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계명(마태복음 22:34-40)

최세창
  • 1686
  • 2018-05-01 20:24:09
부활을 안 믿는 사두개인들의 도전을 패퇴시키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마태는, 이어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는 마가복음 12:28-34과 누가복음 10:25-28에도 기록되어 있으나①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마태는 이 기사를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로 시작한다.
적대 관계에 있는 “사두개인들”(3:7의 주석을 보라.)이 예수님에게 패퇴했다는 소문을 들은 “바리새인들”(3:7의 주석을 보라.)이 모였다.
그들 중 한 사람에 대해, 마태는 【35】“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하였다.
율법사는 노미코스(νομικὸς)이며 율법 박사라는 전문적인 계급으로서의 서기관이다(2:4의 “서기관들”의 주석을 보라).
“시험하여 묻되”의 “시험하여”는 페이라존(πειράζων)인데, 명사형인 시험은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이며 마귀가 인간, 특히 성도를 멸망시킬 목적으로 하는 ‘유혹’(마 4:1-11, 약 1:13)이라는 의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상시키거나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하시는 ‘시련’이나 ‘연단’(창 22:1, 출 15:25, 신 8:2, 13:3, 38:8, 대하 32:31)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마귀의 시험을 통한 하나님의 연단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의미 외에 ‘고난’ 또는 ‘환난’(눅 22:28)이라는 뜻도 있다.② 멕라우글린(G. A. McLaughlin)은 “큰 복은 항상 큰 시험이 따른다.”③라고 하였고, 또 “위대한 전도자를 만들려면 큰 은혜뿐 아니라 큰 시험이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선생님이여”는 디다스칼레(διδάσκαλε)로서 {“권위의 의미를 대표하며 강조하는 것이다”(G. Poteat).}(약 3:1의 주석). 이 말에 대해 파커(P. Parker)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용어(master)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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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저자의 마가복음 12:28-34의 주석과 누가복음 10:25-28의 주석을 보라.
2) 더욱 자세한 설명은 저자의 히브리서 2:18의 주석을 보라.
3) G. A. McLaughlin,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Chicago: Christian Witness Co., 1909), p. 40, in R. Earle, 마태복음(비콘 성경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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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 문학에 종종 나타나는데, 존경의 칭호로서 ‘주’와 ‘왕’이란 말과 쌍을 이룬다. 신약성경에서는 가끔 세례 요한과 같은 비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적용되거나(눅 3:12), 또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눅 2:46, 요 3:10)에게 적용되었다. 또한, 이 용어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며, 그 외에 거의 공적 지위란 암시로서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적용되었다.”④
율법사의 질문 내용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는 것이다.
{랍비들은 율법에는 248가지의 적극적인 계명과 365가지의 소극적인 계명을 합해서 모두 613가지의 계명이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많은 율법 조항들 중에서 큰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랍비들이 토론하고 있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었다. 그들은 다른 모든 계명들을 총괄하는 대원칙 또는 으뜸가는 계명을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힐렐(Hillel: 주전 약 40년ㅡ주후 약 10년)의 말이다. 그는 이방인으로부터 “내가 한 발로 서 있는 동안에 율법 전체를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라는 도전을 받고서, “네가 네 자신에게 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네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전 율법이고, 나머지 율법은 그것에 대한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 가서 이것을 배우라.”라고 대답하였다.⑤
아키바(Akiba)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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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P. Parker,“Teacher” in IDB, Vol, pp. 522-523.
5) in F. C. Grant, W. W. Wessel, W. Barclay, W. L. 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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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본질이다.”라고 하였고, 의인 시몬(Simon)은 “세 가지, 즉 율법과 예배와 봉사 위에 세계는 성립되었다.”라고 하였다.
다른 편에서는 “모든 계명을 다 지키도록 요구하였다. 이런 배경에 비추어 볼 때, 샴마이(Shammai)가 율법을 하나의 최고의 계명으로 총괄하기를 거절한 것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J. Gnilka, 하권, p. 219).}(막 12:28의 주석).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냐고 하는 질문을 들으신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 마태는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신명기 6:5을 인용하신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의 “마음”은 5:8의 주석을 보라.
“목숨을 다하고”의 “목숨”은 6:25의 주석을 보라.
“뜻을 다하여”의 “뜻”은 디아노이아(διανοίᾳ)이며 ‘사상’, ‘목적’, ‘지성’, ‘사고력’, ‘생각’, ‘기질’ 등을 의미한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힘을 다하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의 “사랑하라”(아가페세이스, ἀγαπήσεις)는 5:44의 주석을 보라.
결국 위의 표현들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주이시며 유일하신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으로 목숨을 얻었고, 그 사랑을 힘입어 존재하는 인간은 자신의 일부분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인간의 전 존재를 쏟아 붓는 것이어야만 한다. 삶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일관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사랑의 일환으로서 자연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사랑, 특히 이웃에 대한 사랑이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섭리의 대상인 자연과 일과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 예수님은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하셨다.
벵겔(J. A. Bengel)은 “그 필요성과 범위와 지속성에 있어서 최대일 뿐만 아니라, 그 성격과 순서와 시간과 증언에 있어서 첫째이다.”라고 하였다.
계속된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 마태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하였다.
레위기 19:18을 인용한 것으로, 십계명의 둘째 부분인 인간에 대한 계명들의 요약이다.
이웃 사랑의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일환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 점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한다고 하면, 그에게는 그 밖의 어느 누구도, 어떤 것도 사랑할 여건이 될 수 없다는 사실로도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이다. 요한일서 5:2에는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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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라고 하였다. 또, 4:20-21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라고 하였다.
레위기 19:18에는 이웃을 동포와 동일시하였다. 이웃은 바로 이스라엘인이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바리새인들]은 이 말에서 다른 보통의 사람들을 제외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쿰란 종파의 사람들은 ‘어둠의 자식들’(1QS 1:10, 9:21-22)을 제외시켰다.…유다교인들은 이 범주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외국 사람들을 제외시켰다”(I. H. Marshall).
{웨셀(W. W. Wessel)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웃(동포)이라는 말을 구약성경의 구절에서보다 더 좁게 해석하였다. 즉, 구약성경(레 19:34 등)에서는 함께 사는 타국인도 포함했으나, 그들은 유대인과 완전히 개종한 이방인들만 포함시켰다.”라고 하였다.}(막 12:31의 주석).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포함하여(마 5:43-48)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베푸는 사람 사이를 이웃 관계로 새롭게 해석하셨다(10:29-37). 그렇다고 하면, 결국 이웃이란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이라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한 것에 대해, {스탐(R. T. Stamm)은 “이웃을 자신보다 덜 사랑하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이며, 그리고 이웃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면 이웃으로 하여금 자신을 이웃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할 때는 자만도 거짓도 겸손도 아니라, 올바르게 자신을 평가하여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갈 5:14의 주석).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예수님의 구속의 대상인 우리와 같은 존재로 여겨 사랑해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하셨다.
“온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한다(5:17의 주석을 보라).

#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1판 1쇄), pp. 582-586.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마-계)/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TEL. 02-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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