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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리더의 자리에 그토록 목을 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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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5 01:12:24
김기석 목사의 시편(詩篇) 글에 등장하는 수피즘의 스승인 아부 알리 알-리바티(Abu Ali al-Ribati)에 관한 이야기 중에...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던 아부알리와 알라지 두 사람이 함께 사막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한 사람이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아부알 리가 알라지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으니 리더가 되십시오. ” “그렇다면 내말에 복종하겠습니까?” 알라지의 물음에 아부알리는 “물론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알라지는 사막에서 꼭 필요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배낭에 넣고는 그것을 등에 짊어졌다. 당황한 아부알 리가 “그 짐은 제가 져야합니다.”라고 말하자 알라지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이 리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하십시오.”
그들은 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사막에 어둠이 내리고 그들이 고단한 몸을 쉬려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심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알라지는 밤새도록 아부알리의 머리맡에 앉아 자기겉옷을 우산 삼아 비를 가려 주었다. 아부 알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마음속으로 알라지를 향해 ‘당신이 리더’라고 했던 그 시간을 후회했다. 또 “‘당신이 리더가 되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기 전에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edited by James Fadiman & Robert Frager, Harper SanFrancisco, 1997, p.135).
오늘 교단안팎에서 빛을 잃은 이들로 인한 우울한 소식들이 우리를 실망스럽게 한다. 모두가 내남없이 상대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겠다는 일념으로 모욕하며 빈정거리고 조롱하는 모습들이 신분과 위치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에게 지탄받는 품격 잃은 사회의 정치 모리배와 다름이 없다. 모두가 구도자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정도를 따라 행해야하는 길을 벗어나 사막에서 ‘신기루’를 만나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린 가엾은 모습들이다. 이제 그에게 시시각각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위기를 어찌 극복하려는가?
목회자는 사람들을 성경에 근거한 진리로 인도하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그가 있는 진정한 교회란 동시대에 존재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더욱이 이웃을 위한 미담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공동체는 더더욱 아니다. 때론 윤리적 삶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나 그들로부터 칭송받는 도덕자체가 우리의 궁극적 목적 일수는 없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목회자의 길은 자기스스로의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죽는 곳에서는 신자들이 살고, 목회자가 사는 곳에서는 신자들이 죽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죽음의 길을 가야하는 그 이유도 목회자의 존재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롤 모델인 사도바울의 교훈이다.(고후4:12절).
그러므로 진리를 입으로 말하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 아니지만 그가 말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일은 매순간 피를 흘려야 하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진리에서 이탈된 이들의 잘못된 생각은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진리를 따르려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어야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다.
많은 이들이 인용하는 디트리히 본회퍼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가 복음서를 정직하게 읽어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를 따르라. 그리고 나와함께 죽자.’라고...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통지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그분의 통치를 벗어나 잠시 세상을 따라 사는 어둠의 자녀들이 되기보다는 그분의 통치안에서 고난을 감수하며 빛의 자녀된 삶을 사모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거슬러 올바른 삶을 추구한다하여 그에게 언제나 악을 이기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의 고백대로, 때로는 “패배한 선은 승리한 악보다 훌륭하다.”이것이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따르는 구도자들의 바른 삶이다. 또한“선구자는 늘 등에 박힌 화살을 보아 알아 볼 수 있다”는 말처럼...
아침 생명의 샘 Q.T지에 소개된 국제의료 NGO 복지재단 대표 박 세록님의 “생명을 살리는 왕진버스”에 실린 일부의 내용 중에, 그가 북한과 중국의 접경에 병원을 열고 얼마 뒤에 북한지하교회 성도들을 치료한 내용이 실렸다. 종기가 곪다 못해 뼛속까지 번져 골수염이 되었고, 피고름이 줄줄 흐르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언제나 그들 손에는 성경을 들고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그 성경만이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유일한 매개체라고 믿기에...
그중에 어떤 이는 사 복음서를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드리는 기도가, “예수님, 남한에만 계시지마시고 여기에도 빨리 오시라요. 그래야 우리가 살수가 있습네다.”... 오늘 명색이 성직자들이라는 우리들이 서로를 정죄하며 약점 들춰내기에 바쁜 참담한 이 모습들이 과연 주님께 쉽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