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최세창
- 2906
- 2018-05-22 21:56:31
비참한 장면이 방영됐습니다. 이혼 판결을 받은 젊은 부부가 법원 건물 앞에서 서로 욕을 하며 아이를 맡으라고 상대에게 떠밀고, 아이는 울면서 엄마에게로 떠밀렸다가 아빠에게로 떠밀리고, 다시 또 엄마에게로 떠밀렸다가 아빠에게로 떠밀리는 모습이 반복됐습니다.
마태복음 24:12을 보면, 말세의 징조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첨단 과학 시대는 부자‧형제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인 천륜을 어기는 일도 많아지고,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모성애마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만큼 사랑이 절실한 때이므로, 사랑을 한다면 내 사람이 되기 쉽고, 전도의 결실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2. 신들린 딸에 대한 모성애와 주님의 사랑
예수님은 지중해에 면한 항구 도시들이자 로마의 식민지인 두로와 시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두로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메시아 시대의 복을 나눈다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도 메시아 시대의 복을 받는다는 예언은, 그 지역의 주민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치유와 축귀의 은혜를 받으려고 갈릴리로 왔을 때에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영생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시고, 신유와 축귀 등의 메시아적 기적을 행하시려고 두로와 시돈에 오신 것도 그 예언의 성취이었습니다.
그때에, 한 가나안 여인이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이 여인은 헬라인이자 수로보니게 족속인데, 고대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는 두로와 시돈을 포함하는 모든 땅을 가나안이라고 했으므로 가나안 여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신 주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로 믿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자신이 불쌍한 여인이기 때문에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참하게 신들려서 사람 구실을 못하는 딸 때문에,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한 것이었습니다. 실로, 이 여인에게는 신들려 심신이 병약한 딸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이었고, 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었고, 딸의 불행이 자신의 불행이었습니다. 딸은 능력 행함의 은사에 의해 흉악한 귀신이 쫓겨 나가지 않는 한, 회복이 불가능한 심신의 병 때문에 제 앞가림도 못했습니다. “안 됐지만, 저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본인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을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쓸모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딸의 문제와 고통과 불행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런 애물단지인 딸을 끔찍이 사랑한 훌륭한 어머니이었습니다. 말이나 마음으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 전체가 애물단지인 딸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첫째, 이 어머니의 사랑은 딸의 치유를 자신의 인생 목적으로 삼고, 성취하기 위해 자신과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신들린 딸 때문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심신의 고통을 겪으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백방으로 수고한 끝에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때에 믿음이 생겼고, 즉시 예수님께 나와서 간구했습니다. 마가복음 7:25에는,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둘째, 이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끈질긴 사랑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서 딸을 고쳐 달라고 애절한 심정으로 간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했지만,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치유의 능력자이시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여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랑의 중개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제자들은, 그 가련한 여인을 귀찮아했습니다. 예수님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쩌면 그렇게 사랑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제자들의 몸은 예수님과 함께했지만, 마음은 예수님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현대 교인들 중에도 몸은 주 예수님과 함께하지만, 마음은 주 예수님과 거리가 먼 이들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도, 심지어 주 예수님의 영생의 복음을 듣는 시간에도 마음이 좌파나 우파로 쏠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심령은 주 예수님께 쏠렸기 때문에 제자들의 박대와 배척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실상, 그녀에게는 주 예수님만이 볼일이 있는 존재이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별 볼일 없는 존재이었습니다. 여인은 끈질기게 주 예수님께 매달려서 응답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셋째, 이 어머니의 사랑은 한결같은 사랑이었습니다. 신들린 탓에 심신이 병약하여 애물이 된 딸인데도, 어머니의 사랑은 한결같았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거절하셨을 때, 철석같이 믿고 찾아와서 간구한 여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들려 병약한 딸을 고치기 위한 여인의 사랑과 믿음은 한결같았습니다. 거절당했다고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절하면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모욕적인 거절의 말씀을 하셨을 때에도, 딸에 대한 사랑은 한결같았습니다. 여인은 딸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겼고, 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부모, 특히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넷째, 이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지혜로운 사랑이었습니다. 자식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에 대한 분별없는 사랑이나 맹목적인 사랑, 본능적인 사랑이나 이기적인 사랑 때문에 자식을 망치는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랑이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의도가 여인의 믿음에 대한 시험이라 하더라도, 지독한 경멸을 의미하는 개들에 비유된 여인에게는 모독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화를 내거나 항의하는 대신에 놀라운 지혜로 응대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옳지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겁니다. 신유와 축귀도 행하시는 주 예수님의 복음이 먼저 이스라엘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특권을 인정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부스러기 은혜를 원하는 겸손한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여인의 지혜로운 대답은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일에 여인이 예수님을 딸을 고칠 능력의 주님으로 믿지 않았다면, 원망하면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주님의 능력으로 딸만 치유될 수 있다면, 자신이 개로 취급되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딸을 고칠 목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과 끈질기고 한결같고 지혜로운 사랑이 있고, 게다가 자신을 구주로 믿는 여인을 사랑하셨고, 그녀의 신들려 심신이 병약한 딸을 사랑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여인을 사랑하시되 그녀의 믿음이 확고해지도록 시험하시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여인의 간구를 들으셨을 때에 한 말씀도 대답하시지 않았고, 잠시 후에 거절의 말씀을 하셨고, 지독한 모욕을 의미하는 개들에 비유하면서까지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믿음은 흔들리기는커녕, 더 확고해졌습니다. 예수님의 거절의 표현이 강해질수록, 주 예수님께 대한 그녀의 믿음도 그만큼 더 강해졌습니다. 나중에는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하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주님의 말씀만 듣고도 이루어진 줄 믿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여인의 간구를 들으시고 즉시 해결해 주시는 대신에, 그녀의 모범적인 모성애와 믿음을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끈질기고 한결같고 지혜로운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받는가를 보여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특히, 그녀의 믿음을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한 여인의 지혜로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셋째, 예수님은 여인의 딸을 직접 대면한 적이 없으셨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메시아적 권능의 말씀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시편 107:20에는,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였고; 시편 33:9에는,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유의해야 합니다. 한 가지 사실은, 신들린 딸은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수고하며 괴로워하는지, 어떤 수모를 당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느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 사실은, 신들려 심신이 병약한 딸을 구하려는 어머니의 사랑도 목적의식도 끈기도 한결같음도 지혜도 딸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의 주님만이 그녀의 딸을 구하셨고, 또한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주님은 주님이십니다. 인간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고, 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자녀를 기도와 말씀으로 영생의 주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보다 더 큰 자녀 사랑은 없습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마태복음 15:21-28, 시편 107:20
21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20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마-계)/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TEL. 02-426-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