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설교(환상의 계시 중에 한 베드로의...)의 성본 행 10:9-16의 주경신학적 연구
최세창
- 1395
- 2022-11-04 05:03:04
환상을 본 고넬료 백부장에 대해 기록해 온 누가는, 여기서는 그와 관련되는 환상을 본 베드로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서로 연관되는 환상은 주님께서 사울을 회심시키실 때에 사울과 아나니아에게 각각 환상을 보여 두 사람을 연결시키셨을 때에도 있었던 일이다. 이 두 가지 이중 환상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환상은 착시 현상이나 이상 심리 등의 주관적인 현상이 아니라, 객관적인 영적 사실이다.
베드로가 본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9】[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로 시작된다.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는, 고넬료 백부장이 보낸 심부름꾼인 두 하인과 한 군인이 구 시쯤(오후 3시경: 10:3)에 출발해서 다음날 제 육 시‘쯤’(페리, περὶ)인 정오 12시경(3:1의 주석을 보라.)에 욥바 성에 가까이 갔을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바로 이 기도 시간인 [제 육 시](12시)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다.
{당시의 팔레스틴의 집은 보통 방이 하나이고 지붕은 평평하였다. 지붕은 나무로 된 마룻대 위에 덤불이나 나뭇가지를 깔고, 그 위에 잘게 썬 짚들을 섞은 진흙 또는 찰흙을 덮고 밟아 다진 것이다. 그리고 집 바깥쪽에 지붕에 올라가는 층계가 있었다.}(막 2:4의 주석).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붕을 기도나 명상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신 22:8, 수 2:6, 8, 삼상 9:25, 느 8:16, 왕하 23:12, 렘 19:13, 습 1:5, 마 24:17, 막 2:4, 13:15, 눅 5:19).
그 베드로에 대해, 누가는 【10】[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라고 하였다.
[시장하여]는 프로스페이노스(πρόσπεινος)이며 ‘몹시 배고픈 것’을 지시하는 형용사이다(R. C. H. Lenski).
지붕에 기도하러 올라간 베드로가 몹시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을 때이었다. 바로 그때에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게 되었다.
[비몽사몽](엑스타시스, ἔκστασις)은 3:10의 “놀라니라”의 주석을 보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엑스타시스(ἔκστασις)는 고넬료 백부장이 본 환상(호라마, ὅραμα)과 달리, 환상을 보는 사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본 환상에 대해, 누가는 【11】[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라고 하였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는 베드로가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네 ‘귀’(아르카이스, ἀρχαίς: ‘귀퉁이들’)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는 일반적으로 동서남북의 모든 지역, 즉 모든 나라의 모든 백성들을 포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큰 보자기 같]은 한 그릇 속에 담긴 것에 대해, 누가는 【12】[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라고 하였다.
율법에 규정된 먹을 수 있는 정결한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이 그 그릇 속에 들어 있었다(레 11:9, 신 14:3-20). 그런데 율법에는 정결한 것이라도 부정한 것에 접촉되면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
나중에 밝혀지는 것처럼, 정결한 동물들은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부정한 동물들은 이방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베드로가 들은 소리에 대해, 누가는 【13】[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이라고 하였다.
잡아먹으라는 것은 아직 율법주의적 관념을 떨쳐 버리지 못한 베드로에게는 뜻밖의 명령이었고, 배고픈 그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 명령을 들은 베드로의 반응에 대해, 누가는 【14】[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라고 하였다.
[주여(퀴리에, κύριε: 2:21의 주석을 보라.)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한 베드로의 대답은 문법적으로나 문장 구성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종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을 보고 [주여]라고 부른 베드로는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대답하는 대신에 ‘그렇게 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주님께 대해 주 노릇을 하였다. 이 점은 그가 주님께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자신이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순종하는 대신에, 자신의 뜻과 소원을 주님께 강요하는 교인들이 적지 않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주권자이시며 주관자이시기를 원하신다. 참된 교인이라면 구원은 물론, 자신의 생활의 주가 돈인지 명예인지 권력인지 자기 자신인지, 또는 예수 그리스도이신지를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한 베드로의 설명은, 아직도 그가 주님의 말씀보다는 율법의 규정에 더 매여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베드로가 들은 두 번째 소리에 대해, 누가는 【15】[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으므로, 그 주님을 믿고 연합한 자들에게는 율법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다(롬 10:4, 14:2).❶ 따라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죄 사함을 받은 성결한 자인 것이다(롬 3:21-22). 그러한 의미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한 것에 대해, 누가는 【16】[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율법의 규정에 의거한 고정 관념을 버리지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자신의 선언을 끝까지 주장하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저자의 로마서 10:4의 주석과 14:2의 주석을 보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출처: 최세창, 사도행전(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318-321.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