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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라고 할 수 있나
관리자
- 1948
- 2017-04-18 22:25:26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짜라고 얼씨구나 하고 받아먹었다가 큰 망신과 큰 손해를 본 사람들도 있고, 뇌물수수죄로 감옥에 간 공직자들도 있습니다. 교육자들과 정치인들과 군인들과 ‘사’자 붙은 사람들 중에도 표절이나 성적이나 학생 기록부 조작으로, 권력 남용이나 가짜 처방 등으로 공짜를 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갑질로 공짜를 탐하는 직장인들도 있습니다. 가짜를 진짜로, 혹은 가짜와 진짜를 섞어서 정상적인 이익보다 훨씬 더 많은 공짜를 탐하는 상인들도 있습니다.
철부지 때에는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철이 들면 받는 것이 부담스럽고, 오히려 주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사도행전 20:35 후반을 보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성경 본문은 우리 교인들이 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랑을 행함으로써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앉은뱅이 거지의 요구와 최대의 사랑의 선물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의 관습대로, 현재 시간으로 오후 3시에 함께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40여 년 동안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메고 왔습니다. 장애인인 그는 정신적으로도 온갖 번민에 사로잡혔고, 궁핍하여 성전의 미문에 자리잡고 구걸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투성이인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영적인 장애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만복의 근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손에서 떨어지는 한 푼, 두 푼이었습니다.
현대인들 역시 물질 만능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돈이면 안 될 것도 없고, 못할 일도 없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성공도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성공은 했지만, 정신없이 돈을 좇느라 인격이 만신창이가 되고, 돌보지 못한 배우자가 탈선하고, 자녀가 망가지고, 사랑도 우정도 믿음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잃어버린 성공! 더 값진 것을 잃어버린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잃어버린 성공은 하나님의 복이 아닙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이나 구원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육체적 욕구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둘째,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안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8:18 이하에, 부자요 관원인 청년이 나옵니다. 청년은 주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청년은 인생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부자요 관원인 청년은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영생의 주님을 눈앞에 두고 물욕 때문에 영생을 얻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우선적으로 주 예수님을 믿어 영생 구원은 확보해 놓아야 하지 않습니까?
셋째,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를 알고, 그것을 구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46 이하를 보면, 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메오가 나옵니다. 바디메오도 앉은뱅이 거지와 같은 불행한 문제가 있었지만, 예수님께 물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질렀습니다. ‘구세주여! 돈도 눈도 아닌 전 존재를 구원해 주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사랑을 갈구하는 그에게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장벽 중 장벽인 인의 장벽에 막힌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연 혹은 사물의 장벽이나 인의 장벽을 만나면 움츠러들게 마련이고, 포기하게 마련입니다. 불치의 병을 하나님의 저주로 여기던 사람들이 “네 주제에 무슨 메시아를 찾느냐? 시끄러워! 조용히 안 해!” 하며 윽박질렀습니다. 그렇지만 바디메오는 ‘에이!,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메시아를 찾나?’ 하면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기승을 떨면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더욱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윽박지르니까, 방해 세력을 만났으니까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고, 윽박지르는 방해 세력을 만났으니까 예수님이 못 들으실까 봐 더욱 크게 소리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합리적 생각이라는 게 별 것 아닙니다. 윽박지르니까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계속 멸시를 받으면서 비참하게 사는 것보다는 죽을힘을 다해 소리질러서라도 주님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지혜는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필요한 미덕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그를 부르라고 하셨고, 그 윽박지르던 사람들이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라고 하며 탄탄대로가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을 만난 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메오는 영생은 물론, 영과 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영혼 구원이 아닌 물질을 얻으려는 앉은뱅이 거지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물질을 주는 대신에, 그를 주목하여 “우리를 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보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 넘친 사람의 소리입니다. 누가 볼까 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불의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역경의 때에 “우리를 보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순경의 때에도 “우리를 보라!”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값진 승리가 절실한 때에도 “우리를 보라!”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남들에게 우리의 인생 모습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삶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교인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근무 태도가 어떻게 보일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목자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눈은 잘못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를 염두에 두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눈에 왕이 될 그릇으로 보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무엘 없이 제멋대로 예배했습니다. 또, 아말렉 왕 아각과 그 백성과 모든 가축을 다 멸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심판의 명령을 어기고, 백성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각 왕과 좋은 가축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백성들의 눈에는 소통이 잘되는 좋은 왕으로 보였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사무엘상 15:35 후반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라고 했습니다.
목사인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충격 아닙니까? ‘우리의 인격과 생활을 보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후회하시지나 않을까? 임원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시지나 않을까? 목사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시지나 않을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후회거리가 아니라 기쁨거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라고 한 것은 그들을 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쳐다보는 앉은뱅이 거지에게 외모나 인격이나 실력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앉은뱅이 거지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뛰어 서서 걷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두 사도가 “우리를 보라!”라고 한 것은 그들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 예수님을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보라! 우리 심령에 내주하신 능력의 주님을 보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안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또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자신 있게 “우리 안에 계신,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들 때문에 영혼이 병들거나 죽은 유력한 사람들에게 영생의 주님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이 누굽니까? 주님을 심령에 모신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이 뭘 하는 사람입니까? 주님의 사랑을 나누며 주님을 선물하는 사람입니다. 영생의 주님보다 더 큰 사랑의 선물은 없습니다.
4. 맺음말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믿고 순종한 앉은뱅이 거지는 물질이 아닌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 평생 걸어본 적이 없던 그가 걷게 됐습니다. 구걸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둘째, 성전과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던 그가,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셋째, 영생을 누리는 인생이 됐습니다. 천국을 확보해 놓고 사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앉은뱅이 거지의 복된 변화는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의 불행한 문제가 불평과 원망의 조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조건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심령에 모시고 사는 교인답게 사람들이 경탄할 수밖에 없도록 주님을 보여 주고, 선물하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