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족 대추장 만나다

김정효
  • 1518
  • 2017-08-05 16:56:17



























마사이족 대추장 만나다

애틀랜타 아들집에 갔다가 아들네와 가까이 지내는 안 준형 전도사 만나 흥미있는 이야기 들었다. 언젠가 한국인이 마사이족 대추장 되었다는 신문 기사 읽고 감탄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안 전도사 아버님이시란다.

세상에 이런 일이!

대추장님 (안 찬호 선교사님)의 삶이 남 달라서 듣고, 읽은 이야기 추려서 여기 띄워 본다.

편의상 1 인칭으로 이야기 편다.

나는 1951년 강원도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초년에 집이 가난하여 많이 굶주렸고 고등학교 다니다가 광부됐다.

광부 7년 차에 갱도가 무너져 고 집사님과 나는 막장에 갇힌 채 구조 되기만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집사님이 주기도문 가르쳐 주셔서 둘이는 실신 할때까지 그 기도 드리고 드리고 또 드렸다.

우리는 시체실에 안치되어 집사님은 깨어나지 못하시고 나는 깨어났다.

눈 뜨고 보니 온 천지가 하얗기만 하고 아무 것도 없어 몽롱한 채 어리둥절 해 있는데 갑자기 흰 것이 없어지고 마귀가 나타나 얼굴 맞대고 눈을 부라리며 괴성을 지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더 큰 소리로 맞섰다.

알고 보니 사망 진단 하러 온 의사가 쉬트 제치고 보니 시체가 눈을 뜨고 있어서 벌어진 일이다.

나는 고 집사님의 전도와 믿음 좋은 아내 (김 정희) 덕에 주님 영접했고 아내의 도움으로 공부해서 (방통고, 감신대) 목사 됐다.

나는 탄광촌의 뼈아픈 삶을 겪으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려고 목회자의 길을 택했고 목사 된 후 그런 기회 오기를 기다리던 차에 아프리카 선교 요청이 와서 선뜻 응했다.

선교사 가자면 그 곳 언어 학습, 주민 알기 등 상당히 준비 해야 되는데 나는 사정상 이런 준비 거의 하지 못한채 사납기로 이름난 케냐의 마사이족 선교를 위해서 1991년 3월 18일 한국을 떠났다.

케냐에 도착해서 선교할 마사이족 마을로 가다가 어처구니 없는 일로 다른 마사이족 마을에 내동댕이 쳐졌다. 끔찍했다.

걸려있는 뻐스 시간표는 믿을 수 없어 뻐스 놓치지 않는 데에만 정신 팔다가 소변 보는 것 깜빡 잊고 차를 탔다. 가다가 더 참을 수 없어 차를 세우고 내려 가면서 손짓으로 기다려 달라고 부탁 했는데 용변 보고 와서 보니 내 짐 내려 놓고 뻐스는 가버렸다.

가라는 손짓으로 알았나 보다.

인적도 없는 모래밭 길을 여러 시간 가다가 마을이 보여 말할 수 없이 반가왔다.

서둘러 마을에 들어서자 마자 느닷없이 젊은이 서너 명이 나를 낚아 채어 반 죽도록 두들겨 패고 마을 안으로 끌로 간다.

사람들이 둘러서 있고 그 중 한 사람이 내 앞에 와서 뭐라고 한다.

뭘 묻는 것 같다.

대답은 해야겠고 머뭇거리면 불리할 것 같아 얼른 ‘Yes’ 했다.

또 묻는다. 이번에는 ‘Yes’ 하면 안될 것 같아 ‘No’ 했다.

잠시 가서 의논하더니 와서 또 묻는다.

고통이 하도 심해서 막가는 심정으로 ‘OK’ 악을 썼더니 사람들이 웃기도 하고 술렁인다.

살벌하던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는데 안도의 숨 다 쉬기도 전에 체격이 우람한 한 사람이 칼 치켜 들고 나한테 온다.

‘아! 이제 죽는가 보다’

눈 감고 기다렸더니 내가 아니라 내 손 묶은 줄을 끊어 준다.

그 줄은 젖은 쇠가죽 이어서 마르며 조여오는 고통이 아주 심했다.

들떴던 분위기가 가라 앉자 추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내 앞에 서더니 탁! 얼굴에 침을 뱉는다.

‘어? 이런 모욕 당하다니!’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추장 얼굴에 탁! 탁! 두 번 뱉었다.

‘아뿔사! 큰일 났구나!’

하지만 어찌하랴. 이미 엎지른 물을 ….

모든 것 체념하고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환호성이 요란하다.

침 뱉은 것은 내 생명줄 수분을 주어 환영한다는 뜻인데 내가 배로 화답해 주어서 고맙고 좋다는 반응이었다.

20 여 년 같이 지내면서 친해졌고 내가 고마웠는지 추장 회의에서 나를 명예 대추장으로 추대했다. 그것이 한국에 알려졌던 것이다.

그동안 학교, 병원, 교회 여러개 세웠고 앞으로도 이런일 계속 할 것이며 지금 새 과제로 교회 자립과 우물파기 사업 추진하고 있다.

둘째 (안 전도사) 가 아프리카 선교 계획하고 있다니 고맙고 독자적으로 개척하겠다고 하니 대견하다.

자랄 때 마사이 친구들과 잘 어울렸던 걸 보면 잘 할 것 같다.

아내는 주님이 나한테 보내 주신 천사다.

어렸을 때 빵 사건 (몇 번 갔다가 못 얻음) 으로 교회 미워하던 나를 주님 앞으로 인도 했고 완고한 나를 목사 되게 했다.

갖은 어려움 다 견디며,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나를 도와 오늘이 있게 했다.

두 아들 끌끌하게 잘 키워 주었다.

(지금 큰 아들은 사회인으로, 둘째는 목회자로 제 몫 잘하고 있음)

나는 아내에게 지우기 어려운 미안함이 있다.

아내가 풍토병 때문에 간이 상해서 한국으로 수술 받으러 갈 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길을 혼자 가게 했다.

다행히 건강하게 돌아와서 대 못 면했다.

얼마 전에 내가 전갈에 쏘여 죽을 뻔 했는데 아내의 극진한 간호 (탄광촌 간호사 역임) 로 살아났다. 미안함에 고마움이 겹쳐 이제 나는 언제 어디서나 ‘팔불출이’ 자청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의 덕목 중 하나로 병역을 강조한다.

나 자신 특전사에서 열심히 근무했고 (김 신조 특공대 1기생) 군대 가지 않아도 될 두 아들 한국 해병대 복무하게 했다. 내 뜻 기꺼이 따라 주어 고맙고 고생 시킨 것 미안하다.

나는 마사이족 선교를 평생 사명으로 알아 최선 다하고 있고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는 것 굳게 믿는다. 그리고, 기도로 물질로 도와주시는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감사 드린다.

안 전도사에게서 들은 이야기, 안 목사님의 책 (들어쓰심) 에서 읽은 이야기 다 옮기지 못해 아쉽고 그 나마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 같아 송구하다.

얼마 전에 안 목사님이 여기서 멀지 않은 큰아드님 댁에 오셔서 반갑게 만나 귀한 말씀 들었다.

이번 글 미진한 것, 이번에 들은 말씀 정리하여 속편 쓸까 생각 중이다.

두 분 선교 사역 풍성한 열매 거두시기 간절히 기원한다.

 

김 상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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