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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세상의 소금인가
관리자
- 1313
- 2017-10-24 19:27:49
난 정말 세상의 소금인가 1. 시작하는 말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세분화 된 각 분야의 새로운 지식과 정보, 그리고 융합된 지식과 정보의 혜택을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이나 양심, 마음가짐이나 사고방식, 예절이나 도덕은 더 나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사랑의 기술」 등으로 유명한 사회심리학자요 정신분석학자요 인문주의 철학자인 유대계 미국인 에릭 프롬(Erich S. Fromm)은,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눈부신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인간 자체 건설에는 두말할 것 없이 실패했다고 단언했습니다. 로마서 12:2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소금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2. 소금의 유용성 예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꽃들도 있고, 값비싼 향수도 있고, 값비싼 요리 재료도 있고, 강한 동물과 강한 철들도 있고, 변하지 않는 오색영롱한 각종 보석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모양도 없고, 향기도 없고, 맛도 없고, 강하지도 않고, 값비싼 보석도 아닌 소금에다 비유하셨겠습니까? 여기에 매우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과 고대의 저술에는 가장 유용한 것을 소금으로 비유했습니다. 소금의 주된 유용성으로 부패 방지와 신선도 유지와 맛을 내는 것, 해독과 치료와 생명 유지의 역할을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금의 유용성 때문에, “소금 한 자루는 인간의 생명만큼이나 중요하다.”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처럼 소금이 유용하고 중요했으므로,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바치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제물에 넣었고, 언약의 표로도 사용됐습니다. 소금은 최고의 경의를 나타내는 표였고, 왕이 주는 소금을 먹는 것은 두터운 신임을 받는다는 증거가 됐습니다. 소금과 떡을 같이 먹는 것은 동맹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자신의 영이 내재한 우리를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불신앙과 우상 숭배, 무질서와 가치관의 혼란, 양심 불량과 도덕적 혼돈, 불의와 부정직, 뇌물 수수와 부정부패, 성 정체성 혼란과 성적 타락, 무직과 실직 등으로 인한 공허감과 허탈감, 무기력과 의욕 상실, 분노와 증오, 묻지 마 폭행과 살인, 불안과 두려움, 위화감과 반감, 배신과 반역, 가정의 불화와 반목, 졸혼과 이혼 등으로 어수선합니다. 이런 병폐에 시달리는 세상에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정권이나 병폐를 일소하겠다고 설치고, 개혁한다고 설쳤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커녕, 같거나 비슷한 병폐를 만들었고, 공산 독재 정권과 군부 독재 정권은 피의 홍수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어느 정권이나 단체, 군자나 현자, 지자나 영웅호걸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겁니다. 실상,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중 하나는, 불신앙과 죄악의 세상을 위한 소금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인 교인들의 역할이 절실한데, 교계도 극심한 영적 혼란과 말씀의 혼잡으로 소금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소금이 아무리 유용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소금 그대로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의 소금인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죄 사함과 회개와 믿음, 성결한 삶과 영생을 위해 유용하고 중요한 역할을 안 하고 그대로 있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한 소금 역할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많이, 보다 깊이 깨닫고 심비에 새겨야 합니다. 또, 은사나 능력이나 재물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은사와 복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소금 같은 신앙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금이라면, 우리 주님은 소금을 소금되게 하는 짠 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소금 맛이라 할 수 있는 주님의 영을 모시는 것과 온갖 신령한 은사와 능력을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전 건물과 많은 헌금과 수많은 교인도 중요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금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것들이 소금 역할을 못한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교인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소금 자체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강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롭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소금은 그 자신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고, 다른 것들에만 유용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주님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소금에 비유하신 뜻이 있는 겁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아닌게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도, 주님을 믿은 것도, 구원을 받은 것도, 주님의 영이신 성령을 모신 것도, 은사와 능력과 복을 받은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인 것은, 소금이 소금인 것은 다른 것 속에 들어가 녹아 없어지며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소금이란 반드시 다른 것과 섞여질 때에만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단순히 ‘너희는 소금’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님이 불신앙과 온갖 죄악이 판치는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위한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지혜와 지식과 정보와 기술 등이, 다른 사람들 속에 들어가 녹아 없어지며 스며들어야 합니다. 교인들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만 위하는 사람이 되면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 속은 물론, 사랑이 절실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스며들어야 합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 있는 글이 소개됐습니다.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그곳에 사는 청소년 200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라는 과제를 냈습니다. 조사를 마친 학생들이 그 청소년들의 미래에 대해 써낸 평가서의 내용이 모두 같았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전혀 미래가 없다.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그 200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 조사를 하라는 과제를 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죽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간 20명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을 제외하고,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변호사와 의사와 사업가 등 상류층이 많았습니다. 놀란 교수는 그들 모두가 그 지역에 살고 있었으므로, 한 사람씩 만나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뭡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여 선생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적적인 교육 방법으로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그처럼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었습니까?” 늙었지만 아직도 빛나는 눈을 가진 그 여교사는 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지요.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놀라운 사실은 소금이 된 여교사의 마음속 사랑과 지혜와 지식은 줄어들기는커녕,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고, 또 그들을 통해 더욱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룬 결실인데, 자신과 가족에게만 머물게 하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힘들게 이룬 많은 결실로 교만을 부리는 잘난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신 사랑의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소유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 녹아 없어지며 스며들고 있습니까? 둘째, 우리의 재물이 다른 사람들 속에 들어가 녹아 없어지며 스며들어야 합니다. 이상철 성도와 이덕선 권사 부부는, 미국 어학연수 중에 교통사고로 숨진 딸 이진아를 위해 3억 원을 바쳐서 경기도에 덕진교회를 건축하여 봉헌했다고 합니다. 또, 기념 도서관 건립을 위해 50억 원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재물과 수입의 일부가 선교사나, 어려운 사람이나, 가난한 학생 속에 들어가 녹아 없어지며 스며들어야 합니다. 복지 기관에도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살맛 나게 됩니다. 3. 맺음말 여러분! 결코 맛을 잃은 소금 같은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금은 놀라운 효능이 있는 좋은 것이지만 짠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지하 광맥이나 지층에서 캐낸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햇빛에 오래 노출되거나, 비에 젖으면 짠맛을 잃어버리므로 버려져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람들의 발에 밟혔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과 각종 은사와 능력과 은혜와 복을 받은 우리 모두, 소금이 되어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살맛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또, 죄 사함을 받고, 성결한 삶과 영생을 누리게 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의 충성과 헌금으로 소금 역할을 하는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다함이 없습니다. 영원한 천국까지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마태복음 5:13, 레위기 2:13)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3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