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선거의 민낯-두 번의 출마로 쓴 금액은 얼마인가?

이재신
  • 2741
  • 2017-04-25 06:20:19
감독선거의 민낯-두 번의 출마로 쓴 금액은 얼마인가?

서양 속담에 “궁전은 거짓으로 꾸며졌다”는 말이 있다.
비록 아주 오래 전이라도 역시 권력의 속성은 오늘날과 그리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경각심어린 교훈이리라.
능력도 없으면서 거기 오르려고 발버둥을 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 행복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야망이라고 여겨서 누가 함부로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그 선출과정만큼은 아무렇게나 덮고 지나가지 않는 시대라는 것도 잊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사회에서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면 비록 자기 돈이라도 그 금액과 용처에 대해서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아니 심지어 지금 대선의 논쟁거리들을 보면 문 재인 후보는 아들의 아파트 매입자금의 출처를, 안 철수 의원의 외동딸에 관해서는 재산내역까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또 그것을 공개하고 나서도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것은 없는지 세세하게 따지는 것을 보면 세상이 얼마나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는가를 알 수 있다.
비록 자기 재산을 증여했더라도 그런 정도이니 후보로서의 자기 자신은 어떠하랴?

교회는 흔히 은혜라는 것을 전가의 보도쯤으로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사실 성경은 세상보다 엄청나게 앞선 세계관과 우주관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역사가 흐른 후에 수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겠지만~~!
예로 모세가 광야에서 십부장 제도를 사용한 것이나 신명기의 법정신이나 모두가 다 훗날 인류문명사에 상당한 정도의 발전적인 틀을 짜는데 기여했다고 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행정학 교수는 십부장 제도를 현대 행정학의 모태라고도 일컫는다.

그런데 지금 교단의 실상을 볼라치면 어이상실 그 자체가 아닐까?
짜장면 한 그릇만 대접하거나 대접받으면 먹은 사람은 50배를 물어야 하고, 대접한 사람은 선거법 위반으로 엄청난 벌금은 물론 자칫하면 후보의 자격까지 상실해야 할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니 벌써 오래전부터 아예 그런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요즘이다.
우리는 어떤가?
버젓이 호텔에서 비밀도 아니게 공공연히 그 비싼 음식을 제공하고 제공받는 것이 과연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하는 것을 한 번 쯤이라도 아니 지나가다가도 생각이나 해보는가?

이미 사회에서 사용금액은 물로 심지어 후보자의 재산내역까지 낱낱이 신고하지 않으면 지원자격조차 얻을 수 없음을 상기한다면 섬김과 겸손, 공의와 진실로 세상을 앞에서 이끌어야 할 교회는 얼마나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형교회의 담임자도 아닌 그가 얼마나 큰 야망이 있었길래 두 번씩이나 출마했는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교회의 사이즈로 자격유무를 따지자는 것은 결코 아님)
다만 그 쓴 금액이나 내역에 대해서 상세하게 공개하는 것은, 감리회의 선거법의 미비를 핑계삼기 전에 교회의 그 거룩한 직임을 감당하는 최고의 자리에 앉은 사람으로서 밝힐 수 있어야 하는 것도 하나의 도의적이고 신앙적인 책무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참고로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단체로 호텔에서 대접받은 건에 대해서 회개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다시는 어떤 후보에게라도 그렇게 비싼 음식은 공여받지 않겠노라고~~~~~~~~!!!!
동료 목회자들이나 후배들이 우리 교회에 오면 몇 번 정도 우리 교회 밑에서 몇 천원 짜리 동태찌개를 대접받고 대접하면서, 나는 이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푸대접을 합리화?하곤 했다.
앞으로 감독후보든 누구든 같은 자세를 견지해 나갈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사용하는 돈은 분명한 계산과 원칙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준엄한 감시와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페인의 팔렌치아 대학에서 수학하고 교황의 성경해석 자문역을 맡았던 도미니크를 소개한다.
교황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수도원 설립 허락을 받고 1220년 볼로냐에서 1회 도미니크 회의를 열고, 걸식을 통한 청빈과 설교, 봉사를 통한 이웃 사랑의 양대원칙을 세웠다.
그가 죽을 무렵에는 60여개의 수도원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신앙 원칙이었던 걸식하며 전도하다가 볼로냐의 잿더미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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