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예수께 향유를 붓다

이승미
  • 3
  • 2019-04-18 00:00:21
[vc_row][vc_column][vc_single_image image="43160" img_size="full" alignment="center"][vc_column_text css=".vc_custom_1550128414854{margin-top: 20px !important;margin-bottom: 20px !important;padding-top: 10px !important;padding-right: 10px !important;padding-bottom: 10px !important;padding-left: 10px !important;background-color: #f7f7f7 !important;}" el_class="manna-title"]

마리아, 예수께 향유를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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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 짜  :  04·18(목) 세족목요일

  • 찬  송 :  211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 성  경 :  요한복음 12:1~11

  • 요  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7)


[/dt_vc_list][vc_column_text css=".vc_custom_1550128465862{margin-bottom: 30px !important;border-top-width: 1px !important;padding-top: 20px !important;border-top-color: #c4c4c4 !important;border-top-style: dashed !important;}" el_class="manna-content"]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러나 복음서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행동한 인물에 대한 증언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복음만 보자면, 유월절이 가까울 무렵 베다니에서 잔치가 벌어졌고,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매우 값진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고 보도합니다.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앞서 나온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아무래도 가장 합리적입니다.
삼백 데나리온(한 데나리온은 당시 남자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나 하는 값나가는 향유를 발에 쏟아 허비하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로 시비가 벌어지는 가운데,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가 ‘나(예수)의 장례할 날’을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십니다(7). 그런데 정말로 예수님의 장례를 염두에 두고 마리아가 향유를 부었다고 추정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오라비가 살아남은 것을 고맙게 여기는 마리아의 단순한 환대와 행동이, 원래의 의도를 넘어서는 의미와 효력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셈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3).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다는 이야기(13장) 역시 요한복음에서 돋보이는 일화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신 다음에 예수님은 서로 발을 씻어 주라시며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3:14~15). 그렇다면 마리아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행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자신의 행위가 그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과연 알고 행한 것일까요?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환대한 일은 자신도 모르게 주님 일행을 접대한 결과가 되었습니다(창 18장).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사소한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인지는 우리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다한 행동들은 원래의 취지를 넘어, 하나님의 뜻을 촉진하고 성취하는 가치를 부여받습니다.[/vc_column_text][vc_column_text css=".vc_custom_1550128483837{margin-bottom: 10px !important;border-bottom-width: 1px !important;padding-bottom: 5px !important;border-bottom-color: #c6c6c6 !important;}" el_class="manna-footer1"]

주님의 뜻을 모르고 함부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vc_column_text][vc_column_text css=".vc_custom_1550128495174{margin-bottom: 30px !important;}" el_class="manna-footer2"]하나님, 주님의 거룩하고 크신 계획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큰일을 거창하게 하려는 의도를 거두고, 작은 일에도 마음을 다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행동이 언제나 주님의 사랑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vc_column_text][vc_column_text css=".vc_custom_1550128504998{margin-top: 30px !important;margin-bottom: 30px !important;border-top-width: 1px !important;padding-top: 20px !important;border-top-color: #c9c9c9 !important;border-top-style: dashed !important;}" el_class="hm-writer"]

정명성 목사 _팔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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