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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VIII(고린도전서 15:43-49)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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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05 18:41:41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뒤나메이, δυνάμει: 1:18의 “능력”의 주석을 보라.)으로 다시 살며]는 능력상의 차이를 대조한 것이다. 웨슬리(J. Wesley)는 “한때 즐기던 연약한 힘마저도 빼앗긴 채,…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활력과 힘과 생기를 부여받게 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우리를 절대적인 사랑의 능력으로 직접 통치하시는 영원한 영광과 지순의 세계에서 영생을 누리기에 적합한 몸, 즉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몸으로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롬 8:11).
위의 대조를 종합하여, 바울은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육의 몸](σώμα ψυχικόν①)은 현재의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바 동물의 것과 같은 자연적인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다(참조: 2:14). 즉, 혈기의 몸으로 지상의 생존에는 적합하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없는 몸(육체)이다. 이 육의 몸은 결국 죽어 매장될 것이다.
그와 대조되는 [신령한 몸](σώμα πνευματικόν)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다시 살리심을 받을 새 몸(롬 8:11, 빌 3:21)이다. “이 신령한 몸[영체]이란 신령한 것[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② 또한, 단순한 육체도 아니다. 이는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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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저자의 로마서 11:3의 “목숨”의 주석을 보라.
2) C. Hodge, L. Morris, A. Barnes,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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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생활의 기관, 즉 영이 지배하는 몸이라는 뜻이므로”(R. C. H. Lenski, L. Morris, 김용옥), 천국으로 이어지는 영생을 누리기에 적합한 몸이다.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라고 설명하셨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는 이제까지의 설명을 다시 한 번 확언하는 것이다. 현재의 육의 몸과 다시 살리심을 받을 신령한 몸은 전혀 판이하지만 동일한 자아의 몸이다.
바울은 이 두 몸의 시조에 대해서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시켜,【45】[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는 창세기 2:7(칠십인역)의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를 인용한 것이다. 본절의 첫은 마지막 아담을 말하기 위해, 그리고 [아담]은 마지막 아담으로 서술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와 대칭되는 다른 이름이 필요해서 바울이 덧붙인 것이다.
[산 영](ψυχὴν ζώσαν)은 동물의 생명과 같은 것이다(창 1:20, 21). [영]으로 번역된 프쉬켄(ψυχὴν)에서 앞 구절의 프쉬키콘(ψυχικόν: ‘육의’, ‘자연적인’)이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취지는 아담이 자연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육체적 생명(자연적 생명)을 가진 인간의 시조라는 것이다.
[마지막 아담(참조: 롬 5:12-19)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는, 본래부터 그 자신 속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께서(요 5:26, 14:6, 11: 25, 요일 1:12, 5:11)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새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요 5:21, 6:63). 웨슬리(J. Wesley)는 “그는 그들을 다시 살리실 때, 그들의 몸에 보다 더 정화된 삶을 주실 수 있다.”라고 하였다.
여기의 [영]은 앞의 영과 대조되는 프뉴마(πνεύμα: 성령)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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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앞 구절의 “신령한 몸”과 관련짓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신령한 인간(영적 생명)의 시조가 되셨다는 것이다.
본절에서 문제가 되는바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이 되신 시기에 대해 (1) 성육신하셨을 때라는 설,③ (2) 승천하셨을 때라는 설(Godet)④ (3) 부활하셨을 때라는 설,⑤ 등이 있다.
특히, 요한복음 5:26에 근거하여 (1)설을 주장하는 핫지(C. Hodge)는, “이 논증은 그리스도의 몸이 지상에서 신령한 몸이셨다는 가정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몸이 혈육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본래 신령한 몸만이 그에게 적합할 수 있는 상태에 있도록 예정되어 있으셨다.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분으로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핫지(C. Hodge)는 (2)설에 대해서는 단지 하늘에서의 조건에 적합한 지위를 취하도록 그의 몸에 영향을 미쳤을 따름이라고 하면서 반대하였고, (3)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 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면서 반대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에는 (1)설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부활의 몸 또는 부활의 생명이 죽기 전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몸 또는 다른 생명이라는 점을 논증하는 것이므로 (3)설을 취해야 한다. 즉, 그분 자신의 영에 의해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심으로써(롬 1:4, 6:10, 8:11),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영이란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질과 구별되는 고양된 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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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eophylact, Beza”(in 이상근), H. Alford, C. Hodge.
4) in 이상근.
