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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교수부터 교리와 장정을 따르고 지키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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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5 18:44:31
신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신학교가 감리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감리교회의 선교를 위한 목회자 양성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도 아니면 교수들의 안정적인 삶과 생활을 위한 수입원을 위해 신학교가 존재하는가?
나는 이 둘이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수들을 위한 교수들에 의한 교수들의 신학교는 아니길 바란다.
왜냐하면 현장 목회자들이 너무 이것저것 다끌어다가 목회에 적용함으로써 이단의 사설이 있고 이교도의 가르침도 있으며 타교단의 교리적인 것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위 교회 부흥이라 말하는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라면 세속적인 가치관이나 세속적인 수단과 방법들도 다 동원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신학교에서 부터 올바른 신학을 가르치고 올바른 신앙관과 감리교회 목회자로써 합당한 소양과 믿음을 바로잡아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교회와 사회를 향한 참된 진리의 사역자가 될수 있도록 힘쓰고 애를 써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잘은 몰라도 예전엔 학문적 소양은 다소 부족하였을지라도 목회적 사명을 곧추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적 열성을 신학교에서 가르쳤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요즈음 신학교에선 과거에 비해 학문적 소양은 매우 높아 졌다 싶다. 그러나 문제는 그 학문적 소양이 감리교의 교리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고 신학교에 입학한 젊은 청년들의 목회적 사명감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적 열정을 곧추시키기는 커녕 도리어 있는 사명감과 그나마 있는 사도적인 열정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머리만 커지고 그래서 세상 지식만 가득해지고 그래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 가득해져서 교회를 바로 세운다고는 하지만 정작 교회를 무너트리고 어지럽히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을 본다.
당당뉴스의 댓글들을 한번 살펴 보시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 붓고 있는 가 말이다. 어떤 이는 심지어 당당뉴스가 신천지의 놀이터가 된지 오래란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당당 뉴스는 감리교회의 뉴스를 전하는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이단과 사이비들이 교회를 비난하기 위한 놀이터가 되어 있는 역기능도 허다하다. 더불어 감리교회가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것인데 벌써 10여년이 지나도록 감독회장의 문제를 두고 감리교회는 온통 혼란스럽고 온통 다툼과 싸움판이 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당연 당당뉴스가 이단과 사이비의 놀이터가 되어 있다는 말이 그리 과장만은 아닐 듯 싶다.
그렇다면 기독교 타임즈의 기자들을 해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 뉴스의 편집장을 해고시켜야 하는 것이 더 옳아 보이기 까지 한다. 당당뉴스의 편집장도 감리교회 목회자가 아닌가 말이다. 혹 당당뉴스도 기관목회로 인정해 주고 있는가?
당당뉴스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신봉자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으며 기독교의 정통성 및 전통을 지키려 하기보단 온갖 잡다한 세상의 지식으로 치장된 혼합주의 사상들이 마치 올바른 지식인냥 전달되어 지고 있으며 심지어 이교도들의 가르침과 이단들의 사상을 마치 기독교의 올바른 전통과 교리인냥 가르쳐지고 있음을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 뉴스에 올라오는 글들에 대한 모니터링과 댓글들에 대한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 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빼앗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들과 잘못된 교리 및 사상에 대하여 바로 잡아 주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당당뉴스를 통해 기독교의 소식을 접하는 많은 평신도들로 하여금 혼란스럽지 않게 할뿐만 아니라 기독교 특별히 감리교회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바르게 제시해줄 수 있는 기회로 삼자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당당뉴스에 "대도대기(大道大器) 패러다임으로 감리회에 희망을"이란 제목으로 올라온 글 가운데 '감신대 이은재 교수가 “존 웨슬리 정신과 신학의 빛에서 – 웨슬리의 실천적 종교와 영성”이라는 주제의 강연'의 내용을 모니터링 하면서 그 문제점을 지적해 보려 한다.
나는 이은재 교수가 누구인지 개인적으론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당당뉴스의 제한적인 보도만으로 이은재 교수가 주장한 전체의 내용을 온전히 알 수 없었음을 밝히고 싶다. 그러기에 혹 내가 지적하는 내용 가운데 이은재 교수의 주장을 오해하거나 또는 왜곡되어 인식하는 것이 있다면 그 누군가가 나서서 바로잡아 주길 기대한다.
