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요? 안아줘!

관리자
  • 1432
  • 2018-02-21 08:07:10
오늘은 4분 50초의 여유를 갖고 음악을 들으며 시작 합니다.

아시나요?


'복면가왕'이라는 음악경연 프로그램에 나왔었던 '흥부자댁'이 CCM가수인 소향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사실 소향은 대중적인 가수로 시작을 하였다면 지금보다 더 일찍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고 인기 또한 얻고 있는 가수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향은 대중가수로서의 연예활동을 시작하지 않고 CCM이라는 세상 음악계의 비주류 가수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이야 CCM이라는 음악장르가 비주류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CCM가수들은 기독교인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예전 말로 한다면 복음성가 가수라고 지칭을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표현으로 말한다면 CCM과 복음성가는 약간의 구별이 있으며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런 것을 말씀드리려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니 생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나요?


소향이 자궁암에 걸렸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정확한 투병기간은 알 수 없지만 병명으로만 생각해보면 12년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그 여인과 같이 자궁암으로 인해 하혈증을 보였을 것입니다. 소향은 또 다른 혈루병을 앓았던 이 시대의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현대의학이 발전을 하고 수술기술이 보편화 되면서 소향은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는 것이 믿음이 없음이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단순 성경적으로 표현을 한다면 그리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없이도 혈루병을 고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더 큰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니다. 언뜻 믿음없어 보이는 수술을 통해 자궁암을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소향은 CCM 가수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중 가수로써의 부와 명예도 중요했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우선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시나요?


이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며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게 보이는 결정인지 말입니다. 소향이 실력이 없고 그저 그런 가수로서 대중가수로서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CCM 가수의 삶을 결정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향은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가 먼저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던 것을 거부하고 CCM가수로써의 삶을 살고자 믿음의 결단을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소향은 세상의 인기와 돈을 추구하는 기능인으로써의 가수가 아닌 사명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함이었을 것 입니다.

기억하시나요?


대부분 대다수의 목사님들도 처음 신학교를 들어갈 때 그러한 마음과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항소장을 제출한 전명구 감독회장님도 그러했을 것이고, 사회법원을 통해 선거무효를 얻어낸 성모 목사님도 그러했을 것이며 많은 이들로부터 질타와 정죄를 받고 있는 분들까지도 다 그러했을 것입니다. 목회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신학생들은 극히 드물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하나님의 일이 좋아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음을 믿었기에 신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시나요?


목회에 대한 믿음의 이상과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많은 대중 가수들이 생계문제로 가수의 삶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CCM 가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도 많은 제능있는 젊은이들이 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길인 CCM가수로서의 길을 걸어 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삶으로 나갔다면 더 많은 돈과 명예 그리고 안정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일을 하고자 신학교의 문을 두드렸을 것입니다.

아시나요?


12년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삶의 현실이 너무도 절박하였음을 말입니다.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뻗었던 여인과 같이 소향도 노래하고 노래하며 자신의 믿음과 삶의 절박함을 주께 호소하였을 것입니다. 소향의 노래는 그녀의 절박함을 담은 믿음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소향의 노래는 간절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절박함과 믿음이 바로 소향의 노래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아시나요?


소향은 '아시나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주님께 간절히 호소를 하고 있었던 것을 말입니다. 소향은 CCM가수로 활동을 하였지만 너무도 힘든 소향의 나날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젊은 목회자들이 그러한 것과 같이 CCM가수로써의 사명감도 흔들리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삶에 대한 깊은 한숨과 사명감에 대한 간절함이 강하면 강할수록 노래를 멈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세상이 갖고 있지 않은 진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노래는 그녀 자신의 아픔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며 옷자락이라도 만져봐야 겠다는 절박함이 가득한 믿음의 행위이자 예배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엔 누구보다 절절하고 누구보다 강렬하며 그 누구의 노래보다 맑고 깨끗한 순수함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아시나요?


