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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지도자 되면 감리교단에 희망이 있는가?
오재영
- 1790
- 2017-10-31 00:32:22
신앙의 연륜에 맞는, 자신의 위치와 책임감을 갖춘 목회자와 성도들을 대표한 품격 있는 소수의 대표들이 모인 곳이라면, 더욱이 주님의 임재 앞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언제나 상식을 벗어난 이들 때문에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 모두가 오물을 한바가지씩 뒤집어쓰는 일들이 있다. 지난 31회 입법총회도 회의 장소가 교계에서 소문난, 모든 성도들이 영성일기를 쓰는 교회임에도 하루를 연장하면서까지 갑론을박 다양한 이들마다 온갖 흔적 들을 남겼다.
“옛말에 영웅은 난세에 등장하고, 현숙한 여인의 존재는 가정에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칠 때 드러난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에는 방송으로 보든 총회를 40여년을 바라보는 사역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것도 뒤늦게 섬기게된 감리사를 마치는 해였으므로...
총회를 앞두고 예년과 달리 미리 보내준 회의 자료집을 보면서 준비하든 중에 갑자기 기독교 방송과 감게, 당당 뉴스, 심지여 기독교 타임지에까지 감독회장에 대한 온갖 내용들이 등장을 했다. 중요한 교단의 총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나는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나모르는 무슨 대단한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구도자 이전에 이성을 갖고 있는 명색이 성직자들이라면 시기정도는 구별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총회장에서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말을 들었다. “감독회장이 힘이 없는 것 같다고, 옆에 있던 이가 아마 재판 때문일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지난번 입법총회보다는 의장으로서 사회를 무난하게 진행했다는 생각이다.
나도 철없든 시절, 10여년동안 거리를 떠돌며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젊음을 허송 한 적이 있고, 지금도 나름대로 의(義)를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을 마음으로, 때론 부끄럽지만 작은 정성으로 후원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 길은 누구나 가지 않는 길이며 고독한 길이고 또 그들이야말로 현존하는 미래의 주역들이 될 테니까...
그러나 총회 장소에서, 그리고 총회 후에도, 한마디로 표현해서 이들은 한 번도 내 예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이니 차분하게 기다리노라면 때가되면 밝혀질 것이다. 자중 하랬드니, 어떤 이는 감독회장을 비호한다고 비아냥으로 응수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교단의 대표를 비난하는 것이 구도자다운 성직자의 자세인가? 그거야말로 누워서, 바람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침을 뱉는 격이고, 선 밖에다 칠을 하는 짓이다.
이제는 총회 참석 후에도 그 버릇 고치지 못하고 당연한 듯 다짐이나 각오, 미래에 대한 제시는 없이 자기보다 어느 면으로 보나 “예”를 갖추어야할 이들을 비난하며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개중엔 사실을 알면 설마 할 사람들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표현이지만, 지금 비난받는 이들은 이제 4~5년 안에 모두가 지금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제 그 자리에는 본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각자 위치에 따라 본인들이 그 무대에서 책임을 감당해야할 세대들이다.
그에 대한 준비들을 마음으로 다짐하며 준비들은 하고 있는가? 그때도 여전히 중심에서 밀려난 변두리에서 분노를 품고 빈 수레처럼 자기 지도자의 약점들의 틈새를 찾아 집요하게 붙들고 겁박하며 자신들의 존재감들을 드러낼 것인가? 그러나 역설적으로 본인들이 보기에 실망스런 그 모습들은 각자 엄위 앞에서 혹독한 자기성찰이 없으면 저 추한 모습들은 미래의 자신이기에 두려움으로“반면교사, 타산지석”삼을 뿐 지적하기에 허송세월할 일은 아니다.
나는 우리 교단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 제도자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모두가 감독이 되지 않을 사람들이 남잘 되는 꼴 보기 싫어 만들어 놓은 것처럼, 자신이 감독의 직분을 맡을 가능성을 두고 배려하며 교단의 미래와 이교도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깊은 기도와 고민 속에 신앙의 고백으로 주님의 뜻을 받들어 만들었다는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가 없다.
출마자가 다른 이를 만나 음식을 나누어도 안 되고, 무슨 기념 화환을 보내도 안 되고, 자신의 섬김에 대한 발표를 해도 안 되고, 지역에 후보를 돕는 책임자도 안 되고, 헤아릴 수가 없다. 대부분 상식선에서 이해하고 넘어가기에 그렇지 그것들을 핑곗거리로 삼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먹잇감이다.
이제는 모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제도부터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기대했던 2년의 겸임 감독제가 부결되었다. 누구하나 찬성발언 하지않았다. 그러나 미래를 위하여 감독회장과 각 연회의 감독들은 이제 붉은색 가운을 벗고 감독과 연회장이라는 명칭으로 돌아 가야한다. 여러해 전에 체육관에 모여 회개할 때 입었든 “앨브(alb)” 는 왜 착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교단의 허물을 들추는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이들은 여러 군소 교단에 속한 목회자들이 부러워하는 교단의 중요성을 모른다.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나뭇가지에 톱질들을 하고 있다. 지금 자신들이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정회원 목사로서 교회가 있고, 함께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고, 지방과 교단에 속한 것이 모두가 본인들의 능력인가?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오물이 있다면 누군가는 치워야한다. 모두를 위해서,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신탁으로 받은바가없다면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 옳다. 그것은 오물을 싼 종이와 그 기구도 함께 치우게 될 터이니까...
아침 Q.T시간에 결론의 말씀으로“성도는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길을 그분의 은혜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이 가슴에 아련함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교회를 위하여 지도자를 세우실 것이다. 감독회장이든, 감독이든 목사든, 상황에 따라 때로는 “사람의 매와 인생채찍을 사용하심과 징계하심으로” 입법회의 기간에도 동기의 혈액 암과 대장암의 합병수술기도요청과 두 분의 서거 소식을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면서 마음을 정리한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하루하루가 주님의 부르심에 준비하는 시간들임을 그리고 나에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