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有 책임無라면 불한당, 적폐

이재신
  • 1671
  • 2017-05-01 19:06:29
권리有 책임無라면 불한당, 적폐

한국정치의 폐단은 어디서 왔을까?
강력한 대통령제 하에서 확보한 권한만큼 책임이 뒤따르지 못한데서 온 것은 아닌가 한다.
해방 후에 남북 공히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려면 일원화된 강력한 권력의 강제를 필요로 했을성싶다.
북은 공산정권이 들어섰지만 다행히도 남은 선거를 통한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기에 그나마도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똑같이 출발했지만 남북의 경제력이 48배나 차이가 날 정도이니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무한권력의 유혹을 못 이겨서 힘을 강화하려는 독재의 유혹에 넘어간 기득권 세력과 상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던 덕이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에 그들에게도 또한 감사할 일이다.
권한만 키우고 가급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독재자들에게 맞서서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짐작이 간다.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나?
국가의 예로 비교해 보자.
한 때 프랑스는 유럽의 저출산 국가들 중에도 가장 낮은 국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출산국(1.7명이던 출산율을 2014년 2.08명으로 높임)이 되었다.
비결은 간단하다.
비상사태까지 선포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양육한다는 개념으로 육아의 방법을 바꾼 것이다.
(빈곤과 사회적 약자들에 관해서 국가의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은 역사의 추세라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 유럽의 과도한 복지정책이 국가의 재정을 파탄내고 미래를 암울하게 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나 지금 보면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나 빈부격차, 생산성이나 행복도, 노인 빈곤율과 4차 산업, 심지어 출산율(2017년 현재 1.25명으로 세계 224국 중 220위로 꼴찌 수준)에서조차 유럽의 선진국 수준을 맞춰가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 나라 정부지도자들의 지난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스웨덴의 총리나 그 부인의 검소함을 tv에서 방영한 것을 봤는데 가히 그들의 근검절약의 수준은 마른 걸레를 짜고 또 짜는 정도라고 하겠다.
목적은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서다.
임기 동안 구두 두 켤레로 굽을 갈아가며 신고, 양복은 에리가 닳을 정도로 입는다.
집은 좁아터진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부인들 역시 남편들 못지않은 자린고비들이었다.
임기가 끝나고 나서는 총리실 표시가 있는 쓰다 남은 볼펜묶음을 반납하는 수준이니 공과 사의 구분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비교하여 교단의 지도자들은 과연 그들이 누리는 권리와 더불어 어떤 책임을 지고 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두룩한 권리에 비해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선교에 있어서, 미자립 교회가 문을 닫든 굶든 아무 상관없이 사는 것은 아닌가?
아니 오히려 부담금을 포함한 각종 의무?를 볼모로 은연중에 무능의 덫을 씌워 사기를 꺾거나, 암암리에 줄서기나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한 술 더 떠서 자기가 책임질 일이지 왜 남을 기대느냐고 질타하는 눈치는 아닌가?
국내의 미자립 교회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해외선교에만 공을 들이는 일부 교회들은 자기 영향력의 과시나 연장 차원이 아니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다. (물론 너무 은혜롭게 하는 교회들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같은 이들이 국가가 세금을 더 걷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대형교회들의 터무니없는 결산 축소신고와 비교됨)
국가가 이 정도일진대 교회가 그 반의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라면 핏대 세워가며 천국을 말 할 자격이 있느냐고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 아닐까?
목회로 돈 많이 모아서 좋은 집과 좋은 차, 좋은 자녀교육을 누리고 사는 것을 은혜로 착각하여 자랑한다면 그것은 아직 둘 중 하나도 알지 못하는 자세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목회는 세상의 경제영역과는 다른 선교영역임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s연회의 감독은 노골적으로 가능성 있는 중규모의 교회를 지원하겠다고 공언한다.
물론 될 놈? 밀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칫하다가는 세상의 경제논리(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거둔다는)로 비쳐질까 우려스럽다.
목회 시작까지의 과정은 누구나 아다시피 보통 일이 아니다.
어려서부터가 아니라면 적어도 신학교 가기 전까지 주의 종이 되려는 결심을 굳혀야 하고, 4년의 과정을 거쳐서 2년의 과정을 더 거치고, 졸업 후에도 부목인지 아니면 개척인지 그도 아니라면 목회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할지를 두고 아무도 모를 고민과 결단의 역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물질적인 투자 또한 빠뜨릴 수 없는 기본임에 분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성과 무사안일에 빠진 기득권자?들이 너무 쉽게 “교회의 숫자가 너무 많다”든가 “안 되니 포기하라”든가, 학연이나 지연의 관계로 이런 저런 혜택에서 배제되는 아픔이나 설움을 겪게 한다면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그게 왜 내(정책 결정에 영향을 줄 만한 위치에 있는 분들 중) 책임이냐?”고 화를 내실 분이 계시다면 더 기도하고 그 분의 뜻을 구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영국 출신으로 독일 복음화에 기여한 공으로 독일의 사도로 불렸던 윈프리드를 소개한다.
8세기 초부터 독일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그는 마인츠 지역을 크게 부흥시키고 대주교의 제안을 받았으나 또 다시 이교도 지역으로 선교하러 떠났으며 프리지아 이교도들에게 순교 당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야심 많고 제멋대로인 성직자들의 엄청난 저항을 받았으며 그들을 처벌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앙을 빙자한 야심가?들에게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된서리를 가했던 그의 엄격한 신앙자세는 역사의 큰 교훈으로 새길 만큼의 귀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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