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놀이에 빠진 목사 Vs 목사 놀이에 빠진 피고

관리자
  • 2287
  • 2017-04-22 04:54:26
어제 사회법을 거부, 부인하면서까지 호선연의 재판이 강행 되었습니다.
관리감독님의 싸인이 있었다니 모든 책임은 관리감독님의 몫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재판이 불법적인 재판인 것을 알고도 감독회장님께 직언을 하지 못한 본부 참모진들을 비롯하여
모든 감리교회에 속한 목사들에게 간접적인 잘 못 있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이 불법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아니 더욱 정확하게 표현을 한다면 불법임을 알고도 무시한 채 고소한 감리사, 지방 실행부위원들,
더 나아가 미파인 가운데도 '교역자 특별조사'를 받게까지 했으니 교역자 지방 특별조사위원들과 호선연의 관리자를 비롯한 심사위원들과 재판위원들의 무지막지한 용감함에 직접적인 잘 못이 있겠다 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재판위원들로부터 무시를 당했습니다.
법자문위원으로 참석하신 장로님은 교회법은 교회법이고, 사회법은 사회법이란 원론적인 말씀으로 재판의 합법성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저는 그 장로님께 물었습니다.
"전용재 전 감독회장님이 합법적인 감독회장이신가요? 아니면 불법적인 감독회장님이신가요? 제가 알기론 분면 총특재에선 당선무효판결을 받으셨으나 사회법에선 당선무효가 받아 들여지지 않아 사회법의 판결로 감독회장의 자리레 복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용재 전 감독회장님은 합법적인 감독회장님이신가요? 아니면 불벌적인 감독회장님이신가요?"

장로님은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으로 대응하시며 "그 문제는 여기서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하셨다.
허긴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맞는 얘기도 분명 아닙니다.
왜냐하면 감리교회의 판례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판례는 판례도 아니고, 제가 말하는 교회법은 교회법도 아니었고, 제가 말하는 사회법은 사회법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건방진 젊은(?) 목사의 시건방진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목사와 장로들은 어느덧 어린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듯 목사들과 장로들은 재판놀이에 곧 빠져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감리사는 원고, 심사위원장은 검사, 재판위원들은 판사,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법적 지식으로 쥐라펴락하시는 법적 자문으로 전능(?)하신 장로님, 변호사는 공석이었으며 저는 당연 피고의 자리였습니다.
뒤에 방청객도 한명 앉아 있었습니다.

재판놀이라 하니 또 다시 신성한 교회재판을 재판놀이라 비하시킴으로 놀림감을 삼으려 한다 불호령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판위원장님이 희화화 시키지 말라 부탁 하셨고 저도 그러하겠다 대답했는데... 이거 또 위험한 발언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재판놀이라 한 것은 교회 재판을 비웃거나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단지 전문 법조인들이 행하는 것이 아니니 재판놀이라 함이라 한 것이니 부디 용서하십시요.
이렇게 지적을 해 놓아도 또 다시 저를 공격하려는 분은 제 말장난이며 괴변에 불과하다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부득불 재판놀이라 함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공적으로 그 시간이 지나 재판장의 문을 열고 나간다면 그 누구도 재판위원님, 심사위원님, 원고, 피고라 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꿈놀이시간만은 엄마요 아빠요 아들이며 딸로 불려 지겠지만 소꿉놀이가 끝난 후에도 아빠, 엄마, 아들, 딸로 부르진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불려지길 원하고 고집을 부린다면 다음 소꿈놀이엔 넣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자신들이 하는 소꿈놀이가 진짜가 아닌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가 아닌 가짜(?) 이 표현도 좀 위험하긴 한데... 이 것은 비 전문가란 표현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잠시 동안은 판사, 검사, 원고, 피고로 역활이 나눠지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마치 마법이라도 풀린듯, 마치 소꿉놀이 시간이 끝난 듯 그 누구도 그렇게 부르진 않는 단 의미이기도 합니다.

재판의 시간이 끝나면 모두가 다 아무개 목사님, 아무개 장로님으로 그 호칭들이 변합니다.
원고는 감리사님라 부를 것입니다. 피고인 저도 목사님이라 아직은 다들 부르더군요.

재판의 자리와 시간속으로 들어가기 그곳에 모였던 모든 분들은 원래 다들 목사요 장로로 불려지던 분들이 모여
제한된 시간 동안은 마치 재판놀이를 하는 것과 같이 정해진 시간 동안만은 다들 목사님과 장로님으로 불려지기보단 우너고 피고 심사위원장, 재판위원, 재판위원장으로 불려지길 원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그것이 더 옳아 보입니다.
아이들도 소꿉놀이게 깊이 빠져들듯이 목사들도 재판놀이에 깊이 빠져 들어가야 하니 말입니다.

