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도 목사님을 본삼았던들

현종서
  • 1948
  • 2017-07-21 22:57:08
최근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황건구 목사)의 부탁으로 이용도 목사님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었다.
본인은 그분의 영적인 감화는 한국교회사의 흐름속에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용도 목사님이 1930년대 초 외친 설교의 메시지는 그의 말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주신 성령의 음성이었다.
그분과의 의형제 맺었던 두분중 형인, 이호빈 목사님은 중앙신학교 설립 강남대학교로 발전하였고, 그의 아우된 이호운 목사는 목원신학교(현 목원대학교)의 기초를 놓은 분이다. 그의 감화로 목사가 된 김광우 목사님은 한국감리교회 정동교회 담임, 감리교회 총리원 사회,교육,선교부 총무를 하셨고, 국제대학 학장 그리고 말년에 한강 중앙교회를 개척설립하셨다.
그리고 장감성을 통틀어 그분의 영향을 받아 좋은 목회자가 되고 부흥사가 된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가 성령충만하여 한반도와 만주까지 교파를 초월한 부흥집회에 놀라운 기도운동과 회개 역사가 일어났었다. 평양에 가서도 그의 영향력은 기성교회 목사들이 목회하기 힘들정도로 그의 인기가 전 평양교회를 뒤 흔들어 놓았다. 평양에 본부가 있던 장로교회는 위기 의식을 느껴 그의 활동을 규제해야 했다.

그래서 그에게 굴레를 씌운 것이 이단적인 모임을 경계하라며 몇몇 모임을 싸잡아 경계하는 중에 이용도이름을 그 속에 끼워 넣었다. 그이후로 지금까지 이단 경계의 글속에는 그의 이름이 늘 붙어 다니고 있다.

그래 최근에 삼남연회에 감리교회가 전도하고자 하면 이용도 이단을 배출한 교단이라며 감리교회의 전도를 방해 한단다.( 특히 장로교인들이 앞장서서).

나름 대로 신앙과 신학의 순례길을 겉는 중에 잠시 머물러 서서 그의 삶과 설교를 다시 들여보니 그분이야 말로
웨슬리의 충실한 학도로써, 중생체험을 넘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성숙한 성화, 기독자의 완전의 경지에서 자기의 깨달은 말이 아닌, 성령이 한국교회에 주시는 말을 그대로 외친 분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한국교회에 그분의 영성의 높이에 까지 이른 분을 찾아 보기 힘들다.
1990년대초, 감신 교수들이 처음 그분에 대해서 신학적인 평가를 하였다. 그는 십자가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그리스도 신비주의자였다.한국기독교개혁자였다고 했다. 그리고 이용도 목사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폈던 민경배 교수도 "이용도 목사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신앙인"이었다고 평하였다.

한국 "오순절 교회"가 60년대에 도입되고 성장된 것으로 아는 데, 연회전문학생으로 이용도 목사의 감화를 받아 이용도 목사에 대한 설교나 서간문등 그분의 1차자료를 수집하고 그분에 대한 헛소문이나 악의적인 평을 벗기려
애썼던 변종호는 순복음 신학교 교수 역활을 10여년간 했고 그의 학생이었던 김진환 교수는 이용도 목사는 전형적인 오순절 부흥목사,오순절 운동의 선구자요 개척자로 보았다.

그분의 메시지, 회개,겸비,가난,포용의 사랑,절대 믿음, 오직 예수 그의 메시지를 그시대 사람들이 듣고 회개하였던면 한국교회는 일찌기 영력을 회복하여 민족 복음화를 이루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교권인 장로교회와 성결교회 지도층들은 자기 교인 단도리 하는게 급했고 한국감리교회는 그를 학문적으로 변호할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한국에 기독교회가 들어온지 40여년 됐을 때이다.

