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진짜 간음한 여인일까?

관리자
  • 3072
  • 2018-02-07 03:09:58
심호택 목사님의 글과 송창섭 목사님에 댓글 논쟁을 통해 나타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진짜 간음한 여인일까?"입니다.
이 질문에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실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엔 이 여인이 분명 현장에서 간음을 하다 잡힌 여인으로 나타나 있으며
예수님도 그 여인의 간음죄를 인정하시는 듯한 말씀으로 용서하신 것처럼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진짜 간음한 여인일까?"라는 질문은 불필요한 질문이며 자칫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주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선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가 너무도 적다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때의 상황을 잘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질문으로 또 다른 논쟁을 불러 일으키려 함이 아님을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적는 것이니 너그러운 마음과 은혜로 보아 읽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물론 제 글에 대한 의문점이나 오류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팩트(하도 사람들이 팩트 팩트하면서 유행어처럼 사용함으로 저도 이리 사용해 봅니다. 이 점도 너그럽게 부디 봐주시길 빕니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한정된 정보(팩트)에 의한 제 개인적인 해석과 상상이 있음도 부디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진짜 간음한 여인일까?" 문제의 주제를 거론하면서 저는 마치 스무고개와 같은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그 답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 여인이 간음한 것이 진짜라면 왜 이 여인만 끌려 왔을까요?
간음이란 혼자할 수 있는 죄가 아닙니다. 끌려온 사람은 여인이니 그 상대인 남자가 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을 간음의 현장에서 잡았다 하였는데 어찌 이 여인 혼자만 사람들에 이끌려 왔느냐? 입니다. 만약 현장에서 잡힌 것이 맞다면 그 상대인 같이 간음의 죄를 지은 남자도 함께 글려 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간음의 현장에서 잡혀와야 할 남자는 보이지 않고 여인만이 예수님의 앞으로 사람들에 이끌려 왔다는 것입니다.

2) 그럼 간음은 여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죄일까요?
글쎄요. 제가 성경에 해박하지 않고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또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간음은 여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죄는 분명 아니라 생각을 합니다. 간음하는 여인도 문제이지만 간음하는 남자가 더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간음은 여자가 스스로 자원하여 남자를 유혹하여 간음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경우 즉 여인이 먼저 끼를 부려 남자를 유혹하여 음란한 행위를 하였다면 이 여인은 창녀이든지 아니면 너무도 남자의 품이 그리웠던 외로운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엔 간음이라 하지 않고 간통이라 할 것입니다.

3) 간통과 간음은 어떤 차이일까?
뭐 행위로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의 원인이 누구로부터 기인했느냐?로 그 차이를 구별한다면 대체적으로 남자로부터 기인한 것이 간음이고 여자로부터 기인했던지 아니면 쌍방간의 동의가 있어서 일어난 행위를 간통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간음은 아내가 있는 남자의 바람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간음일 것입니다. 만약 간음에 폭력적인 위협이 가해져 상대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여인으로써 어쩔 수 없는 불가학력적인 성행위가 있었다면 그것은 간음에서 한 단계 더 수위가 올리간 강간이 될 것입니다. 강간은 대체적으로 폭력적인 행위를 가해 성행위를 한 남자에게 그 죄가가 있습니다. 강간을 당한 여인은 어쩌면 무죄라 하여도 무방합니다. 그러므로 여인의 입장에서 강간과 간음은 엄청난 차이를 갖는 것입니다.

4) 간음은 정식으로 혼인한 부부 이외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모든 성행위를 통털어 부르는 말입니다.
강간도 일종의 간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남자에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죄책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에 나와 있는 간음이라 함은 여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공식적인 창녀이던지 아니면 비밀스럽게 바람을 피우는 여자였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그 죄책은 간음을 행한 남녀에게 함께 묻게 될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이 여인은 창녀였을까?
분명 창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창녀와 같이 몸을 파는 여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창부가 동네 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과거 유대인의 율법중심적인 생활 관습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담은 하지 못하겠지만 이 여인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남자들에게 댓가를 받고 몸을 파는 그런 여인은 아니었을 것이란 것입니다.

6) 그렇다면 서로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운 경우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일은 대담하게 낮시간에 일어나기 보단 은밀한 밤시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대낮에 서로 눈이 맞은 남녀가 마을 한 가운데서 그런 행위를 행하였다면 정말 죽으려 작정한 사람이 아니고선 그리 못할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혹 정말 사랑에 눈이 멀어 물불을 가리지 못한 그런 커플이었는 지도 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대범하게 마을 한가운데서 그런 불장난을 하기 보단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 사는 것을 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황상 불같은 사랑을 하게 된 커플도 아니란 것입니다.

7) 그런데 앞서 얘기함과 같이 직업적인 창녀도 인정되지 않던 유대 사회분위기 속에서 서로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는 것은 큰 모험입니다. 그리고 정황상 이 여인의 간음은 둘 다 가정을 포기하거나 도망갈 생각이 없는 경우에 해당 한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음은 사실상 유대의 율법주의적인 생활상에서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만약 간음이 맞다면 그 여인과 그 상대방 남자는 거의 간통에 가까운 행위를 했다 할 것입니다.

