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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불이 붙지 않을 수 없었다
이주익
- 2009
- 2017-08-01 23:33:22
_ 불덩이가 서울에 놓였으니 서울에 불이 붙지 않을 수 없었다.
* 1931년 9월 24일 협성신학교(감신대)에서 이용도 목사를 모셔 27일까지 집회를 열었다. 이용도가 설교와 찬송과 기도를 맡고 진행은 사회자가 보는 형식이었다.
이번 4일간의 부흥회에서도 “영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기도에 불이 붙은 것이다. 용도 목사가 설교를 마치고 학생들과 기도를 시작하자 그 기세가 너무도 열렬하여 온 회중이 당혹스러움을 느낄 만치였다. 이렇게 폭발적인 기도는 학생들도, 사회자도 처음이었다.
찬송과 설교가 끝나고 기도시간이 되었다. 사회자는 긴장한 눈빛으로 장내를 둘러본다. 그러나 학생들의 기도는 폭발한다. 기도 때문에 야단야단. 저녁 집회가 끝났다. 학생들은 총총 기도실로 들어갔다.
기도실은 밤 10시면 닫았다. 밤새워 기도할 기세였으나 선생이 와서 그들을 숙소로 돌려보냈다. 끌려가면서 우는 이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과도 같았다.
방으로 돌아온 학생들은 기도의 불씨가 행여 꺼질세라 그대로 있는 것이 불안했다. 규칙도 규칙이지만 도저히 안 되어서 숙소를 몰래 빠져 나와 뒷산으로 올라갔다.
* 학생들이 하나 둘 숙소를 빠져나가자 사감 선생은 각 방을 조사했다. 허다한 방이 텅 비었다. 선생은 학생 하나를 붙잡고 다른 애들이 어디 있는지 캐물었다. 무악산(안산, 금화산)이라는 것을 알아낸 뒤에는 학생을 앞에 세우고 그 산으로 들어가 잠든 야밤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학도들의 기도를 은밀히 날개 아래 감추어주심으로 사감은 학생들을 찾지 못했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 집회마다 찬송과 설교로 기도의 화약이 장전되고 기도 시간에 성령의 화염이 무서운 힘으로 치솟았다. 저녁 집회 후에는 기도실에서 기도를 먹고 마시다가 10시가 되면 사감의 눈을 피해 무악산으로 가서 다시 밤새 기도를 먹고 마셨다. 협성신학교의 4일 집회는 이런 식으로 끝이 났다. <이용도 목사 365일 묵상집> 정재헌 편저. ㈜행복미디어. 2015년. 486-488면.
* 용도는 짐을 싸서 무악산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렸다. 기도의 바위는 이상하게 뜨끈뜨끈했다. 며칠 전 협성신학교 학도들이 뿌렸던 눈물 때문이었다. <위의 묵상집> 490면.
-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기도에 불이 붙은 뒤로 기도와 전도에 전념했던 이들은 고난의 시기를 지나던 한국교회에 그 얼마나 큰 보탬이 되었는가!
그런데, 성령의 큰 움직임이 나타났고 회개와 소망의 찬송을 목청껏 불렀던 전당에, 어느 날 변질된 신학자가 투입되고 세속적 유혹이 흘러들어 와 경건이 상실되었고, 교권의 가라지도 침입하여 인간 격투장이 되어 버렸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단아가 등장해 장정을 사장(死藏)시키고 정관을 묵살하면서, 불법 수행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돌이킬 기회가 있었으나 탐욕의 끝이 무덤임을 몰라, 하나님의 얼굴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가다가 이젠 기도가 막혔고 대화가 불통이다. 애석하지만 그래서 막장(幕場)이다.
* 기도와 회개와 전도 열풍이 온 누리를 화창케 한 아름다운 동산이, 눈앞의 승부에 목을 건 몇몇 별 난이들 때문에 충만했던 기쁨과 즐거움이 떠나 치유 불능, 파멸 지경에 왔다.
민족의 성지를 망가트리고 모판에, 모종까지 버려 논, 이사회를 대표하는 이사장과 교수와 학생을 보살필 총장은 보응을 통감해야 마땅하다.
* 감신대의 앞날은, 하나님의 처벌이 넘어가야만 성산(聖山) 회복이 될 것으로 본다.
2017년 8월 1일
서대문교회 담임목사 이주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