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VII(고린도전서 15:35-43)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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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20 20:08:57
B. 부활한 몸의 본질[15:35-58]

이제까지 부활의 사실을 논증해 온 바울은 부활이 무슨 능력으로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 또 부활한 몸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특히, 부활의 몸의 본질에 대한 문제는 영혼 불멸설을 잘 알고 있던 고린도 교인들이 가장 큰 의문을 가지고 있던 것이므로 명백한 설명이 필요하였다.
바울은 부활한 몸이 생전의 육체를 지닌 몸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자연계의 생물과 천체의 사실을 들어 예증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부활 사상은 영혼의 불멸만을 시인하는 헬라 사상이나, 현재의 육체와 부활의 몸이 동일한 것이라고 믿는 유대적 관념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것이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자연계의 생물들의 몸의 형체와 천체의 종류를 만드신 것을 설명하고(15:35-41), 이어서 그와 같은 이치로 부활의 몸 곧 신령한 몸이 형성되는 것을 설명하고(15:42-50), 끝으로 죽음에 대한 영원한 승리를 논하고 있다(15:51-58).

1. 몸의 종류(15:35-41)

부활의 사실을 입증한 뒤에, 바울은 부활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해 논한다. 그는 이 부분을, 【35】[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로 시작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질문은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같은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묻기를]의 [누가]는 15:12의 주석을 보라.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의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36-41절의 내용이,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37-41절의 내용이 암시적인 해답이 되고, 42-49절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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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체적인 답변이 된다.
위와 같은 질문은 니고데모가 중생의 도리를 들었을 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한 질문(요 3:4)을 연상시켜 준다. 이러한 질문은 부활을 부정하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부활을 믿는 모든 사람들도 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해, 【36】[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라고 하였다.
[어리석은 자여]는 가장 중요한 영생의 진리인 부활도 모르면서 주제넘게 세상 지혜나 지식을 자랑하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참조: 1:22, 23, 26-29)에 대한 책망이다. 주님께서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 24:25)라고 책망하신 적이 있는 것을 볼 때, “그 말은 반드시 어떤 빈정대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C. Hodge).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의 [너](쉬, σὺ)는 매우 강조되었으며, 38절의 “하나님”과 대조되는 것이다. 이 문장의 의도는 ‘너 어리석은 자여! 네 자신이 뿌리는 씨가 죽어야 새싹이 나는 것(참조: 막 4:30-, 요 12:24)을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느냐고 나무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씨가 죽어 새로운 형체로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사람도 죽으면 새로운 형체로 다시 살아난다는 점 이외에 인간의 부활이 자연법칙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든가, “식물계에 있어서의 물질의 불멸성”(김용옥)을 인정한다든가 하는 등의 해석을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 물질은 불멸하는 것이 아니며, 한 번뿐인 인간의 부활은 오직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바울 자신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라고 하였다.
바울은 더욱 자세하게 【37】[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38】[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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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뿌려지는 씨와 거기서 싹이 나서 자란 식물과는 실체나 형체가 다르나 동일한 유기체이며, 각 씨의 장래 ‘[형체]’(소마, σώμα: 5:3의 “몸”의 주석을 보라.)는 씨를 뿌리는 인간이나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주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죽은 인간과 부활한 인간은 실체나 형태 등이 다르나 동일한 유기체이며, 부활한 인간의 형체(몸)는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주시는 것이다.
바레트(C. K. Barrett)는 “바울의 첫 번째 요지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더라도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요지는 몸이 항상 반드시 똑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몸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몸들을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지정하시고 선택하신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39】[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라고 하였다.
37절과 38절의 형체 곧 몸이 본절에서는 [육체](사룩스, σάρξ)로 변경됐으나 뜻에는 차이가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생활의 일반적인 조건들이 같은 현세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조차도 그 종류에 따라 육체(몸)의 형상들이 다르다. 그렇다고 하면, 차원이 다른 내세에 영생을 누릴 부활의 몸이 현세의 몸과 다를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이어서 바울은 【40】[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라고 하여, 하늘에 속한 몸들과 땅에 속한 몸들을 비유로 들고 있다.
