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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수난 예고(마 20:17-19)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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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0 21:04:28

세 번째 수난 예고(마 20:17-19)
예수님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대해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16:21-23, 17:22-23)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는 마가복음 10:32-34과 누가복음 18:31-34에도 기록되어 있으나① 다소 차이가 있다.
이 기사는 【17】“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로 시작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막 10:32, 눅 18:31, 요 2:13, 5:1, 11:55, 행 11:2, 25:1, 9, 갈 2:1)는, 예루살렘이 고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든지 그 곳에 가려면 올라가야 한다는 지리적 특성에 따른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발에만 관련된 것(시 122:2)이 아니라, 마음(시 84:5)과 관련된 것으로도 해석되어야 한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다. 큰 절기가 다가오면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제물을 바치고 예배를 드렸다. 예수님 역시 지금 자기 몸을 ‘세상의 죄’에 대한 제물로 드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신 것이다(사 53:10, 요 1:29)”(W. Hendriksen).}(막 10:32의 주석).
“열 두 제자”는 10:2-4의 주석을 보라.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신 내용에 대해, 마태는 【18】“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라고 하였다.
“보라”는 10:16의 주석을 보라.
“인자”(ὁ υίὸς τού ἀνθρώπου)는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호칭한 것으로 문자적 의미는 ‘사람의 아들’이다. 이 용어는 본서에 30회, 누가복음에 25회, 마가복음에 14회, 요한복음에 12회 사용되었다. 인자란 장차 심판자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다니엘 등이 사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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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저자의 마가복음 10:32-34의 주석과 누가복음 18:31-34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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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단 7:13-28, 에녹서 46). 예수님이 여기서 이 용어를 쓰신 것은 겸손이라기보다는 성육신하신 자신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시기 위한 것이다.
“대제사장들”은 가야바와 그의 장인이자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와 대제사장의 가족까지 포함한다.
“서기관들”은 2:4의 주석을 보라.
“넘기우매”(미래 수동태 직설법 삼인칭 단수인 파라도테세타이, παραδοθήσεται)는 가룟 유다가 배신하여 넘겨줄 사실을 의미한다. 이 배신 배후에는 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누구의 손에 넘겨지는 것은 세속적‧법적 의미(행 21:11, 28:17, 렘 33:24
유의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그들에게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과 막 14:21②)라고 말씀하셨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로 구성된 대법정인 산헤드린(공회)에서 예수께 사형 선고를 내릴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이 세 번째 예언에서 장로들을 생략한 것은 그들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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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자의 마가복음 14:21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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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그리 크지 않았거나, 영적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죄를 강조하시기 위한 것 같다.
계속된 예수님의 예고에 대해, 마태는 【19】“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라고 하였다.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던 산헤드린이 예수께 사형을 선고한 후에 이방인들, 즉 빌라도와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들에게 넘겨줄 것을 지시하는 것이다.
산헤드린(공회)이 예수님을 빌라도와 그 무리에게 넘겨주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기 위한 것이다.
“능욕하며”는 엠파익사이(ἐμπαίξαι)이며 ‘흉내내며 놀리다’, ‘조롱하다’ 등을 의미한다(눅 23:11의 주석을 보라).
“채찍질하며”와 매는 형벌의 형태로 신약성경에 자주 나타난다.
그 집행 장소는 회당이며(10:17, 막 13:9③), {“유대인들은 매질하다가 잘못하여 40회를 넘기는 율법 위반을 함으로써 매를 맞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통상 39회까지 매질을 하였다”(W. Barclay).}(고후 11:24의 주석). 매질을 할 때에는 {한 재판관이 신명기나 시편의 적절한 구절을 낭독하였고, 또한 재판관은 형량을 판정했고(참조: 신 25:1-3), 또 다른 한 재판관은 매회 때리기 전에 명령을 내렸다“(W. Hendriksen).}(막 13:9의 주석).
{핫지(C. Hodge)는 “후대의 랍비들의 말에 의하면, 채찍은 세 개의 가죽끈으로 되어 있어서 한 번 때릴 때마다 세 대의 매를 맞게 되어 있었고, 따라서 규정된 39회를 채우기 위해서는 13회의 매질을 하면 되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브루스(F. F. Bruce)는 매질하는 횟수의 3분의 2는 등을, 3분의 1은 가슴을 때렸다고 한다. 요세푸스(Josephus, Anti. iv, 8:21)는 랍비의 규례에 의하면, 죄인의 두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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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자의 마가복음 13:9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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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에 비끄러매고, 양쪽 어깨와 가슴을 드러내게 하고는 13회의 매질을 했다고 한다. 또, 그 횟수가 차기 전에 죽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④}(고후 11:24의 주석).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의 “십자가”는 노예나 로마 시민권이 없는 서민인 중죄인을 벌하는 로마의 사형 도구이었다. {로마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키케로(Cicero: 주전 106-43년)는 십자가를 “짐승 같고 무시무시한 극악한 형벌”(Contra Verrem II. v. 62-64)이라고 하였고, 또 “가혹하고 수치스러운 고난”이라고도 하였다(In Verrem II. 5, 165).}(히 12:2의 주석).
{레인(W. L. Lane, p. 561)은 “십자가의 죽음은 인간의 사악함에 의해 착상된 형벌 중 아주 잔인하고 아주 치욕적인 죽음 중 하나이었다. 심지어 이방 세계의 눈에까지 그렇게 비쳤다. 요세푸스(Josephus, War VIII. v. 4)는 모든 종류의 죽음 중에 가장 참혹한 것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막 15:13의 주석).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는 예수님 자신의 부활이 완전한 죽음과 장사지낸 후의 사건이라는 점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제자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후에 그들이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은 것(막 16:10-11, 눅 24:11)을 보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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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n 이상근.
※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1판 1쇄), pp. 52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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