5) “Grotius, Meyer, Hofmann, Findlay, Vincent”(in 이상근), J. A. Bengel, R. C. H. Lenski, W. F. Orr and J. A. Walther, p. 343, C. K. Barrett, G. D. Fee, 김용옥, 이상근. 비교: A. Robertson and A. Plummer, A. Barnes, 黑崎幸吉, 박윤선 등은 부활 승천 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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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적용된다(롬 1:4, 딤전 3:16, 벧전 3:18)”(A. Barnes)는 점으로도 뒷받침된다.
이어서 바울은 【46】[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라고 하였다.
아담이 먼저이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다음이라는 뜻이다.
아담을 가리키는 [육 있는 자](토 프쉬키콘, τὸ ψυχικόν)는 44절의 “육의”의 주석을 보고,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신령한 자](τὸ πνευματικόν)는 44절의 “신령한”의 주석을 보라.
본절은 발전의 법칙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⑥ 칼빈(J. Calviin)은 “중생하기 이전에 출생하고, 부활하기 이전에 살고 있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지상의 상태는 내세의 상태를 위한 예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더욱 구체적으로, 【47】[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는 아담이 땅의 흙으로 지음 받았으므로 땅에 속하고 또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창 2:7, 3 :19, 전 12:7).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ὁ δεύτερος ἄνθρωπος ἐξ οὐρανού)는 א*, C, D*, G 사본 등을 따른 것이고; 사본 630에는 ἄνθρωπος(사람) 대신에 ὁ κύριος(주)로 되어 있고(Marcion); אc, A, Dc, K, P, Ψ 사본 등에는 ἄνθρωπος(사람) 대신에 ἄνθρωπος ὁ κύριος(사람이신 주)로 되어 있고; P46 사본에는 ἄνθρωπος(사람) 대신에 ἄνθρωπος πνευματικός(‘신령한 사람’, ‘영의 사람’)로 되어 있다.⑦
사본의 가치상으로나 주장하는 학자들의 수로 보아 ἄνθρωπος(사람)나 ἄνθρωπος ὁ κύριος(사람이신 주)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계속되어 온 논지가 생전의 몸과 그의 부활의 몸이 본질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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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 Hodge, F. W. Farrar, “Meyer”(in 이상근), A. Barnes, L. Morris, R. C. H. Lenski, 이상근.
7) in K. Aland, et al.,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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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아담과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를 대비하는 것이므로, ἄνθρωπος ὁ κύριος(사람이신 주)보다는 ἄνθρωπος(사람)를 취해야 한다.
“본절은 초대 교회 때의 영지주의 이단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들은 우리의 주님께서 실제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출생하셨던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파생된 몸으로 옷 입혀지셨다는 그들의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본절을 들먹였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에 있어서는 인간과 동질적이시며, 신성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동질적이시라고 신성을 선포하는 초대 교회의 신조들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문은 단순히 그리스도에 대한 하늘의 기원만을 주장하고 있다”(C. Hodge). 즉, 본절은 아담과 대비시켜 그리스도 예수의 기원이 영원한 하늘이며, 따라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분이심을 밝히는 것이다(요 3:13).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께서 어떤 유형의 인간들을 대표하는 것에 대해, 【48】[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흙에 속한 자]는 아담이고, [흙에 속한 자들]은 아담의 후손들이다.
[하늘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이시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부활할 백성들이다. “이와 같이 자연인의 운명과 그리스도인의 운명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김용옥).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를 구체적으로 각 개인의 현세의 몸과 내세의 부활의 몸에 적용시켜, 【49】[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라고 하였다.
미래형인 입으리라(포레소멘, φορέσομεν)는 B, I, 88, 630, 1881 사본 등을 따른 것이고; P46, א, A, C, D, G, K, P, Ψ, 0243, 33, 81, 104, 181, 326 사본 등에는 권면형인 “입자”(포레스멘, φορέσωμεν)으로 되어 있다.⑧ 전자는 장차 부활의 몸이 하나님에 의해 입혀지게 될 것을 뜻하고, 후자는 장차 부활의 몸이 입혀지도록 인상적인 노력을 하자는 권면을 뜻한다. 어느 쪽이든 무방하나, 이 부분이 동일한 자아의 현재의 몸과 장차 하나님께서 입혀 주실 부활의 몸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임을 미루어 전자가 보다 더 적합하다(롬 8:23, 29, 빌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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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Ibid. 여기에 전자를 취하는 학자들과 후자를 취하는 학자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후자를 취하는 학자들이 훨씬 더 많다.
※ 출처: 최세창, 고린도전서(서울: 글벗사, 2001, 2판 1쇄), pp. 438-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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