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의 도리(아내의 도리, 남편의 도리)

최세창
  • 3120
  • 2018-06-05 21:42:39
1. 시작하는 말

아내가 내 마음에 합하면 좋겠다는 남편과 남편이 내 마음에 합하면 좋겠다는 아내는 조화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을 떠난 개인의 자아 극대 실현인 자기 우상화나 자기 신격화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부부의 조화로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 아담과 한 여자 하와를 짝지어 부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 창조의 방편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부부의 조화로운 생활을 통해서 공생의 원리를 제시해 주셨고, 부부가 중심인 가정을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 교육과 훈련의 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성경 본문은 부부와 결혼을 앞둔 사람들, 그리고 무너지는 가정들과 불화와 반목과 별거 중인 부부들에게 절실한 말씀입니다.

2. 아내의 도리와 남편의 도리

아내의 첫 번째 도리는, 남편에 대한 순복입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복은 남녀 차별이나 남존여비나 여필종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서 비롯되는 순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남편의 뜻이나 요구가 주님의 뜻이나 요구에 상충되는 경우라도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5:22을 보면, 주님을 믿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남편이 아닌 주님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믿는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남편을 전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도를 순종하지 않는 남편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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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받게 하려면, 아내의 말이 아닌 순복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아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지 않는다면, 남편에게서 위선자라는 비난을 듣게 될 것이며, 따라서 남편을 전도하기는커녕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매우 친절하고 마음 좋기로 소문난 동네 의사 선생님이, 주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에 대해 제게 말했습니다. “전, 믿음이 없어요. 제 아내가 얼마나 교회 일에 열심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제게 대해서나 자녀 교육과 집안 일 등등 다 잘해 내는 데야 할 말 있습니까? 저까지 믿게 됐지요.”
아내의 두 번째 도리는, 아내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까 보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정결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1994년, 스트립걸 출신인 26세의 에너 니콜 스미스가, 89세의 텍사스의 석유 갑부인 하워드 마샬과 결혼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13개월 만에 남편 마샬이 죽자, 스미스가 남편의 부동산 중 절반의 유산인 2억7천5백만 달러(약 2천8백90억 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경호원이었던 크레이 스파이어스가, “스미스가 늙은 남편 몰래 자신 말고도 다른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과도 관계했다.”라고 폭로하는 바람에 유산을 받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13개월만 정결했더라면 약 2천8백90억 원이 생기는 것인데…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나라에도 아내의 도리를 남의 남편이나 총각에게 하느라 부지런한 주부들이 늘어나서 큰 문제입니다.
아내의 세 번째 도리는, 속사람을 단장하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값비싼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마음에 숨은 속사람을 썩지 않을 온유와 평온한 심령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남자들의 허세와 탈선에 못지않은 여자들의 사치와 허영과 탈선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경제계는 물론, 정치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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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나 사회 모든 분야가 서로 부추기며 함께 휩쓸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육계나 종교계조차도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느 아내가 바람났습니다. 신바람이 나서 싸돌아다니는 아내의 탈선을 알게 된 남편이, 원수를 갚겠다고 정부의 아내를 찾아가서 강제로 관계했다가 결국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며 정결하게 살기 위해, 속사람을 온유와 평온한 영으로 단장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 잠언 31:10에는,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속사람을 단장하며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순복하는 아내의 도리는,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이 아내의 도리를 지켰고, 사라도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복종했습니다. 따라서 남존여비 또는 남녀차별로 인한 박해에도 놀라지 않고, 주님 안에서 온유하고 평온한 심령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며 선하고 정결한 행실을 보이는 여인들은 사라의 딸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도리는 아내의 도리와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남편의 도리는 성령을 통해 얻은 말씀의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아내를 재산으로 여기고, 성욕 충족의 대상과 자식을 얻기 위한 도구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녀를 동등하게 창조하여 영육의 조화를 이루며 사는 부부로 삼으시고, 또 자녀의 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좇아 아내와 동거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남의 아내나 처녀와 동거하거나 바람피우는 남편들이 적지 않아서 큰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간부급 검사의 비리를 수사하던 중에,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과 오랜 세월 동거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인격과 지식이나 감투는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두 번째 도리는, 아내를 자기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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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일에나, 장차 영생의 은혜를 받는 일에나 아내가 동등한 동반자임을 알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아내가 신체적으로 더 연약하기 때문에 더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믿는 남편의 기도가 막히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아내에 대한 도리를 하지 않는 남편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통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상관없이, 어쩐지 맘에 들어서 맺어진 부부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인 부부의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도리를 가르친 말씀은,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정도로 충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유대의 여자는 법적인 권리가 없었고, 남편의 소유물이었으므로 남편은 아내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기뻐할 수 없는 언행만 해도,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헬라 문명사회에서, 아내의 의무는 남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었습니다. 게다가 더 기막힌 일은 지참금만 돌려주면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법률 아래서도 여성은 권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자녀를 죽이거나 살릴 수 있는 부권 아래 있었고, 결혼 후에는 그 권한이 남편에게로 넘겨졌습니다. 아내는 완전히 남편에게 예속되었고, 남편의 처분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의 감찰관인 카토는, “만일 네가 부정한 행위를 하는 아내를 붙잡게 된다면, 재판을 거치지 않고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썼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아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때려 죽였고, 술피키우스 갈루스는 아내가 한 번 얼굴가리개를 쓰지 않고 거리에 나갔다는 이유로 이혼하였고, 안티스티우스 베투스는 아내가 공중 앞에서 해방된 여자 노예와 말하는 것을 보고 이혼했습니다. 남편이 차가운 표정으로 아내에게 “네 물건은 당신이 가져!” 혹은 “네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면 이혼을 뜻했습니다.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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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하는 남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악법이나 악습에 대해 정치인들과 도덕가들과 철학자들과 종교인들도 묵인 내지 동조했습니다. 당시의 지성인들은 여자는 영혼이 없다는 무식한 주장을 했습니다.
성경은 부부를 서로 돕는 동등한 관계로 가르칩니다. 창세기 2:18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완벽한 에덴 동산의 아담을 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으므로, 도움이 필요한 그에게 돕는 배필을 만들어 서로 돕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남존여비도 남녀차별도 여필종부도 아닙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보다 열등한 비서라고 했습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심오한 사랑의 고백을 했습니다. 이는 또 하나의 나와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한 진리요, 영원한 현재의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맺음말

하나님께서는 남자인 아담에게 한 여자를 짝지어 부부가 되게 하셨고, 생명 창조의 방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속이나 획일이나 상하가 아닌 조화로운 삶을 통해 공생의 원리를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한 쪽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며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아내는 주님 안에서 남편을 순복하고, 남편은 주님 안에서 아내를 영생의 은혜를 함께 받을 동등한 자로 알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배우자가 또 하나의 나로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부 사이의 기본 도리를 지키고, 정결한 행위를 보이며, 내면을 단장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값진 부부가 되고, 모든 가정에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마-계)/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TEL. 02-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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