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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중요 성구:…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엡 4:20-2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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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01 05:28:28

[너희]는 앞의 19절의 “저희”와 대조되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전술한 바와는 달리,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격, 사상, 업적, 그리고 그분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
이 교육에 관해 바울은 더욱 자세하게【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1)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경우에) 참(사실)인 것처럼”으로 보는 설(“Grotius”,① 黑崎幸吉), (2) “예수님 안에서 그분(그리스도)이 진리이신 것 같이”로 보는 설,② (3) 구 전체의 주격을 예수께 두고 그분을 신자의 모범으로 보는 설,③ (4) “같이란 낱말에 중점을 두어, 예수님 안에 진리가 있는 것같이 너희 편에서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뜻으로 보는 설④ 등이 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랑과 정의와 자유와 진리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4)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독자들은 예수님 안에 내포된 [진리]를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1:1, 3의 주석을 보라.)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육 내용이며, 교사이며, 교육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구주가 그리스도라는 직명이 아니고 [예수]라는 역사적 명칭으로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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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in 이상근.
2) “Creden, Von Soden, Westcott”(in 이상근), H. C. G. Moule.
3) “Jerome, Erasmus, Estius”(in 이상근), 이상근.
4) “Harless, Olshause”(in 이상근), M. Henry, F. F. Bruce, F. Foulkes, R. C. H. Len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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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것은 사도의 관심이 확실히 구체적인 생활상의 모범으로서의 구주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小畑 進).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독자들에게 먼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유혹(아파테스, ἀπάτης: ‘책략’, ‘기만’)의 ‘욕심’(2:3의 주석을 보라.)을 따라 썩어져 가는]이란 옛사람의 특성이다. 특히, 썩어져 가는(프테이로메논, φθειρόμενον)은 현재 분사로 현재도 계속 썩고 있다는 뜻이다. 메이어(F. B. Mayer)는 “이 현재 분사는 미래의 멸망의 확실성을 보여 주므로, 이 말에서 영원한 멸망을 찾아볼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구원(2:8)이나 멸망이 벌써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증언하는 데 본서의 특색이 있다. 그것은 또한 신약의 기본 주장이기도 하다”(이상근).
[옛사람]은 죄와 율법, 육과 세상, 죽음과 멸망의 저주 아래 있는 자아를 의미하는 것이다(참조: 롬 6:6, 골 3:5-9).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란 대개 세례를 받을 때 세례복을 입기 위해 옷을 벗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죄와 율법, 육과 세상, 죽음과 멸망의 저주 아래 있는 자아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바울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고 하였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갈 2:20)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죄에 대하여(롬 6:2), 자기에 대하여(고후 5:14-15). 울법에 대하여(롬 7:6, 갈 2:19). 세상에 대하여(갈 6:14), 초등 학문에 대하여(골 2:20) 죽은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권한다.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보다 더 정확한 번역은 “너희의 ‘마음’(4: 17의 주석을 보라.)의 영에 있어서 새롭게 됨을 받아”이다. 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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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자의 로마서 6:6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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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⑥이 아니라, 인간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다.⑦ 이 영(프뉴마, πνεύματι)은 인간의 내적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고(고전 2:11, 롬 8:9),⑧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사는 구속받은 인간을 지시하기도 한다. “바울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 하여(고전 6:17), 신자의 내적 인간의 존재 형식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존재 형식과 같음을 보여 주고 있다”(C. H. Dodd).⑨ 이러한 존재 형식을 갖는 인간은 영으로 성령과 관계하여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하며(롬 8:16),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고(고전 14:2), 영으로 기도하며(고전 14:14), 영으로 찬미한다(고전 14:15). 또한, 영이란 사고하고(롬 8:6), 인식하며(고전 2:11, 롬 8:16), 의지하고(롬 8:4-5), 판단하는 기능이 있다(고전 5:3). “영의 지배를 받는 영의 도구가 곧 마음인 것이다”(C. R. Erdman, 이상근).
[새롭게 되어](아나네우스타이, ἀνανεούσθαι)는 ‘새롭게 됨을 받아’인데, 현재 부정사로 끊임없는 갱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이디(Eadie)는 “이 변화는 원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심리적인(마음의) 것은 아니다. 또는 마음에 있어서의 교리나 실제의 문제에 대한 의견의 형식적인 변화를 말하지도 않는다. 오직 이는 마음의 영에서의 변화이다. 그 곳은 마음에게 그 경향과 사상의 재료를 제공한다. 그것은 희미한 신비적 적막에 쌓여 있는 영만이 변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마음의 영에서 되는 것이다. 사람의 신령한 기능 전체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그 능력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인 것이다”⑩라고 설명하고 있다. 테일러(W. H.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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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Oecumenius, Theophylact, A. Martin, Fritzche”(in T. K. Abott), 윤성범.
7) T. K. Abott, A. Clarke, R. P. Martin, C. W. Carter, F. F. Bruce, F. Foulke, H. C. G. Moule, G. Barlow, p.199, W. Hendriksen, A. S. Wood, 黑崎幸吉, 小畑 進, 이상근.
8) 저자의 고린도전서 2:1과 로마서 8:9의 주석을 보라.
9) C. H. Dodd, op. cit., p. 60.
10)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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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변화는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영적 변화는 개인이 자신을 성령의 인도에 맡길 때 일어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새사람의 출생 경위에 대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라고 설명한다.
이 구절은 22절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옛사람과 새사람, “욕심을 따라”와 [하나님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으로 받은], “벗어 버리고”와 [입으라] 등등이다.
[하나님을 따라](κατὰ θεὸν)는 약한 번역이다. 이 구는 단순히 ‘경건한’(godly) 또는 ‘하나님의 뜻대로’의 의미로 사용되는 수가 있으므로(고후 7:9-11), 이 경우도 단순히 “경건하게”(Hofmann), 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T. K. Abott)의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있다.⑪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골 3:10)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따라서 [새사람]이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ἐν δικαιοσύνῃ καὶ ὁσιότητι τής ἀληθείας) 지으심을 받은](κτισθέντα: 부정 과거 시제) 신자를 뜻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테일러(W. H. Taylor)는 “새 생명은 [의와 거룩]의 특징을 갖게 된다. 이것들은 상호 보완적인 영적 자질들이며, 심령 속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들이다. 살몬드(salmond)는 이 두 가지 특성을 구별하여 ‘전자는 기독교인들이 주로 자기 형제들을 대하는 정당한 태도를 말하고, 후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한다.’라고 한다. [진리]란 말은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상기한 두 가지 특성에 다 같이 관련된 말이다.”라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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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상동.
※ 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42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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