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깽이 감리사 Vs 부지깽이를 든 감리사

관리자
  • 2112
  • 2017-04-22 15:33:09
연회 시즌인지라 여기저기 연회가 열리고 감리사 선거로 또 다시 진통을 겪는가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감리사와 감독 감독회장의 선거로 감리교회 전체가 들썩이고 시끄럽습니다.

이 아래 글을 올리신 분은 3번이나 감리사직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자랑하시는 건지 아니면 내용 그대로 감리사의 직을 성실히 수행하시겠다는 진실한 고백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크 또 혼날 소리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줄 믿지 뭔 소리야! 그러니 네가 그렇게 된거 아니냐?"하고 핀잔하실 분도 계실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전 목사로 믿고 감리사로 믿었더니 지금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 곱게 들려지지 않는 제 현실이 저로서도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요.

2년 전 어느 감리사로 당선된 목사님은 자신이 감리사로 지방을 위한 부지깽이가 되겠노라 당선 소감을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부지깽이 감리사론은 듣기엔 너무도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 그 분에게 이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지깽이 감리사, 참 좋은 말씀이긴 하신데 너무 자신을 태우지는 마십시요."라고 말입니다.
이 또한 아주 건방진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그 분에게 가장 필요한 말로 여겼기에 말씀을 드린 것 뿐입니다.
전 좀 그렇습니다.
바로 바로 생각난 것을 너무도 직설적으로 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답지 못한가 봅니다.
그래서 그 동안 제 자신도 모르게 목사놀이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방을 위한 부지깽이가 되겠다 하신 그 감리사님은
서서히 당신이 약속한 부지깽이 감리사론은 점점 사라지고 감리사직을 부지깽이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부지깽이 감리사론'은 사라지고 '부지깽이를 든 감리사'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자신이 부지깽이를 든 감리사가 아닌 부지깽이로 헌신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제 판단이 옳은지 아니면 그 감리사님의 생각이 옳은 지는 제 3자들이 보고 판단해야 할 몫인 듯합니다.

그 감리사님은 자신이 들고 있던 부지깽이로 이렇게 저렇게 지방내에서 휘졌고 있었습니다.
때론 무모하게 때론 제 멋대로 때론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때론 자신의 윗분을 위해서 말입니다.
불법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위법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감리사의 행정치리가 곳 장정이 되고 법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지방 목회자들은 쉬쉬합니다.
왜 그런지는 그 분들에게 직접 듣고 싶습니다.
감리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저를 개인적으로 찾아와 얘기를 나눈 분들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시는 듯 했습니다.
도리어 부지깽이든 감리사님의 모습이 옳지 못하다 주장하는 제 의견만이 건방짐이고 무모함이고 쓸데없는 짓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은 감리사가 휘두는 그 부지깽이를 무서워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감리사가 되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라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감리사가 감리교회의 꽃이라 누군가 그랬다지요?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감리사가 되면 그 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 이전에 감리사직을 수행하신 분들도 따지고 본다면 그리 다른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감리사의 꽃으로 부지갱이를 든 감리사는 지방내 크고 작은 모든 문제에 있어 그 결정권을 갖으려 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감리사는 향기가 있는 감리교회의 꽃이 아니라 냄새가 고약한 부지깽이를 든 감리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감리교회의 꽃이 변하여 스스로 부지깽이를 들어 휘두는 못된 꽃이 되어버리는 것이 일쑤였던 것입니다.

감리사가 된다는 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 교회의 크기가 크던 작던 지방의 어른이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지방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위에서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의 대상이 되고 지방의 이러 저러한 일들에 대하여 모든 일들이 지방 회원들이 보기에 좋아할 만하도록 노련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제가 준회원으로 허입하던 때,
시골 교회이고 작은 교회이다 보니 구역회원의 숫자가 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 대로를 통계표로 작성하여 보고 했더니, 장정에 의하면 준회원으로 허입할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당혹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음 조리며 어떻게 해야하나 한 참을 기다렸더니 제게 돌아온 답은 열심히 목회해서 몇 년 후엔 반드시 구역회원들을 채울수 있는 교회로 부흥시키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준회원으로 허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서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기에 각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만약 그 때의 그 각서를 누가 찾아와 각서대로 이행했느냐? 묻는다면 그러지 못하고 이곳 남원으로 떠나 왔으니,
전 그 각서 때문이라도 목사답지 못한 자인 것 입니다.

