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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을 이루는 길
관리자
- 1572
- 2018-02-13 18:40:42
- 시작하는 말
과학만능주의와 배금사상과 인간을 물질로 보는 사상이 팽배해 가고 있는 이 나라에도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사건들까지 벌어지곤 합니다. 이러한 가족들이 주 예수님을 믿었더라면…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같은 핏줄로 연결된 인연으로 맺어졌기 때문에, 종교나 단체나 기업이나 국가보다 더 하나가 될 가정마저도 쉽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좌파나 우파나 중도파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자기 파 챙기기와 편향적 척결은 통합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를 이루며 깨끗한 나라로 발전하려면, 지도층이 깨끗한 마음으로 온 국민 챙기기와 좌중우를 막론한 부패 척결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절실합니다.
-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자
현대 교회가 앓고 있는 분파와 내분은, 초대 교회인 고린도 교회와 빌립보 교회에서도 앓았던 심각한 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의 일치를 위해 주신 말씀은, 교회와 기업과 각종 공동체와 국가의 분단과 내분을 막고, 획일적 일치가 아닌 조화의 일치를 이루는 데에 결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분 상태인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받는 그리스도의 권면이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 격려나, 내주하신 성령과의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서로 마음을 같이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냥 교인들 각자가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 학교나 기업, 사회나 국가 등의 모든 단체에서 모든 사람이, “왜 하나가 못 될까?” 하고 탄식들을 합니다. 실은, 남들이 자기의 생각과 뜻과 이념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하는 탄식입니다. 대개 홀로 설 능력이 없으면서 잘난 줄 아는 사람은 파벌을 짓고, 지혜로운 사람은 통합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공산 독재자를 비롯한 각종 독재자들은 온 국민의 통합을 도모하지 않고, 자기 야욕과 이념을 따르는 파를 강화하고, 반대파나 안 따르는 국민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거나 학살하지 않았습니까?
자기중심의 하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세 가지를 명심해야만 합니다. 첫째는, 바로 그러한 태도가 분열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세상에 또 하나의 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과 대가들과 성인들도 각각 견해가 다르고, 사상이 다릅니다. 셋째는, 성인 군자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견해와 사상이 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영이시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라는 말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면서 그 주님의 사랑을 받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다면, 주님께 받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영혼을 합하며, 같은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교역자나 통치자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하나의 조화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가정이든 교회든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중심은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주님이십니다. 내가 네게 속하고, 네가 내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주님 안에 속하고, 너도 주님 안에 속함으로써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뜻이 주님께 합해지고, 네 마음과 뜻이 주님께 합해짐으로써 내 마음과 뜻이 네 마음과 뜻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는, 자기 부인이고, 주님 긍정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데에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거물 아닌 거물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사랑의 주님을 따랐더라면, 교회를 비롯한 단체들과 국가가 분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반목이나 다툼이나 전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제라도 소위 거물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사랑의 주 하나님을 따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화해와 화목과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개인이 묵살되는 획일이나 예속이 아닌, 조화의 일치를 이루는 중심뿐 아니라 근거 역시 주님이십니다. 어느 인간이나 어느 단체, 어떤 사상이나 어떤 교리가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일치의 근거에 대해 에베소서 4:4 이하에,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했습니다.
분열의 원인은 다툼과 허영과 자만심입니다. 주석가인 바클레이(W. Barclay)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것은 무엇에 열중한다든지, 자기의 신앙을 중요시한다든지, 자기들의 계획과 제안을 열심히 성취하려고 할 경우이다. 열심이 증가하면 할수록 대립의 위험이 그만큼 더 커진다.”라고 했습니다.
‘허영’의 헬라어 케노독시아(κενοδξία)는 ‘천박하고 근거 없고 가식적인 자부심’, ‘자신에 대한 헛된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과 자만심을 가진 사람은 남들이 자기에게 맞춰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다툼이나 허영이나 자만심에 대한 처방은,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이란 무능하거나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 자신의 부족과 한계를 인식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은, 내 어떤 재능이 남의 그것보다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못하다는 거짓된 생각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남에게 자만심을 갖게 하거나 우월감을 갖게 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은 자기보다 나은 점들을 낫게 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자기의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라는 뜻입니다.
하나의 조화, 특히 교회 일치를 위해 몇 번이라도 나누고 싶은 실화가 있습니다.
영국에서 감리교회 신앙 운동을 한창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던 요한 웨슬리(J. Wesley)는, 당시의 어떤 교파보다도 감리교인들의 신앙이 올바르고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꿈을 꾼 후, 자기의 생각이 틀린 것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꿈속에서 웨슬리는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천국에 가서 천사의 안내로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는 평소대로 천주교인 중에는 구원 얻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천사에게, “천주교인 중에 천국에 들어온 이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한 사람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성공회 교인 중에는 조금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면 성공회 교인들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천사는 한 사람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든 웨슬리가 루터교회, 침례교회, 장로교회의 교인들은 얼마나 들어왔느냐고 차례로 물었지만, 역시 한 사람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교파에서 저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온 것일까’ 의아해하면서, “신생 교회인 우리 감리교인 중에서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은 사람들만 들어왔습니다.”
분열의 원인인 다툼이나 허영이나 자만심에 대한 또 하나의 처방은, 자기 일을 돌아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끌고 가는 죄의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의 사랑을 받은 줄 알고, 교회 안팎의 자기 일은 물론, 남들의 일을 돌아보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게 하고, 죄악은 갈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지도자의 기쁨을 충만케 해야 합니다. 자기의 권리와 이익과 명예만을 위해 일하는 곳에는 부조화와 반목과 다툼이 있게 마련입니다. 반면에,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이타주의는 사랑할 자아가 없기 때문에, 참된 의미의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작아져서 파멸하게 되고,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면 돌볼수록 더욱더 커져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가 이기주의나 이타주의에 쏠리지 않고, 주님 안에서 남을 위한 자기의 일을 잘해 나가면 하나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 맺음말
주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류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셨고, 믿어 구원받은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가정과 교회, 학교와 직장, 사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는 것을 누구나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써, 곳곳에 주님 안에서 하나의 조화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연합하여 일상적인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매우 선하고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머리에 부어진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을 거쳐 옷깃에까지 흘러내리는 것 같고, 헐몬 산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을 명하신 곳입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