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계시 중에 한 베드로의 망언 :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최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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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2 06:28:39
(설교 동영상 : 유튜브)

<사도행전 10:9-16>

1. 시작하는 말

주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교를 믿던 유대인들이었으므로, 율법 행위에 의한 구원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혼합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구원받는 데에는,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복음을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결국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1 이하에 언급된 사도 총회에서,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복음이 공인되었습니다.

이 중차대한 복음의 진리가 공인되는 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를 많이 하고, 항상 기도하는 고넬료 백부장에게 환상의 계시를 주셨고, 다음에는, 그와 관련되는 환상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2. 환상 중의 베드로의 망언

하나님의 환상의 계시는 착시 현상이나 환청이나 환시나 이상 심리 등의 주관적인 현상이 아니라, 객관적인 영적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에 대한 말씀은,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로 시작됐습니다.

고넬료 백부장이 환상 중에 욥바에 사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지시를 듣고 보낸 군인과 두 하인이, 구시쯤인 오후 3시경에 출발해서 다음날 육시쯤인 낮 12시경에 욥바 성에 가까이 갔을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기도 시간인 육시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간 것입니다.
당시의 팔레스틴의 집은 대개 방이 하나이고, 지붕은 평평했습니다. 지붕은 나무로 된 마룻대 위에 덤불이나 나뭇가지를 깔고, 그 위에 잘게 썬 짚들을 섞은 진흙 또는 찰흙을 덮고 밟아 다진 것입니다. 집 바깥쪽에는 지붕에 올라가는 층계가 있었습니다. 지붕은 기도나 명상 등의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간 베드로가, 시장하여 음식을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을 때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몽사몽간”의 헬라어 엑스타시스(ἔκστασις)는 ‘무아경’, ‘황홀경’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하고 화려하여 자신을 잊는 상태에서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베드로가 본 환상에 대해 역사가이자 의사인 누가는,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라고 묘사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의 네 귀퉁이가 땅에 드리웠다는 것은, 동서남북의 모든 지역인 모든 나라의 모든 백성들을 포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 보자기 같은 한 그릇 속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규정된 먹을 수 있는 정결한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이 그 그릇 속에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정결한 것이라도 부정한 것에 접촉되면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정결한 동물들은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부정한 동물들은 이방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황홀한 상태에서 환상을 보는 중에, 주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영적 지각이 있는 의사요 역사가인 누가는,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잡아먹으라”는 명령은 율법주의적 고정관념을 떨쳐 버리지 못한 베드로에게는 뜻밖의 명령이었고, 배고픈 그에게는 달콤한 유혹이기도 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명령을 들은 베드로는, 기상천외한 망언을 했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한 베드로의 망언은, 문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므로, 주 예수님을 보고 “주여”라고 부른 베드로는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대답하는 대신에 ‘그렇게 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주 예수님께 대해 ‘주’ 노릇을 한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베드로는 더욱 황당한 일까지 했습니다. 지옥으로 끄는 죄와 불신앙의 사함과 중생,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승천하신 주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 없는 이유까지 설명해 드렸습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베드로가 죄와 불신앙과 죽음과 영원한 지옥의 멸망 길에서 인류를 구원하신 주요, 만물의 주권자요,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요 심판자이신 주 예수님 앞에서 율법의 선생 노릇을 했으니 얼마나 황당하게 웃긴 겁니까? 디모데전서 1:7을 보면,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현대에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순종하는 대신에, 자신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나 자신의 뜻과 소원을 주님께 강요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선천적인 동성애자나 동성애자라고 하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배금주의나 진영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여러 헌금을 하라는 말씀이나, 진영 논리에 반하는 말씀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에는 ‘아멘’ 합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는 사람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좇아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을 위한 주권자이시며 주관자이시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기독교인이라면 구원의 ‘주’와 자신의 생활의 ‘주’가 돈인지 명예인지 권력인지 자기 자신인지, 또는 주 예수님이신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 예수님께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설명한 것은, 아직도 그가 주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율법의 규정에 더 얽매여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주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살아 온 우리는, 주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얽매여 있는 것이 없습니까?

베드로가 황홀한 상태에서 환상을 보는 중에 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황당한 망언을 하자 두 번째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대속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정결과 부정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으므로, 그 주님을 믿고 연합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율법이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죄 사함을 받은 성도인 것입니다. 로마서 10:4을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21 이하에는,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이나 있었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고집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보다 더 나은 지식이나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새것을 깨닫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이 성장하기도 하고, 발전적인 변화가 이뤄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화나 감동으로 인한 영적 사고와 영적 지각이 있어야 하는 복음의 세계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베드로처럼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도, 성령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실수할 수 있고, 오판할 수 있고, 왜곡할 수 있고, 교만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갈 5:16 이하를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했지만, 성령의 소욕이 아닌 육체 곧 자아의 소욕을 따른 베드로는 세 번이나 반복된 일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 가는 것으로 환상의 계시가 끝났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도 계시하시고, 환상을 통해서도 계시하십니다. 꿈의 계시나 환상의 계시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집약인 신구약 성경에 입각해서, 하나님의 계시인지 사단의 궤계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확실한 경우라도, 계시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내 견해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지도와 학문적 작업의 결실인 권위 있는 성경 주석서들을 섭렵하고, 성경 대백과 사전들과 권위 있는 신학서들을 참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들을 바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전 삶에 걸쳐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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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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