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선교연회원에게 드리는 글.

민관기
  • 2636
  • 2016-12-24 23:51:42
호남은 중요지역이기도 소외지역이기도 합니다.
고대사와 중세사는 빼고 갑니다. 고려사엔 호남은 경계대상지역입니다.
조선사에선 관서지역이 경계의 대상이 되고 호남은 곡창지대로써의 위상을 인정받아 경계의 대상에서 풀립니다.
또한 임진왜란시 나라를 왜로부터 수호하엿다는 결정적 공로도 잇지요. 호남의 곡식으로 임진년의 상상초월 피해는 숙종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엇습니다.

이러니 다시 관리들의 수탈이 강화됩니다. 많아 졋냐? 더 내놔하며 빼앗아 갑니다. 바로 정조 사후 순헌철종기 자리를 돈주고 산 탐관들이 지나친 수탈을 자행합니다. 동학이 창도되엇고 이들은 탐관들을 탄핵하다가 왜군에 의해 수만의 피해를 받습니다.
1905년 을사늑결 이후 동학의 피해를 딛고 일어서 대규모 의병전을 또 치르어 내고 결국 1912년 남한 대토벌작전으로 전멸을 당합니다.

참고) 경기 강원 충청 경북권의 의병들은 열세를 느껴 연해주와 만주로 일시 피신합니다. 하지만 호남은 넘 멀어 갈데가 없고 이미 동학때 피해당한 가족이나 동료의 원수를 값아야 한다는 의식이 잇어 결사항전을 해던 것이죠.

31운동시 호남지역에서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지 않고 소규 항쟁이 일어난 이유.
이미 순헌철종기 수탈로 가진게 별로없고 동학으로 의병전으로 역량이 소진되어 나설 지도 그룹이나 세력이 너무 약세엿어요.

그후 광주학생운동시 호남인들은 전력을 만회 즉 호남여인들이 열심히 아기낳고 일하여 역량이 회복되어 전국적 맹휴 투쟁 등을 신간회 등과 일으키죠. 사회주의 사조가 대량 유입되어 학습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거 일어납니다. 다시 탄압으로 이들의 주력은 산속으로 들어가 항일유격전을 벌이는 이들로 다시 한번 무장화의 길을 갑니다.

해방이 되어 이승만 진영은 호남을 그다지 우대하지 않고 유격군 소탕에 골몰하고 625로 더욱 거세게 무장화되자
완전소탕의 길을 1912년 남한대토벌시처럼 그렇게 합니다. 다시 한번 소탕 되고 호남엔 여인과 아이들 몇의 지주와 농민만 남고 박정희의 경제개발시 철저한 호남소외전략인 저임금정책을 위한 저곡가 정책을 펼처 수 맣은 농민과 아들과 딸들은 도시로 도시로 밀려듭니다. 그야말로 산업은 없고 사회자본 축적은 전혀 없는..


결국 내부 모순이 부마로 부터 폭발하여 박정희는 시해되엇고 서울의 봄인가 하더니 전두환의 더 지독한 군사정권이 들어서 호남 말살의 정체가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입니다.
호남에도 수재들이 많이 납니다.
다만, 이들은 가난하여 공무원이나 법대 등을 엄청선호합니다. 이들은 절치부심합니다.
언제나 우리가 모멸의 상태로 살수는 없다는 결기를 가집니다. 15 여년뒤 드디어 호남 출신의 국가 리더가 우리민족 역사에서 처음으로 집권을 합니다.


호남인들은 이젠 모멸감을 별로 느끼지 않게 된것이고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에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루어 낷다는 자부심의 지역이 되어 많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려는 이들의 구애가 앞으로 많이 더 이루어 지리라 봅니다.

지역선교하며 지역에 대해 더 섬세히 알려는 노력을 가져주시기 당부드리고 이미 알고 계신 내용도 많긴하나 몇가지는 혹 놓친 부분이 잇지 않을까하여 글을 씁니다.


성탄과 새해에 하늘의 크신 은혜가 임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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