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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왕복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
오재영
- 1321
- 2018-05-22 19:03:53
우리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꼽히는 기독교 사상가이자 시인, 작가, 비평가이며 변증가중 한사람인 C.S.루이스는 저술을 통해 많은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그 작품가운데⟪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있다. 주인공인 대장 마귀의 이름이 스크루테이프이며, 책의내용은 대장 마귀가 신참 마귀인 조카 웜 우드와 31편의 편지를 주고받는 문답식의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책에는 마귀의 속성과 전략 그리고 마귀의 생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잘 나타났다.
그래서 마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며 공감과 함께 마귀에 대한 묘사가 워낙 잘되어 있기에, 이가 혹시 마귀를 직접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날 기자들이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마귀의 생각과 전략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혹시 당신은 마귀를 직접 만난 것이 아닌가?
아니면 극악한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한 다음에 나름대로 결론적으로 정리하여 쓴 글이 아닌가?
그 질문에 C.S.루이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나는 마귀도, 누구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오직 내 마음속에 있는 죄악과 내 안에 있는 유혹만을 이해하고 이 책을 썼다. 나는 내 속에 있는 죄악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까 그는 누구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속의 들어있는 마귀, C.S.루이스 속에 있는 유혹, 그 속에 있는 죄성(罪性)만 연구해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앙인으로서 인생을 막 산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그 당시의 많은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생을 살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며, 이런 마귀 적이고, 유혹적이고, 온갖 죄악의 요소가 잠재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 죄성은 누구에게나 환경만 맞으면 자라기 시작을 하여 결국에는 자신을 비롯한 관계된 이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어 소멸하고 만다.
오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성경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마음이나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 도다.(시12:8)”는 말씀처럼, 책임을 맡고 있는 이나, 온갖 험한 말, 거짓과 선동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이나, 모두가 하나같이 무리지어 다니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영혼 없는“좀비”들이 된 모습들이다. 도대체 자신을 배제하고, 남 탓하는 지금의 행동들이 영혼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성경을 읽다가, 당시의 혼돈된 시대에 나라를 신앙의 기초위에 세운 사무엘의 기록, 사무엘상 앞면에 등장하는 엘리가정의 멸족에 관한 내용은 오늘, 이 혼돈된 세상에서 하나님을 빙자하여 생을 이어가는 명색이 구도자요 성직자라면, 각자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도 자신과는 이들과 관계가 없는지 자신과 가정을 성찰하며 두려움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이다.
기록된 내용은 불량자였던 홉니와 비느하스가 대제사장인 아버지 엘리에 의해 제사장으로 임명이 된다.
요즘말로 하면 “대표적인 정실 인사”다. 기록을 보면 엘리도 한때는 영적지도자로서 영성 있는 지도자였다. 그가 자식을 그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동기가 여해했든, 일단 제사장이 되었으면 그들은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했다. 그것은 제사장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이며, 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제사장자체로서 존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못된 습성이 골수에 까지 배어 있는 그 구습(舊習)이 자리에 앉았다하여 변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본래가 불량자인 그들에게 하나님의 법과 말씀은 안중에도 없었다.(삼상2:12~17 표준 새 번역).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하나님께 바친 제물을 사사로이 탈취하는가 하면, 성소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들과 불륜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더욱이 불레셋과의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거짓과 허세로 상대를 겁주는 부적으로 이용하려는 교활함을 드러낸다. 이들은 제사장직을 자기 욕망충족을 위한 도구로 여겼을 뿐이었다. 오늘 명색이 성직자인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허세와 객기에 마음 쓰일 때 두려움을 느껴 겸손하게 하는 기록이다.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심이었더라(삼상2:25).
마침내 그들이 불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던 그날, 그들은 함께한 이들과 함께 그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엘리는 목이 부러지고, 아내는 난산으로 죽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예배를 함부로 대했던 그들이 한 가문으로 선별되어 누려왔던 그 모든 존귀함 들이 한순간의 자기경멸로 소멸되고 말았다.
이처럼 허물어진 혼돈의 시대에 홉니와 비느하스와 대비되는 인물이 엘가나의 아들로 등장하는 사무엘 이다.
그의 생은 평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삶이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사무엘,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아는 하나님은 인간의 드리는 그 어떤 예물보다도 하나님께 청종(聽從)하며 존중하는,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산 지도자였다.
회개에는 왕복 거리가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 부름 받은 성직자에게 그가 지녀야할 첫째 덕목은 거룩함이다. 거룩이란 ‘구별’이다.
그의 중심은 물론이고 언행과 외모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스스로를 ‘구별’하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성직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엘리는 누구보다도 자식에 관한한 잘 아는 위치임에도 불량자인 자신의 두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가 아니고서는 언감생심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인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에게 관계된 가장 중요한 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따르는 사람이다. 회개에는 왕복거리가 있다. 오래전이라 하여 다를 바는 없으나, 지난 10여 년 동안 이어온 악습들이 타교단과 이교도들의 눈에 연민으로 비춰지는 오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들이다.
교단의 거룩한 섬김의 자리를 신분 상승과 군림의 자리로 착각한 듯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리를 걸어 약속들을 하고, 패거리 지어 선동하며 약점 잡아 늘어지고, 교회를 “풍비박산” 내놓고도 물러날 줄을 모르며, 어쭙잖은 편린의 법률지식으로 약점 잡아 겁박으로 야합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교단의 약점 “침소봉대”하여 대내외에 온갖 추태 부린 것을 자랑삼아 기념회를 열어 비슷한 이들을 초청하여 “자화자찬”하고 있다. 모두가 “초록은 동색”이라고, 애정결핍증에 시달린 가엾은 모습들 아닌가?.
한번쯤, 자신에 관함이 아닌 타인에 관한 일로보라! 이게 지금 정신 제대로 박혀있는 명색이 구도자(求道者)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의 행태이며, 주님 앞에서 미래를 기대하는 이들의 마음인가를... 신앙으로 보면, 이미 사망선고내린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몽니부리며 패거리 동원하여 요행들을 바라고 있는가? 이제 개인이든 단체든 스스로 등장하여 교단 안팎으로 소동을 일으키며 정죄하고, 재판과 관계되어 소비된 금전은 진정 참회의 마음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머지않아 가장 아플 때 뼈저린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에게 어느 일간지 기자가 물었다고 한다.
현재 당신에게 가장 두려운 경쟁자는 누구인가? 당연히 상대편의 대기업의 총수로 생각하는데, 그의 대답은 “지금 허름한 ‘어느 차고(garage)에서 학교도 중퇴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느라고 망치를 두드리고 있는 놈,’이라고...” 그의 예언대로 그때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허름한 차고에서 그리하고 있었다.
웨슬리 회심 280주년 기념 성회가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너나없이 실망스런 모습들 속에서도, 영성이 메마르고 초라한 엘리, 불량자 홉리와 비느하스 의 틈에서도 나이어린 사무엘이 자라고 있듯이 오늘도 현존하는 미래의 희망인 어리고 젊은 후배 성직자들을 위하여 기대하며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