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구원의 길과 인본주의 철학적 구원의 길

현종서
  • 1525
  • 2022-11-13 19:53:09
우리의 신앙과 행실의 표준은 신구약 66권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죤 웨슬리 선생의 말이요, 종교개혁 이후 모든 개신교회의 선언이다.

기독교의 구원론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를 지어 저주속에 사는 인간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길을 여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누구든지 저(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구원함을 주신다고 하는 (요3:16)것을 핵심진리로 믿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라, 아부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그리고 신약 시대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의 말씀이요, 또 사도들의 증언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계시 진리이기도 하다. 그것을 잘 요약하여 표현한 것이 사도신경이다.

그런데 소위 이성을 최고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이 나타나, 성서의 계시진리에 대해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래의 성경적 구원론에 대한 도전을 하며 새로운 구원론을 만들어 내어 기독교가 그 바탕으로 삼고 있는 성경진리와 구원의 교리를 변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의지의 반영인 구원의 계시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인간이 마음대로 바꾸고 또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경도 인간의 작품으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진리라는 이해 보다 여러 신앙인들의 신학이 반영된 저작물로서, 인간의 작품의 모음집이라는 이해를 가지는 것이며, 성경의 저자들은 그 당신의 세계관의 지배하에 있어서 그러한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니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많이 달라진 이 시대의 철학에 맞추어 그 신학들 역시 재 구성되고 재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 또한 성서기자들의 작품 모음집으로 인간의 철학이 늘 변화하듯이 기독교의 진리 또한 더 발전적으로 변화하며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과 다른 차원에 계신 즉 영원한 시간속에 계신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그러한 존재 조차도 인간이 자기 생각을 투사하여 만든 분이라는 생각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신을 만들기도 하고, 변개 시키고, 니체처럼, 죽이기도 하고 또 그 죽은 신을 다른 형태로 살리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초월적인 존재로 계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적인 불신앙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이성절대주의 사상이 그동안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하에 신학계에도 침투하여 성경의 계시성을 부인하다보니 성경의 권위가 하락되고 신앙의 표준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교리도 바꿀 수 있으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해체이며, 이미 구라파를 넘어 미국에 상륙, 한국에 그런 곳에 유학한 사람들이 그런 사상들을 자꾸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대의 우리들은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하는 시기에 와 있다. 성경자체가 가르치는 하나님을 믿고 그가 가르쳐 주신 구원의 길을 믿고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과학과 철학의 발달하에 따라 달라지는 초월적이며 영적인 면이 사라진 수평적이며 물질적인 구원으로, 현세적인 유토피아의 왕국을 이루게 된다는 철학의 길을 따를 것인가 또는 영적이며 초월적인 것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과 천사들, 사탄과 그의 부하들인 사귀들이라는 구별이 분명히 있는 데, 그 구별을 모호케하는, 혼합된 영성( 무교의 영과 성령을 동일시) 기독교와 타종교의 구별, 타력 구원과 자력구원의 구분이 사라져 기독교에도 자력 구원이 있는 듯(신비를 통해)하는 새로운 자력구원설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결단을 해야 할 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죄인식과 회개가 사라지고, 정신속에 하나냐 둘이냐 그 분리가 하나로 합쳐 지면 된다는 철학, 기독교적으로도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과 신비적인 합일을 이루는 듯한 신비주의, 이런 신비주의는 힌두교적인 신비주의로서 하나의 물방울이 큰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 식으로 신인 동질설로서,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자와 피조물, 하나님의 계명과 불순종을 통한 죄인 됨, 회개와 용서의 과정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런 설을 우리 스승이 말했다고 하고, 친구가 말했다고 하여 위대한 새 진리이고 이단이라 하지 말고 그를 복권시켜 주자하고 또는 역사의 종말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때까지 한 교회안에서 함께 자라도록 놓아 두자고 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교회 밖의 세상에서 그러하다 하였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안에서 그렇게 하라 하신 것이 아니며, 오히려 너희를 부패하게 만드는 누룩을 제하여 버리라고 하였다.

지금 자유주의 신학은 원죄와 십자가를 통한 대속의 진리를 싫어하여, 예수의 죽음은 한 의인의 죽음일 뿐이며, 부활은 몸의 부활이 아니라 기억속의 부활이며 역사적인 존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모든 종교속에 숨어계신 그리스도를 인정하며, 그리고 그런 그리스도를 보내신 한 하나님을 한 구원주로 모시자. 그러면 종교간에 파차 싸울일 도 없고 자연 평화속에 함께 공존하며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리스도도 그런 하나님도 안계신 것이 문제인 것이고 그런 구원의 길을 성경은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본주의 철학자의 상상의 산물일 뿐인 것이다. - 비현실적인 것이며 하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기독교는 성경(구약)과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대속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의 강림이 제자들에게 임함으로 이루어진 것인 까닭이다.
(최근 미국 감리교회는 웨슬리 구원론(성화)을 따르는 이들과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인본주의적으로 동성애자들까지도 포용하자는 자유주의 신학추종자들 간의 대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자세히 아는 이가 이 게시판에 소개해 주기 바란다. 곡식과 가라지가 갈라지는 싸움이 아닐까? 우리 한국교회에도 이런 편가르기가 일어날 것을 미리 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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