재판놀이에 참석하신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그 시간만은 목사로 대하거나 장로로 대하는 것 그 자체를 싫어 하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재판장 안에서도 장로님, 목사님이라 불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대하길 원하지 않는단 것입니다.

저는 목사라 불리는 것이 좋습니다.
다행이 피고 노재신이라 불려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로 대하려 하진 않습니다.
그 분들은 그저 그 시간 그 장소에선 목사가 아닌 피고이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분들이 저를 목사라 불렀지만 그 시간과 그 장소에서는 진짜 목사로 존경해서 부른다기 보단 습관적인 부름일뿐 목사로써의 존경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 저 피고의 모습을 보이려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목사라 부르시기에 목사다운 말로 답을 하면 여긴 재판장이니 설교하듯 말해서는안된다 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저를 노재신 목사님이라 불렀지만 그렇다고 목사처럼 행동하지는 말라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저도 할수 있는 한 피고처럼 말하고 행동하려 했습니다.
저도 제판놀이 가운데 깊이 빠져들어 목사가 아닌 피고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말하는 모든 것들이 피고답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몇 분들로 하여금 피고의 역활놀이를 잘하라고 권면과 충고를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은 그렇게 피고 역활도 잘못하면서 목사답게 말하려 하는 것은 듣기 싫으니 옳지 못하다 구박도 받았습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재판에 불려진 것은 목사답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 중에는 피고처럼 행동해야 하는 데 저는 자꾸 저도 모르게 목사처럼 행동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요 능력이 부족한 자입니다.

목사일 때는 목사답지 못하다. 미쳤다. 어리석다. 왜 어린애처럼 그러냐? 심지어 그러한 행동은 쪼다같은 짓이란 말도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의 자리에 않은 재판에선 자꾸 목사처럼 말하려 하고 있었으니 그 자리에서 핀잔을 듯기 일수 였습니다.

재판놀이에 가장 적응하지 못하고, 가장 어설프게 행동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저라는 사실을 깨우쳐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속으론 멋있게 스스로 변론을 해서 원고의 주장을 뒤엎고 재판위원들로 하여금 피고의 주장에 탄성을 보이며 원고의 고소를 뒤엎고 무죄의 판결을 받아 내는 역전의 피고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진짜 피고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도 피고도 아닌, 피고도 목사도 아닌 참으로 어설프고 어리석은 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어설픈 목사! 어설픈 피고! 그 모습이 그 당시 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 계신 대부분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모두 제각각 재판놀이에 집중하고 계셨고 그 순간 만은 목사답지 않았으며 장로답지도 않았습니다. 참으로 멋진 분들이셨습니다. 참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활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찌보면 프로 연기자들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또 어찌보면 저분들은 원래 목사와 장로가 아닌 진짜 검사, 판사들처럼 보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저 처럼 자신의 역활에 몰입을 잘 하지 못하는 분이 또 한 분 더 계셨습니다.

그 분은 자꾸 재판놀이 가운데 주어진 역활에 집중하지 못하고 슬쩍 슬쩍 목사다운 모습을 보이셨었기 때문입니다.
제 눈엔 그리 보였습니다.
이번 재판 역활놀이 가운데 가장 어설픈 사람은 피고석에 앉은 저였고, 그 다음으론 주어진 자신의 역활에 완전 집중하지 못하고 힐끔 힐끔 어설픈 모습을 보인 분은 계셨는데 그 분은 다름 아닌 재판위원장님이셨습니다.

아마도 그 분도 스스로 그러한 사실을 알고 계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재판위원장의 모습을 보이려 애를 쓰고 계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재판위원장님도 저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역활에 흠뻑젖어 들지 못하고 자꾸만 습관적으로 목사다운 모습을 보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재판위원님들과 원고 그리고 심사위원장님까지 어설픈 재판위원장님의 행동에 몹시 긴장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자칫 오늘 재판 놀이가 재판위위원장님과 피고에 의해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심사보고는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많은 얘기를 다 들었고 시간도 많이 지체 됐으니 빨리 재판을 진행해서 마무리하자 재촉하셨습니다.

한 감리교회의 목사가 이 재판으로 면직 또는 감리교회에서 아주 퇴회가 될지도 모르는 데 말입니다.
그 분은 노재신 목사에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피고인 노재신에겐만 집중을 하셨습니다.

재판위원장의 역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실수라도 할까봐 노심초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염려 했던 사람은 어쩌면 원고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가장 원고의 역활에 집중을 하여 그 시간 그 장소에선 전혀 감리사 다움은 찾아 볼수 없었으며 목사다움도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은 목사이며 감리사셨습니다.
재판이 끝나면 다른 모두가 원고라 부리지 않고 감리사님, 목사님이라 호칭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의 자리와 그 시간만은 정말로 진지한 원고의 모습이셨습니다.