물론 이은재 교수가 나서서 바로 잡아 준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감신대의 교수님이 일개 미파인 나 같은 목사 나부랭이의 글을 읽을 것이며 댓구라도 해줄까? 그러기에 그정도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이 이은재 교수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하여 쓰는 것도 분명 아님을 밝힌다.
다만 이은재 교수의 주장이 전혀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전파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 염려하기에 이은재 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위해 지적함을 이해하여 주길 바란다.
1. 감신대 이은재 교수는 진정 어느 신학교의 교수란 말인가?
내가 쓴것과 같이 분명 감신대 교수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전혀 감신대 교수 같지 않아 보인다. 웨슬리의 신학을 말하는 것 같지만 전혀 웨슬리 신학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은재 교수의 웨슬리 신학은 한마디로 속된 표현으로 한다면 짬뽕신학이다. 좀더 순화된 표현을 한다면 혼합주의적인 신학일 뿐이며 세상 지식을 거창하게 포장한 정체 불분명의 지식이기 때문이며 더 고상한 영어식 표현을 빌린다면 이것이 바로 포스트 모던이즘 신학이다.
2. 감신대 이은재 교수는 감리교회의 헌법인 "교리와 장정"을 한 번이라도 읽어라도 보았는가?
이은재 교수의 주장엔 감리교회의 헌법인 교리와 장정의 내용의 일부라도 포함되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당뉴스가 약술하면서 누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당당뉴스의 편집장은 이은재 교수에게 사과라도 해야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당당뉴스에 약술된 이은재 교수의 주장 가운덴 전혀 감리교회의 헌법인 '교리와 장정'에 대한 고려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감신대 교수에게 '교리와 장정'을 감리교회의 헌법으로써 존중해달라 요청하는 것이 무리인가? 학문 연구의 자율을 훼손하는 것이 되며 강단 신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될까? 진정 그렇다면 나는 감신대의 강단 신학은 좀 침해를 받아야 하며 학문연구의 자율도 좀 제재를 받아야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3. 교리와 장정 제1편 교리 [43] 3) 성화와 완전
"완전은 인간의 본래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의미로서의 완전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감신대 이은재 교수의 웨슬리 신학의 강의에 있어서 전혀 이러한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도리어 그 말의 진위에 대하여 의심을 해봐야 할 정도로서의 어렵고 힘든 내용으로 과대포장되어 있어 보였다.
"존 웨슬리의 완전에 이르는 길은 중립적인 영역에 있지 않다는 것. 영적 생활의 훈련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현실 속에서 이뤄져야 했다."
대체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당당의 기자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기사를 작성하였을까 싶다. 그리고 이은재 교수 스스로도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얘기하고 있는지도 한 번 묻고 싶다.
교수들의 말은 최고 지성의 아카데미이며 상아탑의 상징인 대학 강단에서 하는 말이니 나같은 목사는 한번 듣고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과 고차원의 깊은 의미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의 무식함과 나의 뒤떨어지는 이해력을 용서하길 바란다. 그러한 의미로 이은재 교수가 말하고픈 내용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되어진 분들이 있다면 나의 무식함을 헤아려 깨우쳐 달라.
그리고 더불어 이은재 교수가 말하고 있는 중립적인 위치와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현장속이란 말이 진정 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에 얼마나 부합되는 내용인가? 내게 깨우쳐 달라.
4. 진정 영적 생활의 훈련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현실 속에서 이뤄져야 했나?
만약 이말이 사실이라면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영적 생활의 훈련을 받았단 말인가?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나야만 했던 것일까?
만약 이말이 사실이라면 모세는 애굽땅에서 출애굽을 위한 모든 영적 생활의 훈련을 마스터 했단 말인가? 그런데 왜 사람을 죽였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광야를 헤매여야만 했는가?
만약 이말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왜 고난을 받아야 했으며 빌라도와 로마의 군병들에 의해 능욕을 당해야만 했던 것일까? 아직 영적 생활의 훈련이 부족했던 탓이었을까?
만약 이말이 사실이라면 제자들과 많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순교를 당해야만 했던 것일까? 순교가 영적 훈련의 최고단계이기 때문인가?
진정 그렇다면 이은재 교수도 순교를 당해봐야 할 것이며 최소한 핍박이라도 받아 본 후에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5.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영적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을까?