이용도 목사를 앞장서 반대하던 이들은 후에 신사참배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현실적인 힘의 소리에 귀 귀울이고 순응했다는 것이다. 이용도 목사가 부흥회를 하였던 장대현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되었던 주기철 목사를 중심하여 순교적인 각오로 신사참배를 반대 하지 않았는 가?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가? 구원의 확신과 내세 소망이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세속화의 물결이 한국교회를 강타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이단들이 기성교회의 인위적인 부흥활동을 흉내내며 기성교회보다 더 빠르게 성장해 가고 있다. 이용도 목사님의 그 메시지, 성령의 음성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교회에 주시는 음성이다. 이 소리에 지금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면 한국교회의 영성이 되살아나게 되리라.

회개가 사라진, 한국교회여,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한국교회, 한국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때론 오히려 앞장서서 그들을 오도하고 있지 않는 가?

십자가, 그리스도 신비주의자? 신비주의자라는 말이 못마땅하다. 주의 라고 하는 것은 철학이라는 말이다.
그는 철학에 의해서 움직인 이가 아니라 살아계신 부활의 영이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자하였고 그 음성을 따라 살며 회개를 외쳤던 것이다.

영성을 죽이는 교리나 신학이어선 안된다. 독일 발 신학은 안타깝게도 이성우상화의 자유주의 신학이었다. 그 신학의 결과는 교회를 쇠퇴하게 하였다. 독일 신학중에서도 루터의 신학은 다르다. 바르트와 본회퍼는 루터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영적인 깊이가 부족하다.

이용도는 신학을 깊이 몰랐다. 오직 살아계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고 들은 그음성을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대로 외쳤던 것이다. 그런데 나타난 장로교회와 성결교회 지도자들의 교만한 반응, 겉으로 부정하나 속으로 그래요 당신의 말이 맞아요 하던 이들, 그래서 그들도 결국 각성하여 예수의 마음을 닮자하였던 것이다.(남궁혁,이명직)

깊은 기도의 사람, 이용도 목사를 통해 주셨던 하나님의 음성에 이제라도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자 한국교회여.

유명화 신접녀론, 이것은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14장의 성령의 은사중, 예언의 은사를 모르는 이들의 망언으로 보여진다. 오순절 운동으로 계몽된 오늘날 신자의 눈으로 볼 때, 그녀는 예언은사받은 경건한 여인으로 보인다. 이용도 목사도 그의 예언을 듣고 그의 생활을 살펴보며, 바른 예언인가 시험해 보았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시험해 보라는 말씀을 그가 모를리가 없다.

그리고 이용도는 남들이 다 비난한다고 자기 신변보호를 위해 함께 비난하는 자가 아니었다. 비난받고 버림받아
갈곳 없어 자기에게 찾아 오는 자가 있다면 배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이런 태도때문에 장로교 지도층들은 그를 무분별의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이용도는 자기가 비난받을 지라도 그리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가 감히 그의 경지에 이르러보지 못하고 그를 비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두려울사, 예수밖에 모르는 성자를 비난한다면 그는 바른 정신을 가진 자인가?

한국감리교회는 성경역사비평학을 선진학문으로 생각하여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그 열매를 생각하여 일찌기 넘어서야 했었다. 이제라도 그 삼차원적 과학적 세계관을 넘어서서 사차원적인 세계관( 천사와 악마, 초자연적인 기적, 죽음 저편의 세상까지 다루는) 속의 성경을 성령의 감화를 통해 읽음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다 보면 분명 한국교회는 새로워지게 될 것이다.

이용도에게 씌운 어쩌구니없는 무지와 교만에서 나온 이단적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오히려 그가 오른 영적 산의 고봉에 등산하고자 나서는 용감한 젊은 등반인들이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감신사태를 육의 눈으로만 볼 것인가 ( 예수님의 거룩한 형상를 닮기 위해 경건훈련의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네오맑시즘에 젖어 어른들의 합당한 권위에 도전하며 투정부리듯하는 감신의 일부 학생들의 생 떼를 탄식한다.)

기독교신학은 삼차원적 현세만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영혼의 구원을 일차적으로 다루는 사차원적인 신앙의 학문인 것이다. 이규학 이사장을 비난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의 신앙상태,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점검하고 하는 말들인가 ? 그리고 학생들은 신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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