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처럼 비판하고 키엘케골처럼 반성하라.

이재신
  • 1813
  • 2017-06-07 07:47:33
니체처럼 비판하고 키엘케골처럼 반성하라.

분명 되지 못한 비판, 비판을 위한 비판, 자기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꼼수비판 등 등 비판의 수준을 놓고 보면 문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위리는 알아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 기독교인들은 니체 하면 그저 무신론자나 기독교 반대론자이거니 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영향은 그리 간단치 않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으며,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신이나 이성, 사유나 의식, 의지,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언어가 만들어 낸 허구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다 옳다고 받아들일 기독교인들은 많지 않다.
철학자나 사상가들 역시 얼마든지 비판의 칼날을 댈 수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나 <주체와 객체>의 문제에서 우리의 사고체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것이다.

키엘케골은 어떤가?
자살을 시도하고, 출생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살았던 대철학자는 한 순간도 그 마음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심지어 사랑하는 약혼녀 레기네 올센과의 파혼으로 자기의 괴로움을 스스로 가중시킨 그의 짧았던 삶은 기존의 철학체계나 기득권에 안주하던 당시의 덴마크의 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죽기 전 그는 당시 덴마크의 기독교가 신약의 교회와는 너무 다르며, 민스터 감독의 생활 역시 박해와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순교자적 신앙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자살까지 감행했던 투쟁으로 인하여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찾은 그는 신앙의 종류를 둘로 나눴다.
하나는 종교성A 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종교성B 이다.
종교성A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코스프레라도 하듯 자기도 믿음의 사람이라고 아는 착각이고, 종교성B는 정말 십자가를 체험하고, 자기를 세속의 물결에서부터 분리하여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몰아가는 영적인 사람들이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설명조차도 조심스러운 단계를 말함이다.

루터를 종교개혁의 아버지로 부른다면 존 위클리프는 종교개혁의 할아버지로 부른다.
옥스퍼드 졸업후 열정적인 목회자로 학자로 살았던 그는 당시 혈세로 사치하는 신부들을 공격하고 교황의 이권개입을 비판했다.
위클리프를 따랐던 사람들은 당시의 부유한 신부들과 구분하여 ‘가난한 신부들’이라고 불렸다. 후에 이 운동의 추종자들을 Lollards라 불렀다.
성경을 번역하고 보급하는데 노년의 정력을 다 쏟았던 그는 1384년 숨지고 1415년에는 260개의 죄목으로 정죄당하고 저서는 불태워졌다.
전 종교개혁자들의 이러한 철저한 비판과 노력이 없었다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하리라.
몇 푼의 알량한 호사를 위하여 향방없이 춤추는 갈대 같은 태도로는 한 시대를 담당한 지도자라고 자처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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