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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9강 1:4-5 악한 세대, 대속 제물
최세창
- 1414
- 2022-11-09 19:46:16
이어서 바울은 모든 은혜를 은혜되게 하는 하나님의 최대의 은혜에 대해, 【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설명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즉, 그분의 성육하심과 전 생애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특히, 그분의 지상 생애에서의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에 대한 명상은 오직 한 목적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가장 크신 뜻을 따르는 길은, 바울의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라는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대]는 아이온(αἰών)으로서, 원래 ‘세대’ 또는 ‘시기’ 등 시간적인 세계를 가리켰으나 단순히 현세를 뜻한다(E. Huxtable). 이 말은 또한 “무한히 긴 시간, 일생, 영원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R. T. Stamm).
바울은 여기에 [악한](포네로스, πονρός)이란 말을 추가함으로써, 하나님의 피조물이나 육체적 생명이 아니라 죄에서 비롯된 부패와 타락에 대해 말하고 있다(J. Calvin, M. Henry). 루터(M. Luther)와 헨리(M. Henry)는 “이 세대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사단의 악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악한 세대라고 일컫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악한 세대]에 대해, 바울과 신약 성경은 ‘이 세대’(눅 16:8, 롬 12:2, 고전 1:20, 2:8, 딤전 6:17), ‘이 세상의 세대’(엡 2:2), ‘현 세대’(딤전 6:7) 등으로 불러 ‘저 세상’(눅 20:35) 또는 ‘내세’(히 6:5)와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랍비의 두 세대, 즉 악한 그리고 악한 로마 제국 아래 있는 ‘현 세대’와, 하나님의 의로운 메시야의 지배 아래 있는 하나님의 황금 시대인 '다가올 세대'라는 견해를 따른 것이다(R. T. Stamm, C. R. Erdman).
이와 같은 두 세대의 구분은 “시간적 구분이라기보다 오히려 영적 구분이 그 본체를 이루는 것이다”(黑崎幸吉). 다시 말하면, 내세는 영원하고 완전한 축복의 세대이고, 반면에 이 세대는 한정된 것으로 악한 세상이나 악한 체계 또는 하나님과 대립되는 생활 방식(갈 4:3, 롬 12:2)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신다고 하는 것은, 죄와 죽음과 율법의 저주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권세로부터 분리시키고 구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일을 성취하시기 위한 방도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것이다(4절 후반. 참조: 딛 2:14, 딤전 2:6, 갈 3:20, 고전 15:3, 히 7:27, 요일 2:2, 벧전 3:18 등).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분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고귀한 자신의 신적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것도 우리의 공덕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서였다. 죄의 당연한 대가는 죽음과 멸망임에도 불구하고,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죄인 된 우리에게 자신의 신적 생명을 선물하신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사함 받아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속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는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요일 4:9, 10, 롬 5:7). 이 은혜란 결코 값싼 것이 아니라, “무한히 큰 대가가 치러진”(M. Luther) 엄청난 은혜이며 인간이 갚을 수 없는 은혜이다.
이와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 바울은 하나님께 【5】[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참조: 롬 9:5, 11:36, 고후 9:15, 엡 3:20, 딤전 1:17 등).
[영광]은 독사(δόξα)로서, {바울 서신에 75번 나타난다. 이 말은 관련되기는 하지만,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진 말이므로 보다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이 유익하다. 명사는 동사 도케오(δοκέω)와 관련되며, 의견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갖는다(Ⅳ Macc. 5:18). 나아가서 이 말은 어떤 사람에 대한 좋은 견해, 즉 ‘칭찬’, ‘찬양’, ‘명예’, ‘경의’를 의미하게 되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흔한 영광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Kābhōdh는 ‘무게’, ‘무거움’, ‘짐’(사 22:24)이라는 기본적인 의미가 있으며, 여기서부터 ‘물질’, ‘부’, ‘존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창 31:1). 나중에 ‘빛남’, ‘광휘’, ‘광채’, ‘훌륭함’의 요소가 물질의 의미에 덧붙여졌다. 이와 같이 그 말은 여호와의 임재에 관한, 찬란한 물질적 명백성을 지시하는 데 사용되었다(출 16:7, 사 6:1-5).
바울은 그 말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⑴ 피조물 또는 그에 속한 것에 부여된 ‘찬양’이나 ‘영예’이며, 그 반대말은 ‘욕됨’(고후 6:8) 또는 ‘부끄러움’(빌 3:19)이다. ⑵ 하나님께 돌리는 ‘숭배’나 ‘경의’(롬 3:7, 23, 4:20, 11:36, 고전 10:31 등)이다. ⑶ 어떤 사람에게 명예나 영예를 돌리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의 영광을 높이는 덕이 있는 사람이다(고전 11:7, 15, 고후 8:23, 살전 2:20). ⑷ ‘외적인 빛남’, ‘광채’, ‘찬란함’, ‘광휘’이다(고전 15:40, 41). ⑸ 하나님께서 빛나는 구름에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다(롬 9:4). ⑹ 하나님(롬 1:23, 고후 4:6) 또는 그리스도의 명백한 탁월성, 절대적 완전, 왕적 존엄이나 장엄이다(고후 3:18, 4:4, 딛 2:13, 살후 1:9). ⑺ 하나님의 장엄한 권능(롬 6:4)이다. ⑻ 하나님과 접촉하거나 접촉해 온 자들을 둘러싼 빛이다(고후 3:7). ⑼ 그리스도께서 이미 들어가셨고, 또한 신자가 들어갈 복된 나라나 장소이다(롬 8:18, 딤전 3:16). ⑽ 인간 혹은 사물의 탁월함이다(고전 15:43, 고후 3:10, 엡 1:6, 14, 18, 빌 3:21, 4:19)}(빌 1:11의 주석).
여기서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께 부여하는 영광(독사, δόξα)과 영예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원한 영광 가운데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과 영예를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속성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 가운데서 빛나는 것으로 구원의 목적과 결부되어 있는 영광스런 영예이다”(R. T. Stamm). 따라서 “하나님(예수 그리스도)만이 예배와 찬양의 대상이므로 모든 영예와 영광이 그분께 끊임없이 돌려져야 한다”(M. Henry).
[아멘](ἀμήν)은 구약 성경에서 ‘서약’, ‘진술’ 또는 ‘선언’ 등을 확인할 때 사용하였으며(민 5:22, 왕상 1:36, 렘 28:6), 그것이 예배 시에 기도의 응답으로 발전한 것이다(시 108:48, 느 8:6, 계 5:14 등). 이 말은 보통 문장의 서두에서 ‘진실로’, ‘참으로’, ‘정말로’라는 뜻으로, 찬양 등의 끝에 기원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또한, 이 말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엡 3:21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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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51-55.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