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박사의 이론에 대해서는 더 심도있는 연구와 신학적인 논쟁이 필요하며 성급히 복권을 논할 때가 아니다.

현종서
  • 1433
  • 2022-11-08 16:16:56
변선환 박사의 영혼은 어찌되었을까?
그분은 더 높은 심판은 속세인들이 모르는 것 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그가 서울 연회 회원에서 제명되었고 이단이라는 말은 다른 이들이 붙인 속칭이다. 그가 이단인지 아닌지 그의 제자들의 말대로 위대한 신학자로 기독교에 또는 세게에 기여한 인물인지 해를 끼친 인물인지는 하나님이 더 자세히 판가름하실 것이다
그분은 남들이 잘못되었다고 멀리하는 니체를 존중하며, 니체는 나름 하나님을 사랑하며 갈망하는 방식으로 “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했다고 이해하며, 니체를 가까이 했다.-니체 전문학자를 불러 대학원생들과 세미나까지 할 정도였다. 그는 기독교에서 불교로 전향한 어느 학자와도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안다. 중년에 그의 부인으로 맞이한 신옥희 교수도 원효를 연구한 불교학자였다. 그런데 그분도 이화여대 기독교 학과에서 뭘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변 박사는 그리스도와 불타를 동격으로 놓고 사랑한 듯 한다. 그의 책상에는 십자가 외에 불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유명한 절, 불국사를 비롯한 절들을 많이 찾아 본 것으로 안다. 그는 그리스도를 사랑했지만, 붓다도 사랑하였다. 사랑해야 그를 잘 안다고도 하며.
그런데 그리스도에게 올인한 사람들이 볼 때에는 못 마땅하였다. 그리스도를 진정 자기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거듭남을 체험하였다면, 이미 그이 마음속에는 주님이 주인으로 계실터인데 아무리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교주라 할지라도,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무덤을 남긴 한 인간(불타)을 하나님 아들의 보좌를 버리고 성육신한 구세주 예수와 동격으로 보려는 시도조차 못 마땅하게 보였다. ( 이런 것이 오해였다면, 그의 제자들은 이방면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 위대한 분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그가 세상에 이목을 끈 소리가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위성가운데 한분으로 보는 견해 였다. 신옥희 교수는 이화 여대에서 뭘 가르쳤을까? 그 학교에서는 여신신학이 나왔다. 그리고 그 학교 출신 정현경 교수는 WCC 모임에서 무교의 푸닥거리 같은 것을 하면서 많은 원한의 영과 더불어 성령을 불렀다. 성령을 억을하게 죽은 영들과 동격으로 놓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스도에 올인한 그리스도인들이 볼 때, 이 무슨 귀신 작난질인가? 하고 보게 된다. WCC의 타 종교 와 대화프로그램에서 한 일이란다. 이미 기독교계에 성령의 이름으로 이상한 영들이 침투해 있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정교수는 어머니가 무교에 깊이 관여한 분이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학이 사랑이 중요하지 교리가 중요하냐 하는 식으로 자기 교리에 대해 강한 주장을 하거나, 변증학이 상대적으로 거의 발달되지 않은 감리교회, 또 자유주의 신학이 감신의 본류인양 말하는 유동식 교수 같은 이들이 있어 그런줄로 아는 후학들이 많았다. 그러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이가 볼 때에 동의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웨슬리를 교조로하고 있는 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을 중심으로 삼을 수 있을까? 본질에 어긋나는 판단이었다. 그분은 한국고유의 종교를 풍월의 종교라했고. 그는 그러한 무교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그리스도를 전하려고 한 분으로 안다. 그는 기독교를 무교적 정신 토양위에 토착화시켜 기독교가 잘 발전한 것인양 표현 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풍월교가 있으나 나는 그리스도교를 믿는다고 하며 은근히 기독교를 간접전도한 것으로 좋게 이해하고자 한다.
