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옥된 바울과 실라의 선교 열매 cf. 종교다원주의신학

최세창
  • 1326
  • 2022-11-08 17:29:08
<사도행전 16:19-34>

1. 시작하는 말

고난 중에서도 더 힘든 고난은, 선을 행했기 때문에 겪는 고난입니다. 선행 때문에 겪는 고난보다 더 힘든 고난은,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정말 있기는 한 건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남의 고난의 원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고난을 겪을 때에는, 욥기 23:10을 상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이 말씀에 잘 맞아떨어진 인물이 바로 바울 사도입니다. 인류의 삶과 영생 구원이라는 점에서, 가장 놀라운 업적을 남긴 바울 사도가 그냥 바울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고난은 그 고난만이 줄 수 있는 보화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보화가 없이 오는 고난은 없습니다.

2. 투옥된 바울과 실라의 선교 열매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에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바울 사도는, 그 놀라운 사랑 때문에 이익이 끊긴 여종의 주인들에게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귀신들려 점치는 불쌍한 여종을 이용해서 돈을 벌던 주인들은, 여종이 귀신에게서 해방되어 정상 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습니다. 실상, 주인들의 이익의 소망은 여종이 아니라, 여종에게서 쫓겨 나간 귀신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만큼이나 위력을 떨치는 것이 재물임을 밝히셨습니다. 누가복음 16:13을 보면,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 같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돈이 개입되면 믿음이 떠나고, 돈의 종노릇을 하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귀신들렸던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끌고 간 저자 곧 아고란(ἀγοράν)은 시장입니다. 당시의 그리스 시장과 로마의 시장은, 사회생활의 중심지로 정치 기관들과 사법 기관들이 있었습니다. 또, 상행위가 이뤄지는 곳으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종교들이나 철학이나 사상들이나 교훈 등의 문제로 질의응답을 하기도 하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귀신들렸던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관원들에게 끌고 갔다가, 상관들인 재판관들 앞에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법 위반과 상관없는 복음 전파의 내용과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준 선행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사람이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모함하며 고소했습니다. 특히, 로마인인 재판관들과 무리에게 나쁜 감정을 유발하려고,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무리가 자세한 사정도 모르면서, 부화뇌동하여 일제히 일어나 송사했습니다. 대중이란 지적인 설득이 아니라, 감정적인 선동에 쉽게 놀아나는 법입니다. 지적인 재판관들도 별로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 재판관들은 철저하게 심문하고 공정한 판결을 해야 마땅하나, 대충 판결했습니다. 대충 판결했지만, 판결 내용은 매우 혹독했습니다.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단단히 지키라고 간수에게 분부했습니다. 옛날부터 권력자나 여론이나 뇌물을 무시할 정도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재판관은 많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법을 어기기는커녕, 귀신들려 점치던 불쌍한 여종을 구해 준 사랑 때문에,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를 맞고 투옥되어 발이 차꼬에 든든히 채워졌습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으면 매를 맞지 않을 수도 있었고, 투옥되지도 않았을 텐데, 왜 밝히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간수와 간수의 권속이 그들을 통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심은 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의 사랑 때문에 억울하게 많은 매를 맞고, 어둡고 습하고 냉하고 탁한 지하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박해자들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도요, 믿음의 사람답게 밤중쯤 되어 기도하고, 죄수들에게 들릴 정도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들의 발은 차꼬에 채워져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품안에 있었습니다. 렌스키(R. C. H. Lenski)는 “간수는 그들의 입술에 족쇄를 채우는 것을 잊어버렸고, 그들의 마음에 족쇄를 채울 수 없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당연한 상황에서 오히려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한 바울과 실라는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뜻밖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큰 지진 때문에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린 것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죄수들의 발목을 채운 차꼬들이 저절로 벗어진 것은 기적으로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 때문에 죄수들은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미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칼빈(J. Calvin)은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사용하시지 않고도 그들을 옥에서 나오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임재의 위엄을 느끼게 하시려고 지진을 사용하신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중 섭리는, 회개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도록 모든 인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인간의 기도 내용대로가 아니라, 때와 상황에 가장 적합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감옥 문이 아니라,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큰 지진 때문에 자다가 깬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당연히 죄수들이 탈출한 줄 생각하여 검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의 법에는, 죄수가 탈출하면 간수가 대신 형벌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사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간수가 검으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뜻밖의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바울 사도가 소리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물론, 다른 죄수들이 다 남아 있다는 소리는, 간수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도 더 복음이었습니다. 감옥 속에서의 기이한 기도와 찬송 소리, 그리고 갑작스러운 큰 지진과 죄수들의 매인 것이 벗어지는 놀라운 일들은 죄수들의 마음속에 지진을 일으켰습니다. 자연스럽게 죄수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바울과 실라 곁에 모여 선 것입니다.

그 모든 놀라운 기적 같은 일에 충격을 받은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사자들로 여기고 믿은 것입니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그는 빛을 구했다. 그러나 참 빛은 이미 그의 마음에 비치고 있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바울과 실라에게 이뤄진 놀라운 믿음의 승리입니다.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했던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나가서 인생의 가장 중차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영원한 구원의 도를 물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6:17을 보면, 귀신들려 점치던 여종은 여러 날에 걸쳐서 바울 일행을 가리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간수는 직접 들었거나, 소문을 들었거나, 바울과 실라에게서 들었을 것입니다.

간수의 진지한 질문을 들은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유일무이한 구원의 진리를 전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 간수와 가족과 집안사람들을 비롯한 이방인들이 믿는 우상들이나 종교 교리, 또는 종교 행위를 구원의 방도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또,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를 구원의 방도로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이러한 모든 것들과 주 예수를 믿는 것을 혼합하거나, 혹은 그러한 것들 중 어느 한 가지와 주 예수를 믿는 것을 혼합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구원의 말씀은 종교다원주의가 비성경적 내지 반성경적인 사상임을 밝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과 실라는 복음 선교의 호기회를 최대한 살려서,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억울함과 매맞은 상처와 고통도 잊은 채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그 모든 고통을 압도하는 영적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간수는 보은의 심정으로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상처가 난 부위를 씻어 주었고, 가족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놀라운 선교의 열매이었습니다. 간수는 파면 내지는 형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처럼 놀라운 믿음의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는 바울과 실라를 집 안에 모시고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간수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을 크게 기뻐했습니다.

(설교 동영상 :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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