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느티나무 아래서
이은재
- 1587
- 2008-07-29 12:04:19
장마비로 한바탕 쓸어간 수동시냇물은 이른 아침에는 설악산 계곡물처럼 맑게 보입니다. 수동은 아직도 반디불이가 나오는 청정지역이니까 주변은 시끌시끌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은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지켜야 할텐데 인간의 탐욕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입석연수원 관내에 300년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시냇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300년을 살아온 것입니다. 밑둥치에는 작은 터널만한 구멍이 있고 몇년 전 태풍에는 가지가 찢어져 고통스런 모습을 보였는데 보호수로 지정되어 시의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구멍도 막았고 가지들도 케이블로 잘 묶어두고 중장비가 와서 가지치기도 해서 말쑥하게 단장을 했습니다.
그 나무 아래에서 시냇물을 바라봅니다. 300년이 얼마나 긴 시간일까, 50여년도 이렇게 길고 힘든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살아왔는지, 참 대견하다, 놀랍다, 아, 그리고 한숨입니다...나무는 말이 없습니다. 문득 정호승의 나무에 관한 시가 떠오릅니다.
<벼락에 대하여> 정 호 승
벼락맞아 쓰러진 나무를 보고
처음에는 무슨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날
쓰러진 나무 밑동에서
다시 파란 싹이 돋는 것을 보고
죄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나무가 벼락을 맞는다는 것을
나무들은 일생에 한번씩은 사람들을 위해
벼락을 맞고 쓰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누가 나무를 대신해서
벼락을 맞을 수 있겠느냐
오늘은 누가 나무를 대신해서
벼락맞아 죽을 사람이 있겠느냐
300년을 살아온 나무를 보면, 그래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고마움, 안스러움, 미안함...
말없이 우리를 대신하여 벼락맞으며 살아온 나무, 그 나무는 이 땅의 민중들과도 같습니다. 권력자들을 대신해서 벼락맞으며 수천년을 살아온 이 땅의 무지렁이 백성들. 그들이 고맙고, 안스럽고, 미안합니다. 벼락맞아도 다시 새싹을 틔우는 그들이 있어 우리 역사를 지킬 수 있었겠지요. 그 한숨과 아픔을 가진 벗들이시여, 혹 살기가 힘들다고 느껴지시면, 이원규 시인의 지리산을 노래한 안치환의 노래를 들어보시고, 아무때든지 입석연수원 300년 느티나무 아래로 오십시오. 그냥, 놀러,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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