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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신학의 정체성 찾기
현종서
- 1485
- 2017-06-27 02:24:05
독립의지까지 꺽고자 했다.고려나 조선시대엔 10년의 안정기간이 없을 정도로 북 아니면 남의 외침으로 늘 불안속에 살아 왔고 완전한 자주독립이나 평화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6.25 전쟁후 65년, 우여곡절은 많았으나 전쟁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때는 한반도 역사에서는 유일한 기회 였다.
그 배후에는 기독교와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들과의 선린관계가 있었다.
가깝게 붙어 있어 과거의 호시절울 기억하며 호시 탐탐 지배력과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중국 세력, 아직도 그들은 북한에 생명줄이 되고 또 그속의 동북삼성은 우리 동족들의 땅으로 이미 자국화한지 오래고 그 주민을 이용하여 한국에 영향력을 높이려 하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중국민 개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대국의 속성일 것이다.
우리는 선린 외교일 수 있으나 그들의 의도는 우리와 다를 것이다. 우리민족의 2/3를 차지 하였으니 나머지 1/3까지 완전히 자기 수하에 두려할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혈통적으로 근린관계에 있지만 그들은 대륙에 붙어있지 않은 관계로 중국이나 몽고의 영향을 덜 받으며 자기들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서구문명에 밀착이요, 이것이 동양의 변두리 국가가 구미의 선진국인 자기들을 열심히 배우며, 자기들의 문명권에 열심히 편입하고자하니 네델란드,영미 등을 비롯한 서구인들은 그들을 환영하며 또 즐겨 그의 편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문명을 전수받던 미개국에서 탈피하여 세계 5,6대 경제강국에 진입해 있다. 그들의 대 세계적 발언은 동양의 친구국가의 말로서 무시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6.25을 계기로 그들은 미국과 더불어 한국을 중,소, 북한으로부터 공산주의화( 공산주의 종주국이 소련,중국이었으니)로부터 직 간접적으로 방호 해 준 나라가 되기도 했다.(미국편 들다보니) 일본을 미워만 할 것인가? 우리의 잘 못은 없었는 가? 친일파 지나치게 미워하는 것,중국,북한의 전략적 입김때문은 아닐가?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까지 포함한 국가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헌법이 그리되어 있다.). 그것은 모처럼 유교영향을 벗어난 기독교적인 민주공화국인 나라를 만들고자 했었다. 그것도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 김동길 씨 말대로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 만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과 다시 문호개방하고 북한과도 전쟁없이 다시 통일 한국을 만들려 하는 일이니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뉘 말대로 "신의 한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로부터 교훈도 얻으면서 모든 장애물을 돌파해갈 수 있는
방법, 어느 때보다도 어느 한 편 들 때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계시(지혜를) 받아 순종해 감으로써 선한 목적을 달성해 가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러한 나라를 만들어 가도록 견인의 역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근자 기독교문화는 많이 시들은듯 보이고 불교 유교문화의 복고와 이슬람의 문화와 이단잡종 내지 샤마니즘의 문화가 제철을 만난듯 약진해 간다.
음란한 성문화와 신맑스주의적 시위문화들이 한국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기독교회는 교회부흥을 원하나 회개 없는 부흥은 가짜부흥이다. 오늘날의 기독인들은 아버지 온전하심 같이 온전해 지기 위해 거룩을 목표로 삼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고 있는 가? 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인권,평등,평화,자유 같은 인본주의적 사회주의가 실현된 나라가 아니라, 개인성화를 추구하는 연장선에서 사회 복지까지 가져오는 사회, 즉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사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는,하나님의 선한 통치가 이루어진 사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권력과 부와 명예를 주신 것은 그것을 가지고 사리사욕위해 사용하라 주신게 아니고 그것을 청지기 의식으로 활용하여 정의 와 자비가 구석 구석 스며들고 선한문화의 창조자들을 지원하여 보다 선한 사회를 이루어 가라는 것이다.
시위문화란 얼마나 성경적인 것인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조용히 자기일에 성실함으로 사회를 바꾸어 가는 방식, 이 게 더 바람직한 개선과 성화를 이루어가는 삶이 아닐까? 성토도 필요할 때가 있으나 이런 일이 일상화될 때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위문화에 주역이었던 이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어 사회를 운영해 가려할 때, 그들 또한 현실의 벽에 부딪쳐 더 험한 방법으로 운영하므로 또 다른 시위세력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정상적 사회의 시스템 운영을 하려할 때, 작은 문제라도 설득과 동의를 얻어 개선해 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독재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해 가려해도, 군사독재시절 인권투쟁하던 방법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그러한 때가 아니데도 그런 투쟁방법을 쓰려한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써 보기도전에 기관의 권위나 공권력에 파괴적인 시위활동만 할 것인가? 민주투쟁이라는 가면을 쓰고 기독교와 대한 민국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암약하는 때이기에 거기에 합당히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군사독재시절 함께 인권투쟁하던 이들이 거기서 빠져나오는 이유는 그들의 활동목표가 이전과 달라져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질서를 지키며 법이 허용한 테두리안에서 점차 개선해 가는 문화를 정착해 가야 한다. 퇴색되어가는 기독교문화를 다시 일으켜세워야 한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신앙과 생활의 충분한
표준이 된다는 사실을 부지런히 연구하여 입증하고, 어느 종교나 철학서적이 비견되지 못함을 당당히 밝히고
성경적 기독교 신앙의 길이야 말로 인간구원의 최고의 길임을 뉘도 부정할 수 없고 승복할 수 밖에 없는 진리임을 밝히는 것, 이것이
신학교와 신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신학이 제구실을 못하니 법학과 정치학이 종교학과 철학이 사이비 종교와 이단들이 교회를 흔들뿐 아니라 신학교까지 자기들의 놀이터로 만들려 하고 있다.
민족 복음화를 위해 한국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라 했더니 신앙보다 이성위주의 자유주의 신학에 빠져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며 그것이 다원화된 시대의 발전된 신학이라 호도하며 기독교학교와 신학교 교수노릇하며 그런 학문 가르친 공로로 밥을 먹겠다? 그대 자신들이 살아계신 그리스도앞에 무릎을 꿇고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상대화에 앞장서는데, 어찌 학생들이 자기스승들의 말을 반대하며 자기들의 소견으로 그런 학문을 넘어설 수 있는가?
정직한 철학자 칸트는 자기 철학세계속에서는 영혼이나, 내세나 신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없노라고 하였다. 그것은 신학자들이 다룰 문제로 넘겨 버린 것이다.
이성을 회생시키지 않고 기독교의 진리를 말하라? 그렇게 인간이성 한계를 넘지 못하고 죄로 부패되어있는
이성에갇혀 있는 학문이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철학이 아니고 무엇일까? 신학은 교회의 학문이요, 신앙의 학문이요,초이성의 학문이요,기도의 학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