어쩌면 법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적용한다면 저는 그 때 목사직을 정직 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선 저는 나도 모르게 진짜 목사놀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교회의 크기나 숫자가 저와 비슷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들은 각서를 쓰지 않았다 들었습니다.
왜 그런가 기 이유를 알아보니 이미 통계표를 거짓으로 보고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화가 났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정직하게 보고한 나 같은 사람은 각서를 쓰고 거짓으로 통계표를 작성한 저 놈들은 그냥 무사통과이고..." 그 때 전 목회의 첫 쓴맛을 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에 돌이켜 보면 비록 각서를 작성하게 하였어도 장정에 따라 준회원이 될수 없는
저를 준회원으로 허입시키려 하셨던 어른들의 배려가 있었던 것이란 사실을 이젠 알겠습니다.

그 시절에도 장정은 서리 전도사들에게 시퍼렇게 살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정대로 처리하지 않고
은혜롭게 일들을 처리 해주려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이 바로 감리사를 비롯한 지방의 어른들이셨습니다.

그러니 비록 각서를 쓰게 했을진 모르지만 장정에 따라 자격이 되지 못하는 후배 목회자를 돕겠다는
어른들의 배려가 담겨진 각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이 옳았다 그러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시엔 장정도 모르고 서투른 서리 전도사들을 길들이려 하기 보단
지방 어른들은 지방의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 뭔가 도움을 주려 했었단 것입니다.

그 때에도 분명 줄세우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니편 내편 편가르기도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요즘에 늘 문제가 되는 부담금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 목회자들을 압박하거나 협박을 하거나 길을 가로막으려 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때도 알게 모르게 그런 일들이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전 그러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곳 남원에 올 때도 인사구역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목회지에 나갈 때에도 인사구역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다 감리사님을 비롯한 지방 어른들이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불법이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였는지 전 장정에 대하여 아무것도 잘 몰랐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인사구역회가 뭔지, 지방회 회원권이 뭔지, 연회 회원권이 뭔지를 새롭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몰라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20여년간 아무런 탈없이 목회를 해온 제겐 말입니다.
그러나 이젠 모르며 목회했던 그 모습이 문제가 되어 목회도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변했고 목회자들의 세계도 예전과 같지 않은데,
전 여전히 적어도 20여년 전의 제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내가 장정을 몰라도 지방 어르신들이 이러 저러한 모습으로 도와주고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저는 제게 문제가 발생해도 어르신들이 해결해 줄것이란 의타심을 갖고 살았던가 봅니다.

재판위원장께선 "왜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목사님께 사직청원서를 낸 것이냐?" 물으셨습니다.
전 참으로 어리석은 답을 하였습니다.
"그 분은 지방의 어른 목사님이십니다. 그러니 감리사와 저 사이에 발생한 이 갈등과 저와 제 가정이 처한 위협으로부터 도와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이란 그런것이 아닌가요?

나도 모르게 지방 어르신 목사님께 직접적으로 요구도 하지 않은 요구를 간접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어리석은 목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참으로 목사 놀이를 하느라 진짜 목사가 뭔지를 까마득하게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그 동안 자랐고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는 데도 아직까지 입을 벌리고 떠먹여 달라고 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랬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지깽이를 든 감리사님은 어찌 어린애처럼 구느냐고 책망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저는 참으로 어리석고 무능한 자입니다.
부지깽이를 들었다는 이유로 그 감리사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동안 저도 모르게 목사놀이에 깊이 빠져 있었던 어린 아이에 불과했는가 봅니다.

