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전도학교 강의자료 : 아버지의 마음(전영배목사)

선교국
  • 7349
  • 2015-12-11 12:16:15
웨슬리전도학교 강의자료: 아버지의 마음(전영배목사)

전영배 목사 전도 강의


   아버지 마음

“아버지 당신의마음이 있는곳에 나의 마음이있기를원해요
아버지 당신의눈물이고인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바라보는영혼에게나의두눈이향하길원해요
아버지당신이울고있는어두운땅에나의두발이향하길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온몸이 아버지의마음알아 내모든삶당신의삶되기를”

  전도를 가능하게하는 전도의필수요소는 아버지마음과 아버지능력과 현장입니다. 
아버지 마음은 전도의 동기를 부여해 주고, 아버지능력은 전도의 원동력이 됩니다.

6.25전쟁 때에 한 미국인 종군기자가 한국에 참전하여 한국의 전쟁고아들의 참상을 본국에 알리기 위하여 참혹한 모습의 한국의 전쟁고아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이매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깨어질 적에 당신의 마음도 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 짧은 방송은 많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고 수많은 사람들이전쟁고아를 돕는 사업에 후원하였습니다. 그 기자의 이름이 밥 피어스였으며 그때 설립된 구호단체가 월드 비전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표현입니다.(요14:9,고후4:6)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는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비유로 이르시되”(눅15:1-3)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에게 둘려 쌓여 있으면서 저희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마음이 타는듯하여 한 가지도 아닌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5장25절부터 32절에 나타난 맏아들의 이야기는 누가복음 15장의 결론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깨어지고 상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위한 잔치에 들어가서 함께 즐기자는 아버지에게 맏아들은 노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   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v.29-30)
여기서 맏아들은 자기가“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없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자기 동생이 집 나간 상황에서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의 명을 순종하는 것은 집 나간 동생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둘째아들이 집 나간 상황에서 아버지의 마음은 자나 깨나 둘째아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분노하는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간절히 설득합니다.(v.32)
“아버지가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있으니 내것이 다 네것이로되 이 네동   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우리가 즐거워하고기뻐하는것   이마땅하다 하니라”
여러분! 이 말씀 앞에 맏아들의 반응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눅15:33(?)의 맏아들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본문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의 반응은 알 수 없지만 이 비유로 대표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반응은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주님의 설득을 거부하고 죄인의 친구로 오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즉 여기 비유로 말하면 맏아들이 탕자를 영접한 아버지를 죽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나 그들로 비유되는 맏아들의 반응이 아니라 오늘 읽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깨어진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하여만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맏아들 같고, 바리새인들 같은 우리에게서 더욱 깨어집니다.

예언자 요나는 니느웨를 쳐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심상치 않은 하나님의 의도를 감지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합니다. 그의 생각은 하나님이 원수의 나라 니느웨를 멸하시려면 그냥 멸하시면 될 것을 가서 쳐서 외치라 하심은 필경 니느웨를 구원하고자 하심임을 간파하고 다시스로 도망합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은혜로우시며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4:1-3)
요나는 이방 니느웨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알았으나 그 하나님의 의도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런 요나의 모습에서 역시 바리새인과 맏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선민 이스라엘의 영광이 이방에게 옮겨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요나를 하나님은 부드럽게 교훈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요나서는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는 요나가 이 하나님의 부드러운 설득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5장의 말미처럼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요나의 반응이 아닌 우리들의 반응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박 넝쿨과 같은 사소한 것에도 목숨을 걸고 애착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니느웨 12만 명의 영혼을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깨어진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12만 명의 영혼보다 박 넝쿨이 그렇게 귀하냐? 네가 박 넝쿨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기에 그렇게 아끼느냐? 나는 저들 니느웨의 영혼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노라 그러니 내가 그들을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최근에 저는 창세기 36장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루하게 펼쳐지는 에서의 후손들의 생소하고 어려운 이름들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니요, 나홀과 하란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만이 아니요 이스마엘의 하나님이며, 야곱의 하나님만이 아니요, 에서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심은 그들을 통하여 나홀과 하란, 이스마엘과 에서, 그리고 온 열방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도자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에 감동될 때 우리는 주를 위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크게 감동하셔서 아버지의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전도 현장에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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