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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자 나아만 장관의 만남의 복
관리자
- 1814
- 2017-08-08 20:33:31
1. 시작하는 말
오래 사는 것, 재산이 많은 것,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도덕을 지키기를 즐거워하는 것,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이 오복인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입니다. 그런데 골고루 복을 받은 사람이 배우자에게 살해된 사건이 있고, 고생하던 사람이 배우자 덕에 골고루 복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만남이란 오복을 받거나 못 받게 하므로 오복보다 더 중요한 복은 만남의 복입니다. 인격과 실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만남의 복이 없어도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인간을 부르시는 하나님이시요, 성육하여 인간을 만나러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신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나환자인 나아만 군대 장관의 만남의 복
아람 곧 시리아의 국방장관인 나아만은 하나님의 역사로 아람을 구한 영웅이므로, 왕에게서 크고 존귀한 자로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심각한 불행이 하나 있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조건을 다 합쳐도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불행이었습니다. 나아만은 나환자이었습니다.
모든 호조건을 압도해 버릴 정도의 심각한 불행이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원망과 절망의 이유만은 아닙니다. 어딘가에, 또는 무엇인가에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치유가 되거나, 극복을 하거나,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나아만에게도, 그 자신은 몰랐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있었습니다. 나아만의 집에는 포로로 끌려와서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드는 이스라엘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몸종이었지만,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주모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왕의 총애, 막강한 권세, 명성과 재물, 큰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뛰어난 지략과 용맹, 아람의 종교들의 신들, 나라 안팎의 명의들과의 만남으로도 못 고친 나병을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는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종인 소녀의 생각이 아닙니다. 바보가 아닌데 무슨 치도곤을 당하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까? 믿는 그녀가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한 것입니다. 나아만에게 아람을 구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나아만이 깨닫고 믿어 구원받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종의 말을 전해들은 나아만은 ‘어린 계집종이 뭘 안다고.’ 하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가 고했고,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특별히 부탁하는 친서까지 전하게 했습니다. 나아만은 즉시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선물하고, 아람 왕의 친서를 전했습니다. 여호람 왕은 옷을 찢으면서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라고 푸념했습니다. 늘어놓는 푸념 하나하나가 다 맞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점에서는, 그 하나하나의 푸념이 다 헛소리이며, 신하들과 백성을 불안하게 할 뿐입니다.
실상,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통치자이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고, 백성들에게도 우상숭배를 권장하면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라고 자기의 무능을 말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면서도 믿고 기도할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여호람 왕은 이스라엘의 만남의 복이 아니라, 만남의 화이었습니다. 직장이나 사회, 군대나 국가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왕이 옷을 찢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이면서 왜 그렇게 믿음이 없냐? 염려 말고 그 나환자를 내게 보내면, 그가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줄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있는 것을 알리라.’라는 의미입니다.
같은 불행한 일을 대하는 태도가 어쩌면 그렇게 다릅니까? 왕이라는 통치자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옷을 찢으면서 탄식하고, 여종인 소녀와 선지자 엘리사는 이방인 나환자 국방장관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보일 절호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믿음의 유무의 차이입니다.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 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보일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의 불행을 통해서도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시는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전해들은 나아만은,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엘리사의 집 문에 섰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마중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마중은커녕, 기껏 엘리사가 보낸 심부름꾼이 오더니,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라고 엘리사의 말을 전하기만 했습니다. 국제 관계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엘리사가 자신의 목숨은 물론, 자칫하면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외교상의 심각한 결례인 줄 알면서 아람 왕과 나아만 국방 장관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인간 엘리사의 생각이 아닙니다.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나아만을 바닥까지 낮추시고, 그와 그의 나라로 유일한 구원자 하나님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입니다.
나아만 장관은 대노하여 물러가면서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어쩜 그렇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구구절절 아는 소리를 합니까? 교회나 직장이나 국가도 주제 파악을 못하면서 아는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참으로 나아만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아직도 자기가 살아 펄펄 뜁니다. 여전히 교만을 부립니다. 여태껏 해결 못한 자기 방식이나 종교들의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도움 받으러 온 사람답게 겸손히 하나님의 사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게 아닙니까? 먼 나라에까지 찾아온 목적이 뭡니까? 나병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까? 애초에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안 해 주면, 안 고치기로 했던 것입니까? 사람은 목적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을 일깨워 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 장관에게 만남의 복이 된 것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아만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그의 분노의 행동을 따르지도 않고, 목숨을 걸고 지혜로운 충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종들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네까짓 놈들이 뭘 안다고 감히 내게 설교를 해!” 하며 노발대발하지 않고, 큰 인물답게 자기의 잘못을 알았을 때 즉시 돌이킬 줄 알았습니다. 나아만은 즉시 내려가서 엘리사 선지자의 명령을 따라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가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의 치유를 체험했습니다. 나병 치유의 복보다 더 큰 복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한 신앙고백입니다. 열왕기하 5:15을 보면,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신의 성육이신 주님을 만난 나환자도 주님을 믿고 따름으로써 치유되었습니다. 유의해야 할 점은 만났다고 만남의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뜻이나 생각을 부인하고, 만난 사람의 뜻과 말을 따라야 합니다. 안 따르면 소용없습니다.
약 40년 전, 교인의 남편이 간경화로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받고, 얼굴색이 까맣고, 물이 차서 배가 잔뜩 붓고, 호흡을 잘 못하는 상태로 퇴원했습니다. 안수기도를 하는데 시큰둥했습니다. 어느 날, 꿈에 그분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다 보니 그분의 영혼에 기도를 하는 겁니다. 날이 밝자 ‘가시겠구나. 예수 믿고 천국 가셔야 하는데.’ 하며 심방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가실 수 있어요.”라고 권하는데 막무가내였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시고, 세례를 받으시면 됩니다. 1분도 안 걸립니다.” 끝내 믿는다는 한마디를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목사를 만났지만 영생 구원이라는 엄청난 만남의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길들여진 머리는 잘 안 바뀌므로 가족과 친지를 위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3. 맺음말
사람을 잘못 만나 타락하거나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참으로 인복이 많았습니다.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충신을 알아주는 왕을 만났고, 대노한 주인에게도 지혜로운 충언을 하는 종들을 만났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잘 믿는 이스라엘 소녀를 만났고, 영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그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유의해야 할 것은 만났다고 만남의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뜻과 감정과 생각과 의지 등을 부인하고, 만난 사람의 언행을 통한 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만 만남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을 만난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 만나는 사람들에게 만남의 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