[하늘에 속한 형체](σώματα ἐπουράνια: 하늘의 몸들)에 대해 (1) 천사 같은 존재들이라는 설,① (2) 천사의 능력들과 동등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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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H. Alford, “Findlay, Parry”(in G. D. Fee), “Stanley, Meyer”(in 이상근), A. Robertson and A. Pl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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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된 별들이라는 설,② (3) 변화된 몸을 가진 에녹, 엘리야, 영광의 세계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그리고 주님의 부활 후에 일어난 성도들이라는 설,③ (4) 해와 달과 별들이라는 설④ 등이 있다.
이 구절은 바울이 지상의 몸과 장차 하나님에 의해 입혀질 부활의 몸이 다르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므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존재들의 형체로 이해하는 (1), (2), (3)설은 적합하지 않다. 바울의 논지를 뚜렷하게 해 주는 (4)설이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이다. 고데트(Godet)는 “몸의 부활도 믿지 않는 독자들에게 천사의 이야기 같은 것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핫지(C. Hodge)는 “해와 달과 별들을 뜻한다는 견해에 대해, 그것은 사도로 하여금 현대 천문학의 용어를 사용하게 만든 결과를 낳는다는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반대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이 해와 달과 별들을 어떻게 생각했든지 그들은 그것들을 형체들(몸들)로 생각했고, 소마(σώμα: 몸)라는 말을 그것들이나 우주와 관련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땅에 속한 형체](몸)에 대해서는 바로 앞에서 언급하였다.
전자와 후자의 [영광](독사, δόξα: 2:7의 주석을 보라.)은 다르다. 여기서는 ‘빛남’, ‘현현’ 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D. S. Metz).
“바울은 여기서 창조 질서상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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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 Traub, cf. Héring, Conzelmann”(in G. D. Fee), C. T. Craig.
3) “Chrysostom, Tertullian”(in 이상근), A. Clarke, 米田豊.
4) J. Calvin, M. Henry, J. Wesley, C. Hodge, “Findlay, Hofmann”(in 이상근), F. W. Grosheide, R. C. H. Lenski, T. T. Shore, A. Barnes, W. H. Mare, D. S. Metz, S. L. Johnson, F. J. Dake, C. K. Barrett, G. D. Fee, 內村鑑三, 黑崎幸吉, 김용옥, 박윤선,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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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구속 능력에 대한 비유와 전주곡으로 생각하였다. 구속의 능력은 결코 창조의 능력보다 작은 것이 아니다”(H. D. Wendland).⑤
하늘에 속한 형체들과 땅에 속한 형체들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하늘에 속한 형체들도 각각 다른 것에 대해서, 바울은 【41】[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라고 하였다.
각각의 빛과 광택의 차이들은 한이 없다. “풍유를 좋아하는 교부들은 그러한 차이들을 성도들과 죄인들의 여러 가지 등급과 동일시한다”(G. D. Fee). 특히, 터틀리안(Tertullian)은 이 부분 전체를 비유적으로 취급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종들의 미래의 몸, 짐승은 이교도, 새는 순교자, 물고기는 물 세례를 받은 성도, 해는 그리스도의 영광, 달은 교회의 영광, 별들은 유대인의 영광 등으로 설명한 바 있다.⑥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바울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의 형체의 종류가 많은 것을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장차 부활시켜 주실 우리의 몸이 현재의 몸과 다른 영광의 몸인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2. 신령한 몸<15:42-49>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의 형체(몸)의 종류가 많은 것을 예로 들어, 하나님께서 장차 부활시켜 주실 우리의 몸이 현재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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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n 박윤선.
6) Tertullian, De Resurrection, 52,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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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다른 것을 설명해 온 바울은, 이 부분에서는 양자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은 35절 후반의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에 대한 답변이며, 시가의 형식과 같은 인상을 준다.
바울은 앞 구절을 받아, 【42】[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하였다.
[심고](스페이레타이, σπείρεται)와 [다시 살며](에게이레타이, ἐγείρεται)는 이하에 네 번이나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다. 원문의 정확한 뜻은 ‘심겨지고’와 ‘다시 살게 된다’이다.
[썩을 것으로 심고]는 늙고 병들고 부패하게 되어 있는 현재의 몸이 죽어 매장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웨슬리(J. Wesley)는 “여러 단계의 부패 작용을 거쳐, 원래 먼지였던 만큼 먼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심겨지고’는 씨앗이 땅에 뿌려지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표현이다.”라고 하였다.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는, 앞의 것과는 정반대로 부패하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웨슬리(J. Wesley)는 “다시는 용해되거나 사멸될 수 없는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바울은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하였다.

※ 출처: 최세창, 고린도전서(서울: 글벗사, 2001, 2판 1쇄), pp. 433-438.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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