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주의 혜택을 받는 사람

관리자
  • 1602
  • 2017-05-03 01:08:48
1. 시작하는 말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같이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보신다는 말들도 합니다. 그러나 고난받는 것과 가난한 것과 약한 것은 편애와 편견이 없으신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혜택의 조건이 아닙니다. 고난을 받는 사람이건 즐거워하는 사람이건,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이건 부유하거나 강한 사람이건 죄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죄악을 잘 행하도록 혜택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함께하시는 주님의 혜택을 받는 방도는 죄악이 아니라 믿음과 기도입니다.

고난받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사랑하려면 사랑할 의지와 사랑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할 의지와 사랑할 소유를 위해서라도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혜택을 받는 사람과 심판을 받는 사람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부국강병을 이룬 왕은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연전연승하였고, 나라도 매우 융성했습니다. 그런 다윗도 왕이 되기 전과 왕이 된 후에 적지 않은 환난과 시험을 겪었습니다. 가정적으로도 맏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인 다말을 겁탈하고, 다말의 오빠이자 셋째 아들인 압살롬이 분개하여 암논을 살해한 기막힌 아픔과 압살롬의 반역으로 쫓겨 다니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환난과 시험의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연전연승한 영웅이요, 부국강병을 이룰 만큼 위대한 통치자이었지만, 고난받는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과의 개인적 친밀감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믿다가도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믿기는 하나 막연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우리 왕’, ‘우리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믿음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호칭이요 기도입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실히 믿는 기도입니다.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나님이 들으시기는 하는 건가, 하나님이 정말 살아 역사하시기는 하는 건가’ 미심쩍어 하며 하는 기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도입니다.

김 모 검사의 간증입니다. 중앙수사부 수사 1과장으로 있을 때, 어떤 사건을 내사하면서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하던 중에 일이 터졌습니다. 관계관들이 황급히 달려오더니 조사를 받던 사람이 죽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보고를 듣는 순간 김 검사는 아찔했습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조사실로 향했습니다. 어쨌든, 책임자인 김 검사의 과실이고, 옷을 벗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사를 받다가 죽었으니 유가족들에게는 영락없는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조사실에 도착해 보니 그 사람이 입에 거품을 문 채 큰 대자로 누워 있었습니다. 순간 김 검사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손으로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그 사람의 심장에 얹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모든 것이 저의 잘못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분을 살려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꼭 살려 주십시오.” 너무 절박한 상황이라서 조사실 안이 쥐 죽은 듯이 숙연해졌고, 모두 눈을 감고 김 검사가 드리는 기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 놀랍게도 그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사람들도 모두 놀랐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은 김 검사에게 자신을 살려 주신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인 자녀가 절실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입니까? 혹시 하나님의 근심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설교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자녀를 기뻐하시겠습니까, 머리와 가슴이 아닌 온 영을 기울여 듣는 자녀를 기뻐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듣고 거역하는 자녀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순종하는 자녀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직무를 태만히 하는 자녀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성실하게 감당하는 자녀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의심하며 기도하는 자녀를 기뻐하시겠습니까,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녀를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불신앙과 죄악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사야 1:15을 보면,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악은 문제 해결과 은혜와 복의 통로인 기도를 차단하여 헛것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므로 악이 주님과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님의 목전에 서지 못합니다. 주님은 남녀노소, 법을 만드는 자와 법을 집행하는 자, 부자와 빈자, 유식한 자와 무지한 자, 권력자와 노숙자 할 것 없이, 모든 행악자와 거짓말하는 자를 미워하시고, 때가 되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멸하십니다. 또, 회개하기는커녕,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괴담이 된 광우병 사건, 거족적 슬픔과 아픔이 된 세월호 사건, 남남 갈등과 대립을 초래한 대통령 탄핵 사건 등과 관련된 거짓말과 속임수가 집단화되어 온 나라를 혼란케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대내외에 불신 국가로 각인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보도하며, 정직한 사회와 정직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앞장서야 할 신문과 방송까지도 거짓과 조작과 선동을 하기도 하고, 사실을 감추기도 하고 침소봉대하기도 했습니다. 선진국들도 가짜 뉴스의 확산으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고의로 불신 국가를 만드는 세력이 있으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행악자의 특징은 심중이 심히 악하고, 그것이 입 밖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행악자의 입에는 신실함이 없고, 목구멍은 부패하여 냄새나는 열린 무덤 같고, 혀로는 아첨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이런 사람은 대선이나 총선이나 지방 선거나 기타 선거에서 뽑혀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나 관리자나 공복이나 종교 지도자가 되어도 안 됩니다. 부국강병을 이룬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은,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시며 심판자이신 주님을 배역하는 행악자들에게 깨닫고 회개하고 믿을 기회를 주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행악자들로 인한 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피해와 불행, 억울한 재앙과 죽음을 막아 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불신앙과 온갖 죄와 악을 드러내는 원수인 모든 행악자들과 달리, 오직 주님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님의 집에 들어가서 주님을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해 경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의 행위를 위해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라고 주님의 역사와 인도를 구했습니다.

주님은 신실하시므로 주님께 피하는 자들은 다 주님의 인도와 보호로 인해 영영히 환성을 올릴 것입니다. 또,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님을 부담스러워하는 대신에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하는 것처럼 은혜로 저를 호위하십니다.

3. 맺음말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가 하루를 숙박할 예정으로 기마 여행을 하다가 시골길에서 엄마와 함께 있는 7세쯤 된 귀여운 소녀와 마주쳤습니다. 소녀는 톨스토이의 백합꽃 수를 놓은 예쁜 리넨 가방을 보고, 어머니에게 사 달라고 졸랐습니다. 톨스토이는 모른 척하고 가다가 되돌아와서, “내일까지 기다려라. 내일이 되면 이 가방은 소용없으니까 틀림없이 줄게. 울지 말고 기다려라.”라고 소녀와 약속했습니다. 그 가방은 친지의 소중한 유품이었으나, 소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다음 날 저녁, 톨스토이는 소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는 전 날 급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소녀의 무덤까지 안내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무덤 앞에 놓고 엄숙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소녀의 어머니가 “선생님, 이제 딸이 죽었으니 어서 가방을 가지고 가세요.”라고 미안해하며 말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아닙니다. 따님은 죽었지만 약속한 내 마음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배반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고는 머리를 숙였습니다.

남들이 보는 신실보다 자기 신실이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주님 앞에 신실한 것입니다.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신실하게 함으로써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겸손히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자신에게 피하는 믿음의 의인에게 영원한 기쁨과 복을 주시고, 은혜로 호위하십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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