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임춘희
- 2049
- 2016-03-09 03:20:48
그것은 사랑과 평화, 연약한 사람도 존중히 여기는 세상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염원을 짓밟는 수많은 음모들, 악행들에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거짓된 사랑과 거짓된 평화가 아니라 참된 사랑과 참된 평화에는 반드시 정의가 필요하다. 정의가 없는 사랑과 평화는 물거품이요 묘연한 안개와 같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사람을 낚는 평범한 어부요, 약육강식의 동물적 지배원리를 알지 못하는 순진한 토끼에 불과하다. 그러나 반대 세력은 항상 강성하고 거대한 포식자들이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정의의 편에 설것인가, 아니면 원수의 편에 설것인가.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목회의 현장이 균형으로 자리매김 되길 원하신다. 마치 새가 양 날개로 균형을 잡고 하늘을 날아가듯 주께서 나에게 힘을 주셨고, 용기를 주셨다.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아주어라. (이사야 1, 16)
정의를 찾는 일, 악한 일을 멈추고 악행을 일삼는 자들과 모사를 하지 않는 삶을 주께서는 바라신다. 주저하지 않고 분노하는 자들, 즉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감리교회를 바꿀 것이다. 지금도 음흉하고 악한 자들은 남의 밥을 가로채고 물마저 엎지른다. 그들은 쥐처럼 몰래 숨어서 죄를 범하고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며, 모른다며, 발뺌을 빼고 시치미를 뗀다. 그리고 기회주의자를 포섭해 본질을 훼파하고 거짓말을 퍼뜨린다.
그들의 악행을 막을 자 누구인가. 공의로우신 주께서 바로 소수의 사람을 택하여 악과 정면으로 싸우도록 하신다. 택함받은 자들은 주님의 꽃이 아니라 주님의 군사요 창검이다. 여기서 택함받은 자들이 침묵하면 정의가 사라진 감리교회는 거짓된 사랑과 거짓 평화가 우상으로 모셔져 섬김을 받게 될 뿐 다수의 연약한 자들은 그 구조적인 악에 의해 아우성을 칠것이다.
참된 예언자란 신앙,제도,조직의 파탄이라는 위기를 줄기차게 경고하는 존재여야 한다. 예언자가 없는 세상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 같아서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진실한 사람일지라도 좋다고 잘한다고 박수치는 로봇 같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감리교회는 희망은 없을 것이다.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진정 살아서, 살아있어서 귀하고 선한 영혼들의 세계를 밝혀나갈 것인가. 시방 사랑과 조화, 이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정치는 지옥을 연상케 하고 있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고, 친구를 팔아야 내가 성공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다.
감리교회의 정의와 개혁을 위해 조그만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고 강건너 불구경을 한다거나 자기 혼자 배 따숩게 지내면 그만이라 여기는 동료들의 무관심과 도피, 외면과 기피 그리고 감리교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람들의 글을 펌하하고 비상식적인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는 자들이 정치보다 백배 심각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