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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그리스도 예수
함창석
- 1276
- 2022-11-14 18:33:51
함창석
희소망
대 걸이에 걸었으니 가치 있는 옷을 구하기 위해
어두운 달밤이라도 와이 무리를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오르고 한낮이 밝아 오면
날이 선 도끼로 나무를 잘라 다듬으니
오오 으뜸을 바람이라
특수가 모이고 모여 보편화가 되고
주관이 모이고 모여 객관화가 되고
개별이 모이고 모여 일반화가 되니
희망이요 소망이라
희망이 상대라면 소망은 절대가 아니 더냐
그 반석은 그리스도시라
희망이요 소망이로다
성경의 별칭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기와 글쓰기 준말이 말씀이라고 하면
한자어 韓我任 대한민국 韓 나 우리 我 금 책임 任
韓은 해아래 고래가죽을 쫓는 무리니
我는 나 우리 한 생명인 사람이니
任은 임금님 어제나 이제나 하제나 무한 책임을 지니
한아임은 한나님 한우리님
하나님 한울님 하눌님으로 나요 우리로다
희망은 긍정적인 전망으로 바람이겠지만 결과는 부정적일 수도
소망은 사전 상으로는 희망과 비슷하다
다만 기독교 용어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바람이다
새 하늘 새 땅 새 역사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이다
내 안에 오신 한나님 하나님 나라가 아니 더냐
우리 안에 오신 한우리님 하눌님 나라가 아닐까
소망이신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시여
다시 오실 때 지금 여기를 기억 하소서
【Faith Talk】
내 영혼이 말없이 하나님만 바라보니 구원이 그에게서 나옴이라.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시니 내가 흔들리지 않으리라. 무너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자를 언제까지 너희가 단합하여 공박하겠느냐? 너희가 그를 높은 자리에서 끄집어 내리기만을 바라고 거짓말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하고 속으로는 저주하는구나. 나의 영혼아, 말없이 하나님만 바라보아라. 나의 희망이 그에게서 나온다.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시니 내가 흔들리지 않으리라. 나의 구원과 명예가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그는 나의 든든한 반석과 피난처이시다. 나의 백성들아,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에게 모든 문제를 털어놓아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사람은 신분이 천하건 귀하건 다 무익하고 한 번의 입김에 불과하니 저울에 달면 아무것도 아니요 입김보다도 더 가볍다. 너희는 착취를 일삼지 말고 훔친 물건을 자랑하지 말며, 재산이 늘어도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시는 말씀을 들었지만 능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셔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시 62:1-12)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겪은 일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모세 때에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인도를 받아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모두 모세를 따라 구름과 바다 가운데서 세례를 받았고 똑같이 신령한 양식을 먹었으며 똑같이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이 물을 신령한 바위에서 마셨는데 그 바위는 그들과 함께하셨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대부분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도 그들처럼 악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처럼 여러분은 우상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성경에도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난잡하게 뛰어 놀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간음하다가 하루에 23,000명이나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간음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주님을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불평하다가 하나님의 천사에게 멸망당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불평하지 맙시다. 그들이 당한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며 세상 끝 날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로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이 당한 시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십시오. 내가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가 감사하며 받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까? 또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까?(고전 10:1-16)
希자는 爻(효 선이 교차한 모양)와 巾(건 옷감, 천)의 합자이다. 실을 섞어 짠 옷감, 천의 뜻. 나중에 음을 빌어 드물다, 바라다의 뜻으로 쓰였다. 爻자는 두 가지 방식으로 쓰인다. 하나는 ‘배우다’라는 뜻을 전달하는 경우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히 모양자로만 쓰이는 경우이다. 希자에서는 爻자가 모양자 역할을 하고 있다. 希자에 쓰인 爻자는 천(巾)에 새긴 자수(爻)를 표현한 것이다. 자수는 바느질로 천에 문양을 새겨 넣는 것을 말한다. 자수가 새겨진 천은 그렇지 않은 천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러니 希자에서 말하는 ‘바라다’나 ‘동경하다’라는 것은 비싼 천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所자는 음을 나타내는 戶(호 집을 나타냄→소)와 도끼(斤)로 찍은 그 곳이라는 뜻이 합하여 「곳」을 뜻한다. 나무를 베는 소리를 일컬은 것이었으나 나중에 處(처 곳)대신 쓰였다. 所자는 본래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를 뜻했던 글자였다. B.C 470년경의 시가집인 시경(詩經)에는 ‘벌목소소(伐木所所)’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서 所所란 ‘나무를 찍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所자는 본래 나무를 찍는 소리를 뜻하기 위해 戶자는 발음요소로 斤자는 의미요소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장소’나 ‘자리’라는 뜻으로 가차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게 되었다. 望자는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기지개를 켠 사람 위에 강조한 눈의 모양을 본떠 멀리 ‘바라보다’의 뜻을 나타낸다. 또는 (형성문자) 臣(신 내려다보는 일)과 壬(정 사람이 바로 서다→바로 자라는 일)로 이루어진 글자 망(臣+壬)은 높은 곳에서 훨씬 먼 곳을 바로 바라보는 일, 朢(망)은 달이 해와 멀리 마주 보는 만월 때, 望(망)은 같은 글자이나 발음을 똑똑히 나타내는 亡(망)을 글자의 부분으로 삼은 것이다. 나중에 朢(망)은 만월, 望(망)은 바라보는 일이라고 나누어 생각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人(사람 인)자에 目(눈 목)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바라보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망보다’나 ‘엿보다’였다. 후에 의미가 확대되면서 ‘바라다’나 ‘기대하다’, ‘바라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글자도 크게 바뀌었는데, 금문에서는 人자가 壬자가 되었고 月자와 亡자가 더해졌다. 여기서 亡자는 발음역할을 하고 있다.(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희망은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바라는 기대이다. 소망 혹은 소원이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소망’으로 번역되고 있다. 가장 좋은 일에 대한 기대. 성경에서 소망은 헬라 문학에서처럼 단순한 기대나 갈망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소망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소망은 성령의 은사로서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특성 중 필수적인 요소로 소개된다. 사도 바울은 이를 ‘부르심의 소망’이라 표현하였다. 이는 곧,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갖게 되는 영광스런 소망을 가리킨다. 이 소망은 성도를 부르신 주께서 그 구원을 완성하시는 때, 곧 만물이 주의 통치 아래 온전히 거하게 될 때 성도가 영화롭게 됨으로써 구현된다. 따라서 성도는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생에 대한 기대를 가짐이 마땅한데 바울을 이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라 하였다. 바울은 이 소망을 인하여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다고 했고, 그럼에도 성도들을 향해 항상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라고 권면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둔 성도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더욱 주를 찬송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여호와를 경외하되, 정함이 없는 재물이나 세상 이익에 집착하는 소망 없는 사람의 모습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가스펠서브, 소망, 라이프성경사전, 2006)
구원은 넓다, 완전하다, 해방하다의 어근을 가진다. 모든 결박과 압제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안전과 평안을 얻게 됨을 뜻한다. 구원의 우물은 남은 자에게 허락된 은혜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우물물에 비유가 되고 있다. 이것은 저축하지 못한 우물에 대조가 되며 믿는 자에게 그 배수의 생수가 넘쳐나게 하시는 예수님에게 성취된다. 그리스도 예수는 소망의 반석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