8) 간음이란 죄는 그리 쉽게 그 죄를 밝힐 수가 있는 죄가 아니란 것 입니다.
그래서 외도는 아무리 심정적으로 확신이 있다 하여도 그 외도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요즈음은 간통은 죄도 아니라 했으니 간음의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 가지인 것입니다. 어쩌면 2018년 현재의 한국사회의 모습이었다면 이 여인을 간음(간통)으로 정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9) 그래서 간음죄는 반드시 현장에서 잡아야 합니다.
그것 만이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라 정의를 한 것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현장에서 잡혔다 하는 데 왜 그 상대방인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남자만 율법대로 처리한 후였을까요? 아니면 현장에서 발칵된 후 재빨리 남자는 도망간 이후에 이 여인만 잡아서 그런 것일까요?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이라 함은 남녀가 서로 옷을 탈의한 상태에서 (리얼하게 설명드리지 못하는 점 용서하십시요.) 이루어진 것이기에 발가벗은 상태로 혼자 도망하였을 것이란 가정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리고 만약 남자를 놓쳤다면 여자도 놓아줘야지... 굳이 여자만 징벌하려 했다면 그 또한 또 다른 논란과 율법적인 지탄의 대상이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율법사(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어리석은 일을 행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10) 그러므로 간음을 행했다는 여인은 있었을진 모르지만 간음을 행한 남자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인 즉슨 이것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교묘하게 짜놓은 율법사(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간괘(연극)이었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사들은 이러한 상황설정이야말로 예수님을 넘어트릴 수 있는 기가막힌 묘책이라 여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실행하기 위하여 율법사들은 한 여인을 돈을 주고 공모(연기)에 끌어 들인 것 입니다. 이 여인에겐 쉽게 돈을 벌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셈인 것입니다.

11) 그런데 율법사들(바리세인과 서기관)은 뜻밖의 질문과 답을 예수님께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였던 것입니다. 이 한마디가 예수를 할 수만 있으면 잡아 먹으려 들던 율법사들 스스로가 놓았던 덫이 그만 자신들의 발 앞에 놓여진 것 입니다. 보기좋게 한 방을 먹이려다 역공을 당해 보기좋게 한 방을 먹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 또한 설교자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을 들었던 율법사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 이 이야기가 잘 짜여진 대본에 의해 연출된 상황극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율법사들이 누구입니까? 간괘하고 사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도 죄를 만들어 덮어 씌우지 못해 안달이 났던 무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이 있었을까? 만약 양심의 가책이 있는 이들이라면 감히 예수님을 시험하려 하지도 못 했을 것입니다.
율법사(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은 배고픈 이리요 늑대이며 양 한마리의 생명을 가엽게 여기지 않는 약탈자들이며 노략자들이었습니다. 차라리 배부른 사자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13) 율법사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돌로 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아왔다는 그 여인은 율법사들에 의해 돈으로 매수한 연기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그들은 이 여인의 징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넘어트리려 혈안이 되어 있었던 타락한 종교인들의 하수인이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 하여도 이 여인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들이 매수한 여인을 실재로 간음한 여인으로 몰아 돌로 쳐 죽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14) 돈을 받고 상황극에 참여하게 된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겁을 하였을 것입니다. 단지 돈 몇푼 받고 그들의 요구를 따라 연기를 해주었을 뿐이니 말입니다. 이 상황극을 알지 못하는 흥분한 다른 이들에 의해 자칫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돈을 준 이들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며 혹시 날아올지도 모를 돌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을 것이며, 만약 돌 하나라도 날아오게 된다면 이 모든 사실을 모두에게 털어놓고 도망가려 했을 것입니다.

15) 그런데 이 여인도 생각지 못하게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을 둘러싼 율법사들이 떠나자 이 상황극에 공모하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인지 아니면 군중(상황, 분위기)심리에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그래서 양심의 가책이라 하여도 무방함) 들었던 돌들을 땅에 내려 놓고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갔던 것입니다.

16) 예수님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그 여인을 향해 이 사건의 진위를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간음의 진위여부도 확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곤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간음죄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죄에 대한 명확한 의미는 예수님과 이 여인만이 알겠지만 진정 이 죄가 간음의 죄였을까요? 아니면 돈을 받고 죄없는 한 사람(예수)을 시험하여 넘어트리려 한 죄일까요?

17) 저는 전자인 간음죄가 아니라 후자인 '시험의 죄'일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만약 진정 간음죄를 의미한다면 이 여인은 그 후로 그 동네에서 간음한 여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앞으로의 평생의 삶을 살아가야만 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죄인에겐 주홍글씨를 세기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더 중한 징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8) 진짜 간음죄를 지었던 여인이라면 주홍글씨를 세기고 자신의 마을로 돌아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19) 그러므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한마디로 예수님을 넘어트리기 위한 율법사들(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의 주작이었던 것입니다. 이해석이 옳다면 예수님은 간음죄를 용서하심이 아니라 돈을 받고 행한 '주작 가담죄'를 용서하심이며 간음죄에 대하여 용서하시는 예수님과 율법사들의 행위가 진정 옳은 것인가에 대한 율법적인 논쟁은 불필요한 논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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