는 국수 그릇 위로 새우튀김 하나가 얹어졌습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에, 뭐….” 남자의 눈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주인의 따뜻한 배려에 울컥 감동이 밀려온 것입니다. 남자는 퇴직 후에도 자주 들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지갑에서 5000원을 꺼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계산.” “네에, 감사합니다. 6000원 되겠습니다.”
소통되는 것 같으나, 실은 이권이나 힘이나 야합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대인 철학자인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말을 빌리면, 인간인 나와 인간인 너 곧 ‘나와 너’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나와 그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극단적인 예가 납치되거나 포로가 된 외국인들을 인간이 아닌, 마루타 곧 통나무로 여겨 생체 실험을 자행한 극악무도한 만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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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요한을 배척한 유대인들에 대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단식하며 산 것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는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귀신이 들린 자라고 비방하며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배척한 유대인들에 대해,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대조적으로 먹고 마셨습니다. 잔치에 참석하시고, 심지어 세리들 및 죄인들과 함께 잡수셨습니다. 만민을 구원하러 오신 구주다운 예수님의 언행을 알지 못한 유대인들은,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비난했습니다.
사회에서나 종교계에서나, 소위 지적이며 수준이 높다는 자부심과 자만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모른다고 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에 대해 ‘없다’고 단언하거나, 모르는 것에 대해 그럴 듯한 거짓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런 후에는, 몰라서 한 말들이 들통날까 봐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이 금욕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귀신 들렸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세례 요한이 귀신 들렸는지 아닌지 알 만한 영 분별 은사가 없으면, 입을 다물거나 모른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리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하했는데,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만이 아니라, 부자와 관원들과도 어울리고, 식탁을 함께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강림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유대인들, 특히 지도층인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배척에 대해 예수님은,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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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신 주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혜 곧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라는 사실은, 행하신 일들로 인해서 옳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나 종교 행위나 도덕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메시아적 행위가 메시아 곧 지혜임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주 곧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수행하던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주 곧 메시아이신가 확인하게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마태복음 11:4 이하에 나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난치병과 불치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 또는 예수님의 손길로 완치되고, 죽은 자가 소생하는 것을 듣고 본 대로 세례 요한에게 보고하라는 겁니다. 그런 기적의 행위가 증명하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고 하는 복음이 전파된다고 세례 요한에게 보고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웨슬리(J. Wesley)는 독일의 한 목사인 스팡엔베르크(Spangenberg)의 심령이 매우 훌륭한 것을 알고, 자기의 행동에 관한 충고를 부탁한 후에 들은 내용을 일기에 썼습니다. 스팡엔베르크는 말하기를, “내 형제여, 나는 먼저 당신에게 한두 가지 질문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당신 자신 속에 증거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합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놀랐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또 물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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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나는 잠시 멈추었다가, “나는 그분이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압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기를, “옳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압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운명하셨기를 바랍니다.” 그는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 자신을 압니까?” 나는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내가 한 말들이 빈말 같아서 두려웠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목사였던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말 주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메시아이시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가기 위해 기꺼이 주 예수님을 믿고,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은 쉽습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님을 성령을 좇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의 감화를 알지 못할 정도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깨닫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을 귀신들린 자라고 왜곡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요, 버림받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왜곡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의 모든 복을 합친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영생 구원의 복을 차 버렸습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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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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