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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정책1(政策)
함창석
- 1699
- 2017-05-11 04:42:58
정책(政策)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다. 政은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正(정)이 합(合)하여 이루어지고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는 막대기를 손에 쥐다→물건(物件)을 치는 일,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가 붙는 한자(漢字)는 …하다, …시키다의 뜻을 나타내며 음(音)을 나타내는 正(정)은 征(정)과 통하여 적을 치는 일, 政(정)은 무력으로 상대방(相對方)을 지배하는 일, 나중에 正(정)은 바른 일, 政(정)은 부정(不正)한 것을 바로 잡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정치는 부정을 바로잡고 정치가는 먼저 몸을 바로 가지면 세상도 자연히 다스려진다고 설명(說明)된다. 策은 뜻을 나타내는 대죽(竹 대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朿(자→책)로 이루어지고 말을 때리는 대나무 말채찍을 말하며 음(音)을 빌어 계략(計略)의 뜻에 쓰인다.
정부· 단체· 개인의 앞으로 나아갈 노선이나 취해야 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정부 또는 정치단체가 취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국가의 정책을 국책(國策)이라고도 부르는데, 오늘날에는 정당을 비롯하여 노동조합이나 경영자단체 및 개인의 정책이라도 그 내용과 성질이 공공적인 것이라면 정책이라고 하며, 미국에서는 이것을 공공정책(public policy)이라 부르고 있다. 정책은 일정한 목표를 합리적으로 추구 ·실현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것으로서 최근에는 컴퓨터의 도입으로 합리적인 장기정책의 수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외교정책· 농업정책· 사회정책· 노동정책· 교육정책이라고 할 경우 국가가 추진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지만, 이 경우도 국가의 권력을 현실적으로 담당하는 정부의 정책인 것이며, 의회정치하에서는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정당의 정책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책이 국가나 정부 등과 같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에만 운위(云謂)되는 것은 아니며, 정권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 정당이나 협력단체 또는 개인도 정책을 가질 수 있다.
19세기 말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을 위해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네비우스 선교사의 제안에 따라 채택한 선교정책이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는 1890년까지 H.N.앨런, H.G.언더우드 등 10여 명의 선교사를 한국에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갓 신학교를 졸업한 2,30대의 청년들이었다. 해외 선교 경험이 없던 이들은 한국에 와서 선교부와의 관계, 한국인과의 관계, 선교사들 간의 원활한 관계 등을 정립하지 못하고 많은 시행 착오와 갈등을 겪었다. 이에 선교사들은 본국 선교부에 도움을 청하였고, 선교부는 당시 중국 체푸에서 활동 중이던 네비우스(John L. Nevius)를 서울로 보냈다. 그는 이미 1855년에 중국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논문집 〈선교 방법론(Methods of Mission Work)〉을 발표하여 선교부로부터 큰 평가를 받은 바 있었다. 그는 내한하여 서울에 2주간 머물면서 선교사들과 회합을 갖고 강연을 하였는데, 그의 논문과 강연은 당시 선교정책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던 선교사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네비우스는 선교사업의 궁극 목적을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진취적인 토착교회 형성’에 두고, 선교정책의 기본 이념으로 자진 전도, 자력 운영, 자주 치리(治理)의 세 가지를 내세웠다. 이들 이념은 이미 각국 선교회에서 제기되었던 것으로 19세기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개척과 함께 추진했던 토착교회 육성 방안이었다. 그는 특히 토착교회의 자립 능력을 강조하여, 토착인 전도사도 선교부의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고 토착교인들의 헌금으로 활동하게 하였고, 학교나 병원 등 시설비가 많이 드는 기관을 제외한 교회 건축비는 토착교인들이 부담하도록 유도하였다. 장로회 선교사들은 각기 네비우스의 선교 원칙을 한국 상황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하여 여러 가지 방법론을 마련하였으며, 이런 방법론은 1891년 〈북장로회 선교회 규칙〉에 정리되었고, 1893년에는 한국 장로교 선교부 공의회에서 10개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확정되었다. 10개 정책은 네비우스의 선교 정책인 ‘3자(三自)’ 이념을 그대로 반영한 외에, 선교 대상을 근로자와 부녀자 중심, 청소년 중심으로 잡고, 성서를 번역, 보급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이후 미국 남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 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에게 그대로 채택됨으로써 한국 장로교회의 보편적 선교정책이 되었으며, 감리교· 성결교· 성공회· 침례교 등의 타 교파 선교부도 이 정책의 실질적인 영향을 받음으로써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대표적인 선교정책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3자 원칙’, 즉 토착인이 토착인에게 전도하도록 하는 ‘자전’(自傳, self-propagation), 토착 교인이 토착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와 교회 운영을 책임지도록 하는 ‘자립’(自立, self-supporting), 그리고 토착 교회 문제를 토착 교인들이 처리하도록 하는 ‘자치’(自治, self-governing) 등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위 ‘3자 원칙’은 네비어스보다 먼저 제시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1840∼70년대 영국 교회와 미국 교회의 해외 선교 정책을 입안했던 헨리 벤(Henry Venn)과 루퍼스 앤더슨(Rufus Anderson) 등이었고, 네비어스는 그 원칙을 중국 선교 현장에 적용하여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정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