지금 이렇게 되어서 하는 소리지만
그렇다고 감리사님을 비롯한 지방의 어른들이 어리숙한 후배 목회자들을 시시콜콜 감시하며 잘 하는지 못하는 지 감시자의 모습이 되어야 할 필요가 진정 있을까요?

모르면 가르쳐 주고, 실수하면 지적해주고, 보지 못하면 보게 해주고, 듣지 못하면 들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어른이고 그것이 목사들의 책임이 아닐까요?

만약 저 처럼 목사놀이를 하고 어리숙한 목회자가 있는 것이 보이면 '야 너 언제까지 목사놀이만 하고 있을거냐? 이젠 정말 목사답게 행동해야지....'라고 충고해 주시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고 제대로 길을 걷지 못하면 그 길을 가르쳐 주시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장정을 몰라 올무에 걸리게 되었거든 가르쳐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줘야 진정 어른이고 목사다움은 아닐런지요?

어쩌면 그 모든 일들을 저희 지방 어른 목사님들도 제게 하셨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전 그 말을 따르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노 목사, 넌 약자야 그러니 괜한 자존심 세우지 말고 네가 먼저 용서를 빌어라. 그리고 네 자신의 길을 걸어가란 말이야!"

"노 목사, 목사는 말이야! 뭐니 뭐니 해도 교회 사이즈야. 교회가 목사의 말이고, 힘이고 목사의 능력이야, 그러니 어찌하던 교회 사이즈를 키워야 해,"

"노 목사, 목사도 자식이 제일이다. 목사들도 자식 중 의사가 있으면 의사 자식을 둔 목사들끼리 모이게 되고, 선생 자녀를 둔 목사는 선생 자녀를 둔 목사들끼리 모이고 공무원을 둔 목사는 공무원 자녀를 둔 목사들끼리 모인단 말이야.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그러니 자식 잘 되게 가르쳐야 해, 자식이 잘 되면 목사도 잘 되고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랑할 만한 자식이 없으면 또 그냥 그런 목회자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는거야!"

"노 목사, 어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나! 목사는 하고 싶은 말 다하는 게 아냐! 때론 잘 못을 하는 것이 보여도 그냥 넘겨주는 거야! 그 사람하고 싸워서 뭔 이득이 된다고 싸워! 그런건 다 부질 없는 짓이야! 인생은 짧은거다! 알아?"

그러나 전 그 분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의 말씀이 일리는 있어 보이지만 그리 성경적이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의 충고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뜻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목사놀이에 빠져 있는 제 자신이 지금 진짜 목사의 일을 감당하는 목사님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지깽이 감리사, 아주 멋진 감리사입니다.
그러나 부지깽이를 든 감리사?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감리사직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는 감리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지깽이를 든 감리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직무유기가 태반이고 직권남용이 태반입니다.
그래서 감리교회의 꽃이란 찬사가 붙은 감리사의 직위를 더럽히고 추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악취를 풍기는 꽃도 분명 꽃일 겁니다.
세상엔 그런 꽃도 있다 하더군요.
그러나 가만히 보십시요.
악취를 발하는 그런 꽃은 대부분 곤충을 잡아 먹는 식충 식물입니다.

꽃은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꽃과 나비 또 다른 곤충들을 이롭게 하는 꽃이야 말로 진정한 꽃이라 생각을 합니다.

이번 새로 선출되시는 모든 감리사님들이 진정한 감리교회의 꽃이 되시길 바랍니다.
새로 선출되시는 감리사님들은 모두 지방 회원들을 이롭게 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목사놀이에 빠져 목사직에서 쫓겨 나게 생긴 주제에 또 다시 시건방진 충고를 하는것 같아 죄송합니다.)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꽃들 말입니다.
부지깽이 감리사는너무도 멋집니다.
그러나 제발 부지깽이를 든 감리사는 되지 마십시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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