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들기운동의 역사
선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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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23 15:29:21
맞들기운동의 역사적 배경
*존 웨슬리(1703-1791): holy club, 최소한의 생활비 외에는 모두 구제에 사용함.
“네가 살아있는 동안 모든 방법을 다하여 선을 행하라.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
1. 18세기 영국의 상황 : 산업화와 노동현장의 문제
= 탄광 : 4-12세의 아동에게 11-14시간의 노동이 강요되었다.
= 산업 : 전체의 1/3이 5-8세의 소년, 소녀
노동인구의 1/8이 지하실에서 살고 있었으며, 서너 사람이 한 침대 사용.
노동자의 평균수명이 15-22세
2. 활동
(1) 병자방문제도
1741. 4000명의 런던 감리교신자 중에서 자원자 선발, 46명을 선발하여 23개 지역을 담당하도록 했으며, 1주일에 3번씩 방문했다.
* 방문자 규칙
① 소탈하고 열린 마음으로 ② 부드럽고 인내하라
③ 병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 ④ 친절하게만 대하지 말라. 근면, 청결
(2) 교도소 선교
= 가혹한 형벌제도 : “어린나무 자른 죄, 5실링 훔친 죄, 토끼를 총으로 쏜 죄에 대해 목매달아 죽이는 형벌”(주로 가난한 자)
= 죄수방문을 감리교 신도회의 원칙으로 정함(1743년)
= 1778. 죄수에 대한 목회를 모든 감리교 설교가의 의무로 결정함.
= 활동내용 : 복음설교, 죄수상담, 사형수상담, 죄수가족 돌봄
(3) 무료진료소 운영
(4) 공동체 운동(foundary)
1748. 9명의 과부, 1명의 소경, 2명의 극빈층 아이, 2명의 종으로 시작.
1772. 극빈층의 도덕적, 사회적 조건을 높여주고 향상시키기 위해 poor house, 과부들을 위한 집, 설교가를 위한 집, 소년을 위한 학교, 병자를 위한 진료소, 직업소개소, 도서관, 신용조합, 교회를 설치했다. => 종합사회복지관
(5) 나그네 친구회(strangers' friendly society)
1785. 런던 집 없는 나그네, 병자, 가난한 자를 위해 조직했으며, 감리교 신도회가 설립되는 곳이면 이 봉사센터 지음 => 노숙자 쉼터(벧엘의 집, 여성노숙자쉼터, 폭력피해 여성쉼터, 가출청소년쉼터, 도시빈민선교 교회)
(6) 학교, 탁아소 설립
1748. 중산층이 아니면, 초등학교 이상 다닐 수 없는 여건이라 광부촌에 “NEW HOUSE"라는 극빈자 자녀를 위한 기숙사학교를 킹스우드에 세움.
1749. 두 개의 탁아소(day school), 소녀를 위한 고아원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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