얼마나 진지한 모습을 보였던지 원래의 대본에 없었던 내용까지 첨가하면서 까지 자신의 주장을 폈었습니다.
뭐 이런 것을 '에드립'이라 부르는 것 같던데.... 저는 그것은 '거짓'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원래부터 짜놨던 애드립인지 아니면 100% 즉흥적인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교역자 회의록을 낭독한 것을 보면 즉흥적인 애드립은 아닌 것 같아 보였습니다.

재판 전부터 관객으로 참여한 그 목사와 무언가 열심이 토론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을 봐서는 그 에드립은 100% 준비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집중하고 그 정도록 재판놀이에 빠져 있었고 그 정도록 프로패셔널한 연지가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래 자신의 모습인 감리사인것과 목사란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그 장소에 모여 재판놀이를 하였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능수능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활에
가장 충실한 분이 있었다면 당연 원고이셨던 감리사님이셨습니다.
만약 이러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집중력을 보이는 원고의 모습에 상을 준다면 남자주연상 정도가 될까요?
그러나 당신이 주연인 줄 알았겠지만 그 분은 조연에 불과했습니다.

재판놀이에 빠진 목사,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재판에 뻐진 목사는 원고인 감리사요 몇몇 재판위원들과 심사위원장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어설픈 모습을 보였던 사람은 다름아닌 저 였던 것 같습니다.
완벽한 피고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어설픈 분이 계셨다면 그 분은 바로 재판위원장님이셨습니다.

희화화 하지 말라 간곡히 부탁하셨는데... 어설픈 재판위원장 역할을 했다 하였으니 또 혼나려나요?
뭐 한번 혼나죠 뭐...
그래도 저는 그 재판 놀이에서 재판위원장의 역할을 맡아 참으로 힘든 가운데도 가장 목사다운 모습을 보이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재판원위원장으로서 그 역활에 맞게 품위와 모습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재판위원장 다운 목습 사이 사이에 비춰 보이는 목사다운 모습을 보이셨기에 "아~ 저분은 그래도 재판위원장이 아닌 목사님이시구나!"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나마 그 분이 재판 이후에 목사님으로 불려지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으신 분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목사라 장로라 불려지기 보단 차라리 재판위원, 심사위원, 원고, 관객으로 불려지면 가장 적당할 듯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도 원래의 모습은 목사님이시고 장로님이신데...
참 마음이 씁쓸합니다.

재판놀이에 빠진 목사,
어쩌면 제가 목사놀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사답지 못하면서 목사처럼 말하고 행동하려 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제 말과 행동이 우습게 보였을지도 모르고 제 말과 행동이 버르장머리 없고 싸가지 없는 놈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감리사의 입을 통해 진짜 싸가지 없이 목사 놀이에 깊이 빠진 제 모습을 보게 하신 것일까요?

이젠 그 재판 놀이에서 빠져야 할지 아니면 더 계속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젠 그 목사 놀이에서 진짜 빠져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진짜 제가 목사놀이를 한 것이라 주님이 판단하신다면 더 이상 목사놀이를 못하게 하시겠지요.
목사놀이를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믿습니다.
목사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넌 그동안 목사놀이에 빠져 있었으니 이제 이후론 다시는 목사놀이를 하지 말아라.' 하신다면 그 말에 순종할 뿐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24일) 10시에 재판의 결과가 나온다니... 기다려 봐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역활에 맡게 너무도 진지하게 재판놀이에 집중하신 것 같아...
가장 어설펐던 제게 상을 주진않겠지요? ㅎㅎ

재판위원장님, 혹 이 글을 읽으시면 너무도 죄송하지만 재판위원장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좀 어설프셨어요. 그러니 상 받으실 기대는 하시지 마십시요.
그러니 다시는 재판위원장 하려 하지 마시고 그냥 목사님 하세요.
그것이 목사님에게 제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만약 또 다시 재판 놀이를 하시게 되신다면 어설픈 재판위원장 목사가 아니라 너무도 당당한 목사 재판위원장이 되어 주십시요.
그렇게 하신다면 가장 목사님으로써 걸맞은 멋진 역활을 감당해 내실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다음 남우주연상감은 당연 목사님이 받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재판위원장다운 목사가 되려 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재판위원장님의 모습을 본것 만 같아 전 감사합니다.

이 글 읽으시고 기분 나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만약 기분 상하셨다면 다음에 저를 보시면 뒤에서 욕하지 마시고 호되게 혼내 주십시요.
전 목사님에게 혼나는 것을 하나님께 혼나는 것이라 생각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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