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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선교연회 개최할 수 있겠는가?.....
오재영
- 2937
- 2016-03-30 19:49:58
온갖 억측과 떠도는 소문들 때문인지 교단에 속한 한사람으로 기대보다는 염려하는 마음이 앞선다.
연회가 개회되면 전례에 따라 성찬예식을 비롯하여 설교와 미래의 교단을 이어갈 교역자들을 세우며, 각종 순서에 따라 예수그리스도를 빙자한 말의 성찬들 또한 난무할 터인데, 지금의 그 영성으로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분쟁마다 상대가 있어 한편의 책임만을 지적함이 옳은 것은 아니나 누구든지 십자가를 중심으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을 구도자(求道者)라 한다면 지금 누구보다도 이교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 참담한 사태에 대하여 감독회장을 비롯한 관리자와 30여명의 연회를 대표하는 이들은 다른 이를 원망하기 이전에 엄위 앞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낮아짐의 결단과 다짐이 있어야한다.
비단 호남 선교연회 만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 우리들의 모습 중에 일부의 사람들의 행태는 막장드라마도 그러한 저질이 없다.
도대체가 일평생동안을 성경을 빙자하여 살아오고, 중요한 자리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온갖 대접을 다 받았으면서도 막상 자신에게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에 걸 맞는 성직자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동안 긴 세월을 입을 열어 십자가를 말하고 섬김을 가르쳐 왔을 터인데, 자신이 책임을 감당하는 십자가를 지는 이가 없다. 남은 가르치고 자신을 가르치지는 않았는가?
타 교단에 비하여 특별히 교세 열악한 선교지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섬겨야할 자리에 십 수년을 있으면서도 자리에 합당한 올바른 본은 보이지 못하고 걸핏하면 “명예훼손”이란, 자신을 부인하고 죄인 됨을 고백하는 성직자라면 거론하지도 않는 생소한 용어로 협박과 겁박을 일삼는 이 못된 버릇들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온 버릇들인가? 오늘 우리 교단의 중요한 책임을 맡은 이들 중 일부의 행태들을 보노라면, 하나같이 “리더십바이러스” 에 감염된 사람들이다. 그토록 포용하지 못하고 감당하기가 버거우면 내려놓으면 된다.
지금 호남선교회연회가 속한지역이 어떤 곳인가?
오직복음 때문에 20대의 젊은 나이에 태평양을 건너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살신성인으로, 아펜젤러 선교사가 생을 마친 곳이며, 주님 앞에서 구도자의 섬김이 어떠한 것임을 친히 몸으로 보인 금산교회의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그러한 자리에서 자신이 십자가를 지려는 마음은 없이 연약한 이를 섬기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려고 했다는 말인가?
지금 영적 맹인이나 다름없는 이교도 대통령의 결정으로 익산에 건설되고 있는 수 십 만평의 이슬람의 “할 랄 식품공장” 때문에 조국의 미래를 염려하는 이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기도회와 함께 뜻을 모으고 있는데, 시대의 위기에는 눈과 귀를 막은 채로 서로 고소 고발이나 하며 자리다툼으로 소일하고 있는 사람들, 지금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면 문제가 해결 되는가?
지금 교단의 책임을 맡고있는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누구나 예외가 없이 때가되면 사역의 현장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교만하고 오만하면 떠날 때와 머물러 있어야할 때를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주님은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엎드리는 사람에게 그 때를 알려주시기 때문이다. 그동안 긴 세월 오직 은혜로 그만큼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면 이제 남은 생은 자신에게 베푼 교단을 위하여 보답하는 겸손의 모습을 기대한다.
연회를 진행하기에 앞서 분쟁의 와중에 있는 이들은 상대를 향한 증오심과 정죄하는 마음들을 버리고 신앙의 기본인 화해의 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만약 타성에 젖어 고집과 편견에 매여 가볍게 처신함은 거룩함을 빙자한 또 한 번의 죄를 더할 뿐이다. 그에 대한 대가는 가볍다 할 수 없는 본인과 우리 교단과 그에 속한 우리 모두에게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