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자질 (개혁은 지도자를 바로 세우는데서 출발한다)

이재신
  • 2048
  • 2017-04-23 01:07:32
감독의 자질 (개혁은 지도자를 바로 세우는데서 출발한다)

난 개인적으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선거운동 전에는) 인물에게 아무개의 소개로 소중한 한 표를 어이없게 행사하고 말았다.
거두절미하고 아차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전 지방회에 그 분이 오셨다.
마침 나는 성찬보좌의 부탁을 받았지만 완곡하게 거절하고 단 아래서 성찬을 받기로 한 터이기에 그 분이 인사말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인사를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심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갑다고 여겨서 가운데 줄로 지나가는 길에 인사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뿔사 이 무슨 심각한? 착각이었던가?
중앙통로의 맨 가에 앉은 나는 안(못?)보시고 건너편의 큰? 교회 목사님을 한 사람 건너서까지 인사를 하고는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 사라짐은 동시에 내 눈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사라지는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자기 지지를 위해서 만나자고 할 때부터, 나는 어렵게 새벽에 인천에서 서울까지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해서 전철을 타고 미리 가서 기다렸다. 약속한 목사님이 약속을 잊은 덕에 그냥 돌아오는데 다시 전화가 와서 만났으니 순탄치 않은 미팅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미래의 지도자를 만나는 일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가벼운 수고로 여기는 것은 비단 나 뿐 아닐 것이다.
만나서는 소리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진 내게 솔깃한 제안(어린이 합창단을 조직해서 이끌면 어떻겠느냐는)까지 내놓는 통에, 무조건 세우겠다는 소개 목사의 큰 소리에 논공행상차원이 아니라 한 번 내 소리를 들어보고 냉정하게 평가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교단의 인재등용 차원?에서 써 먹어 달라고, 그 분의 제안에 비해 퍽이나 겸손을 떨면서 긴 조찬의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했다.

그 후 우리 지방 동문들의 모임과 그 분의 부친장례식까지 챙기는 열심?을 보였으며, 선거 당일에는 심판의 대상처럼 긴장하며 사모와 서있는 모습에 위로가 되기라도 할 량 한 표를 헌납?했다.
선거일에 이름까지 부르며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던 그 손이 갑자기 냉정한 얼굴로 지나치는 듯한 느낌은 소심하고 감성적인 내게는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짙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서 연회가 열렸으니 그 때는 아마도 잘 몰라서 못 보았을 수도 있으려니 하고 먼?자리에 앉아서 회의를 참관하던 둘째 날 오후, 정회 후에 계단에서 마주친 그 분은 역시 내 예상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냥 지나쳐 버려도 무방할테지만 짓궂게도 그만 난 테스트라도 하듯 그 분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해 버렸다.
역시 얼굴도 안 본 채 “감사합니다.”하는 형식?이 내 앞을 스치는 순간 “오 마이 갓”!!
내 어찌 저런 사람에게 나의 인격이 담긴 귀중한 한 표를 지불했던가 하는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게 아닌가?

거룩을 흉내라도 내듯, 떨리다 못해 울먹이기까지 하는듯하던 그의 가식적인?(적어도 내가 들을 땐 그렇다는 것이니 은혜로 들은 분 들은 용서하시기 바람) 목소리와 모습이 순간에 한 장으로 엮은 사진첩처럼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혹자들께서는 무슨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그러느냐?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로쓰 경이 말한 대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비단 그 약속은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가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본다.
자신이 약속한 것을 시간을 두고 달리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물론 난 전혀 기대하지도 않겠지만)
난 자녀들에게 늘 가르친다. 어디 가서라도 지인들을 아는 척하지 않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가장 못 난 사람이라고...
우리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먼 후배일망정, 날 못 본 사람이라도 먼저 가서 인사하는 것이야말로 내 작은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아왔다.

로마 감독이자 중세를 열고-그가 취임한 590년부터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 까지의 천여 년 간을 중세라고 일컬음) 교황제도를 시작한 그레고리 1세를 소개해 보겠다.
아직 영국이나 북부 유럽이 복음화되지 않았을 즈음에 그레고리 1세를 교황으로 삼고자 할 때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영국으로 도망?하려 했다.
그러나 도망가다가 붙잡혀서? 교황이 되고, 어거스틴(힙포의 감독인 우리가 잘 아는 어거스틴이 아님)을 대신 보내서 영국과 대륙의 복음화에 큰 공헌을 했다.

교계의 함량미달의 지도자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 그 책임의 중심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는 회개의 마음을 가져본다.

이전 최상철 2017-04-22 글을 삭제하며...
다음 현종서 2017-04-23 서울연회에서 기억에 남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