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총회 실행부위원들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는 몇명이나 될까?
관리자
- 1706
- 2018-05-18 07:49:25
성령은 성령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하나님의 영이시며 거룩한 주님의 영이시다.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성령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이라 하심 또한 성령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령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영이자 성령이다.
그러니 성령은 믿는 다고 생기거나 존재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성령은 무엇을 하실까?
영이신 하나님께선 어떤 일을 하실까?
그리고 성령을 믿는 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두 가지의 질문을 하나로 묻어 답을 하면 성령을 믿는 다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들을 믿는 것이다.
성령이 하실 일들을 기대(소망)하게 하는 것이며 성령이 이루시는 모든 일들을 알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사랑으로 충만케 되는 것이다.
사랑을 사람들은 감정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틀린 말은 이니다.
그러나 사랑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도고 할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람의 감정 그 이상의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여기엔 많은 사람들이 답을 할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는 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라고 말이다.
사랑은 사람의 생명이다.
사랑, 사람, 삶 이 세가지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실상은 생명 안에서 하나이다.
사람이 생명을 얻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이 삶은 사랑으로 풍성해지며 사랑으로 가득할 때 진정한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의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왜 지으셨을까에 대한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이 사람을 지으셨다. 왜 사람을 지으셨을까?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되라는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을 보라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말이다.
사람에게 사랑이 없다면 그는 죽은 자와 같다. 그래서 사랑을 잃게 된다면 그는 곧 죽음을 생각하게 될 것이며
사랑이 없어진다면 그는 진정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성경엔 없는 표현이지만 좀비인 것이다.
좀비는 사람이 상상해 만든 존재인가? 물론 단어적으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빗대어 만들어낸 존재가 좀비이다.
그래서 좀비는 영혼이 없는 동물적 기능만이 남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사랑으로 되어 있다.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의 영혼은 행복한 영혼이요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람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것이다.
사랑이 없는가?
그렇다면 그의 영혼은 매우 불행한 영혼이며 사람이지만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진정한 의미에선 좀비와 다르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죄이다. 영혼의 죽음이다.
그래서 영혼이 살아나면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눈에 보이지 형제를 사랑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은 바로 이러한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보혜사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사람의 안과 밖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인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성령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탄식을 한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담의 후예들이 그러하다.
지금도 사람의 자녀들의 그 중심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영(생명)이시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다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선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성령의 회복이다. 그래서 이것을 부흥이라 하는 것이다.
또한 죄인으로 살았던 삶이 의인의 삶으로 변화되는 삶이니 이것을 중생이라 하고 거듭남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되는 삶의 변화이자 생명의 회복이며 영혼의 회복이자 사랑으로 가득케 되는 것이다.
성령을 받았다 하며 거짓과 외식적인 삶을 살아가는가? 그는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며 불법을 행하며 악한 자들과 함께 하기를 즐겨 하는가? 그렇다면 그 또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며 이기적이며 욕심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가? 그렇다면 그 또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비록 성령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그 영은 거룩한 영이 아니라 거짓의 영이자 마귀 사탄의 영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이런 거짓 성령을 받은 이들이 너무도 많음이 문제이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신천지나 이단이 문제가 아니라 거짓 성령을 받은 거짓의 자녀들이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이단들은 이러한 교회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사랑이 없는 목사와 사랑이 없는 장로와 사랑이 없는 성도와 교회를 비난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그 비난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비난은 또 다른 외식이니 그 또한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 거짓의 사람이니 이단이자 거짓의 자녀가 굶주린 이리들이 되어 진실을 통해 양들의 길을 잃고 방황케 함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들은 그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성령은 믿음의 사람을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보혜사이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에선 거듭난 성령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은 성령의 은혜를 좇아 비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며 그와 같이 이웃도 비로서 온전히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온전한 사랑이란 진실한 사랑이다.
이 진실한 사랑이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며 그 진실함은 오직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이것을 성령이 임하였다. 성령이 충만케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도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31절을 통하여 성령의 은사 가운데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도 하였다. 그러면서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하여 사랑에 관하여 증거하기 시작을 하였다.
사도 바울이 사랑에 대하여 어떻게 알았다 생각을 하는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바울은 독심의 삶을 살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사랑에 대하여 온전히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울에게 임한 성령의 가르침이다. 마땅히 할 말을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였던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을 통하여 담대히 나가 복음을 전하였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자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증언이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인가?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 주시고 그 어떤 댓가나 요구가 없는 하나님 사랑의 선물이 아닌가 말이다.
성령 그 자체가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복음인 것이다. 성경도 사랑이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가 바로 성경(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 사랑의 이야기를 성령은 깨우치며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비록 배운 것이 없을 지라도 삶에 있어 막힘이 없으며 생명에 있어 누구보다 분명하며 누구보다 명확하고 사랑(삶)에 대해선 세상의 지식을 많이 배운 이들을 오히려 가르칠 것이다.
이것이 성경말씀에 대한 확신의 증거이고 이것이 성령을 받았다는 또 다른 외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행4:13)
성령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역사를 하실까?
성령의 역사를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증거가 되어 주실까?
성경을 보라.
성경의 구약과 신약이 증거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역사를 말이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증언이자 성령이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는 증언이다.
그리고 성령(회심)을 받았다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체험을 하였다는 것들에 대한 증언들을 들어 보라.
그들의 체험적인 증언이 참 교회의 증언이 되었고 전통이 되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의 체험이 되어 또 다른 전통과 성경을 통하여 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감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엔 세상의 역사가 있다.
그 사람의 역사가 때론 주님의 역사보다 더 커보이고 위대해 보이기조차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역사는 진정한 성경의 증언이 아니며 교회의 전통도 아니며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의 증언도 아니다.
교회엔 하나님의 역사(감동)가 있다.
그 하나님의 역사가 구약과 신약을 이루고 교회의 전통이 되어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능력과 권세가 되며 진실함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체험(회심)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감독회장이 성령의 역사인가?
감독이 성령의 증언인가?
정치를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는 목사와 장로들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인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돈을 좇진 않았을 것이며 세상의 정치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감리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 사람의 자녀들이 활개하고 있으며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내일(5.18) 총회 실행부위원들이 모인다.
총회 실행부위원들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는 몇 명이나 될까?
성령의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말이다.
5.18은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날이라 한다.
과연 성령 운동이 일어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