기독교신학자들이 타 종교나 불신 철학도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들과 동거하거나 적당히 섞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에 빠지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종교나 이론들이 있으니,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기독교의 교리와 신학으로서 변증하고 그것들을 학문적으로도 극복하라는 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만 우리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선포하라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한 종교와 철학에 의해서 기독교회의 근본교리가 변질되어가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그것도 신학을 깊이 했다는 학자층에서부터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이들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도 결국은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하는 게 그 목적이라 보고 싶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설명이 충분치 못하여 자칫 오해를 벗겨 내지 못할 수 도 있고, 비숫한점만 말하였지 절대적으로 다른 점을 말하지 않았거나, 분명히 무신론과 유신론으로 또 절대자와의 대화의 종교와 절대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절대자가 되는 그리고 자기자신과만 대화하는 불교와 기독교는 그 경계가 불분명하며, 불교계에 기독교교로 개종한 승려들이 있어 그 차이점을 분명히 말하거늘, 힌두교와 대화한 인도 종교철학자 파니카의 이론에 심취하여 인도교속에 있는 어떤 구원경험은 그 종교속에 숨어 계신 그리스도가 아닐까하는 가정에 힌트를 얻어 한국불교에도 그런 요소가 있지 아니한가가정해 본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힌두교와 한국불교와는 또다른 것이다. 변박사는 철학적 접근을 통해 기독교도 결국 하나의 철학으로 보아 대화를 시도해 본 것이라 본다. 여기서 나는 변박사께서 간과하신 것이 있다고 본 것은 철학뒤에 숨어있는 악마(영적인 존재)에 대한 것이다. 저 유물론과 진화론은 근본 신이 없는 사상이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판단하듯이 맑시즘의 배후에는 자기들은 과학적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지만 악마가 숨어있다고 보는게 바른 이해 일 것이다. 예를 들어 맑시즘과그것의 문화적인 변형인 네오맑시즘이 가는 곳에는 많은 살륙이 일어난다. 인권이 상실되고 자유가 사라진다. 소련 공산주의와 모택동의 문화혁명에서 보았던 열매 였다. 그리고 루마니아 어느목사는 공산정부에 의해 지하감옥에서 20년 갇혔다가 나왔는데, 맑스가 사탄 숭배자였음을 밝혀 냈다. 겉으로보면 맑스는 합리적인 철학도였다. 기독교회는 철학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과 그 말씀의 가장 정확한 해설자이신 성령과 함께 가는 종교이다. 철학으로 설득하려 하지 마라. 이미 성령께서 분별의 은사를 통해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고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어떤 사상으로 읽으면 그 사상의 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라 그 본래의 진리를 왜곡시켜 읽기가 십상이다. 운동권들이 대개 맑스사상으로 성경을 읽어 읽어 예수께서 빈천한자에게 접근한 것을 자본주의 세력에 대항 하기 위한 것으로 보든가 페미니스트들은 예수께서 당시 소외된 여성에게 접근한 것을 무슨 페미니즘을 돕기위해 하시 일 처럼 읽고 그리 선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의 자세처럼 성경을 성경으로,또는 성령의 감동으로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자세로 읽으면 자기자신이 먼저 회개하여 변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역사비평적으로 읽으면 인간 이성( 죄로 인해 많이 부패하고 손상되어 있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못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역사비평도 본문비평이 있어서 그 본문의 원래의 정확한 문장이 무엇이었을까? 본문비평가지고 하기보다. 그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기 보다 인간의 작품이라는 데 역점을 두고 연구하다보면 그 성경의 메시지를 듣기보다는 애초에 내 주관으로 평가부터 하려 들기 때문에 그러한 교만한 자세를 가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할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게 아니라 나의 판단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역사비평을 무조건 다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것도 어느정도 참조하지만 그런 식의 자세로 성경을 읽다가는 성경에 대해 수박겉핥기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웨슬리 선생은 역사비평학 이전에 사신 분으로 그 성경을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읽으며 성화를 이루었던 분이 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교회의 속설로는 영안이 열려야 성경을 제대로 읽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크리스챤 신학자라면 성경적 기독교를 믿는 신학자라면, 많은 타 종교의 교리라든가, 무신론적인(또는 유물론적인) 철학에 대해서 기독교교리의 변증적인 자세로 학문하며 그 결과물을 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신옥희교수는 원효를 공부하되 불교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한 그리스도를 가르쳤어야 하며, 정현경 교수는 무교와 전혀 질적으로 다른 기독교의 성령을 말했어야 했다. -참고로 이대종교학과에는 여신신학이있다. 이게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하는 신학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 반대인듯 보인다.
WCC는 우리들보다 더 보수적인 교단(희랍정교회)도 회원으로 받아들이며 여전히 복음을 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회의라고만 말할 게 아니라. 그런 본질과 다르게 퍼포먼스를 앞세우며 종교다원주의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세력들을 골라내야 할 게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WCC는 누가 뭐라해도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지도층을 장악하고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WCC의 인식을 바꾸려면 그리스도의 유일 구주되심을 주장하는 퍼포먼스를 내 보내기 바란다. 우리 감리교단의 젊은 신학자가 중앙위원으로 들어갔으니 그의 활약을 두고 보겠다.
정치신학면에서도 그 바탕에 맑시즘을 바탕으로 발전시키다 보니 그 또한 신학교에 죄인인식, 회개, 복음 받아들임, 거듭남 성화 더 나아가 사회 성화같은 기독교회의 본래 가르침 대신, 맑시즘이나 네오 맑시즘이 신학교를 장악하여 평화 인권, 평등만 주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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