다른 대다수의 목사님들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제게도 목사로서의 믿음과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목회의 현장이라는 현실 앞에 철저히 무너져야만 했습니다. 목회의 현장은 권력을 중심으로 큰교회(돈)와 학연을 중심으로 나뉘어져 서로 경쟁하고 서로 갈등하며 교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 하였지만 목회자들의 삶은 전혀 복음적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권력에 줄을 서지 않은 목사는 철저히 무시를 당하여만 했습니다. 큰교회(돈)나 학연을 중심으로 뭉치지 아니하면 때론 생활 자체도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그저 목회의 순수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헌신하려는 작은 교회의 목사들은 차디찬 현실 앞에 크고도 깊은 한숨만을 내 쉬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권력과 돈에 무릎을꿇고 타협을 하던지 아니면 그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외로운 목회현실의 삶의 고달픔을 사명으로 여기며 깊은 한숨만을 내쉬어야 합니다.

아시나요?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외롭고 고달픈 삶의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하며 때론 조건없는 도움도 절실히 필요하며 지쳐 힘들어 축쳐진 어깨를 조용히 어루만져 주며 다가와 조용히 안아 줄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시나요?


큰교회(돈)를 중심으로 뭉치며 권력과 학연의 줄을 세우려는 것은 그 분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며 격려가 필요하며 조용히 안아 줄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권력은 권력횡포를 가르치고 세상의 정치를 교회의 정치처럼 가르치며, 큰교회(돈)는 목회의 현장에서조차 철저히 돈의 규칙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며 돈이 곧 명예가 되고 힘을 얻게 되는 비결임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시나요?


권력을 갖은 이들과 큰교회(돈)를 이룬 목회자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줄을 세우고 패로 뭉치게 하려는 것과 권력의 횡포를 교회 정치처럼 행하는 그들도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와 안아줄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해서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아시나요?


이번 동계 평창 올림픽에서도 동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되어진 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녀에게도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와 힘이 되어줄 사랑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녀를 외면했고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돌려졌습니다. 그녀는 국가대표였지만 그녀 또한 또 다른 권력과 돈으로부터 외면을 당하여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홀로 남아 슬피 울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도 자신의 절박함을 담아 차디찬 얼음위를 지쳤을지 모릅니다. 동료들의 따뜻한 안아줌이 있었더라면 금은동의 메달은 얻지 못했을 지라도 아름다운 사랑의 메달로 다른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다가온 위로의 손길은 동료가 아닌 외국인 코치의 손길 뿐이었습니다. 동료들은 그녀의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아시나요?


스포츠 경기에만 동료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동료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개교회는 제각각일지는 모르지만 감리교회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감리교회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팀이며 동료들입니다. 동료가 동료를 외면하고 동료가 동료를 왕따시킨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라 할 수 없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팀추월 선수들이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지탄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그와 같이 세상으로부터 감리교회가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동료가 동료를 억압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며 고발을 일삼습니다. 감리교회의 목회자들이 감리교회의 법인 장정을 무시하고 세상의 법을 찾아가 호소를 일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감리교회의 목회자들이 동료의식과 공동체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며 믿음을 잃음이며 하나님도 잃음 입니다.

아시나요?


소향은 하나님을 향하여 삶의 절박함과 믿음을 담아 자신을 안아 달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시나요?


이제 소향은 주님의 품에 안겨 믿음을 따라 CCM이 아닌 CCM과 같은 대중의 노래로 세상에 수없이 많은 외로운 이들을 향한 위로의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말입니다.

기억하세요.


우리 목사들도 세상을 향하여 위로와 격려를 담은 '안아줌'이 있는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감리교회에 속한 모든 믿음의 동료들을 향하여 권력과 돈 그리고 동문의식에 휩쓸려 무시하거나 적대시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한숨 속에 살아가는 동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담아 진심으로 다가가 Back Hug라도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목회적 이상과 현실속의 괴리감 속에서도 절박한 믿음을 담아 나를 안아 달라(Hug Me)는 심정으로 주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내민다면 주님은 부드러운 음성과 위로의 두 팔로 우리에게 다가와 포근히 안아주시며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포기하거나 홀로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또 5분의 여유면 됩니다.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의 처절한 절규와 같은 노래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주시려는 주님의 또 다른 사랑의 노래를 들어보십시요.


"주님!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손이라도 잡아주세요. 그리하면 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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