감신대 이은재 교수가 “존 웨슬리 정신과 신학의 빛에서 – 웨슬리의 실천적 종교와 영성”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바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 현실속에서 이뤄지는 영적 훈련을 통해 이룩할 수 있는 최고 레벨의 경지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임을 말하고 있는 듯 싶다.
웨슬리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리 주장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세상 현실 속에서 끊임없는 영적훈련을 거듭하고 거듭한 결과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경지에 다다를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느냔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런 말을 한적이 없어 보인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다면 감신대 이은재 교수는 어떤 근거를 두고 이러한 주장을 용감하게 목회자들을 상대로 신학생들을 상대로 할 수 있었는가 말이다.
교수는 근거도 없는 말을 지어 이것이 웨슬리의 신학이다. 이것이 웨슬리의 신앙이자 체험이었다라고 해도 되는가 말이다. 이것이 교수의 양심이며 이것이 감신대의 신학적 소양인가 말이다. 교사가 말만하면 웨슬리 신학이 되고 웨슬리의 삶이 되는 것인가 말이다. 참 대단하다... 참으로 위대하며 무모하리만큼 용감해 보인다.
6. "그리스도인은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을 위해 단련되고 성장해왔던 것이 아니라 구원 말씀의 전달자로서 존재해왔던 것"인가?
진정 그렇다면 아담은 구원 말씀의 전달자로서 어떤 구원의 말씀을 전하였단 말인가?
진정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및 요셉은 어떤 구원의 말씀을 전하였던가?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구원의 말씀을 전달하지 못한 이들은 그리스도인도 아니라 단정을 지울 수 있는 것인가?
그런 면에서 감신대 이은재 교수는 지금 어떤 구원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근거도 없는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근거도 없는 영성훈련의 과정?이 이은재 교수가 전달하고 싶은 구원의 말씀인가? 난 그렇다면 그런 구원의 말씀은 듣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은재 교수의 말은 내게 구원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은 세속 혼합주의 사상이며 세속 이교도들의 주장과 비슷해 보일뿐이기 때문이다.
7. "감리교회 영성의 목적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영성 형성을 초월하는 것"이었는가?
이은재 교수의 강연 주제는 웨슬리의 영성이었다. 그렇다면 웨슬리의 영성은 개인적 영성이 아니란 의미인가? 아니면 웨슬리의 영성은 자신의 영성 형성을 초월하여 나타난 그 어떠한 것이란 의미인가?
대체 개인적 영성을 초월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초월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진정 그렇다면 이은재 교수야 말로 자신의 영성형성을 뛰어 넘는 초월자의 영성을 이루었다는 말인가?
우리는 흔히 영성 영성을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대체 영성이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언뜻 이은재 교수의 말을 빌리면 웨슬리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의 현실 속에서 영성훈련을 거듭한 나머지 자신 개인 영성 형성을 뛰어넘는 초월자적 영성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들려진다. 그러한 초월자적 영성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면 나는 이은재 교수에게 어밴져스나 기타 초월적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각종 영웅물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그 영화 속엔 이은재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개인 형성된 능력(영성)을 뛰어넘는 초월적 능력(영성)이 가득하니 말이다.
8. “ 감리교회 영성은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신실한 제자가 되도록 준비를 시키고 힘을 북돋아주는 훈련을 사용하고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영적 순례의 목적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급한 과제는 그들이 살아가는 죄로 가득 차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듣기엔 그럴싸하고 듣기엔 먹음직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자들이 보기엔 보암직도 해 보인다. 그리고 교수의 말이니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강의는 되었으리라. 그러나 문제는 속빙 강정이며 빈수레의 요란함 뿐이었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신학(영성)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게 뒤 흔들어 놓았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뭐가 뭔지도 모르게 혼란스럽게 뒤섞어 놓았다.
세상에 떠돌아 다니는 이런 저런 말들을 다 섞어 자신만의 주장인냥 재포장한 수사학(포스트 모던)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뭔가를 전하려는 듯한 내용으로 과대포장하였다.
감신대 이은재 교수는 스스로 "죄로 가득 차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리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는 있는 것일까?
감리교회는 신학교 때부터 교리와 장정을 따르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웨슬리의 신학을 가르치려 한다면 최소한 교리와 장정의 내용을 한번이라도 읽고 그에 대한 고민과 함께 감리신학대학의 교수로서의 책임감이 있는 주장과 발언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