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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의 길에서 벌거벗고 있는 사람들...
오재영
- 1528
- 2017-07-26 23:06:12
지금 미국의 시카고에서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공동체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이런 말을 하였다. “목사가 교회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건강한 자기 자신이다.”... “푸레드릭 부크너” 라는 영성작가는 또 이런 표현을 하였다. “남을 위하여 피를 흘리되 죽을 정도로 피를 흘리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을 때 의협심이 강한사람은 어떻게든 물에 뛰어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건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대개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죽는다. 그것은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구조하러 나섰다 해도 급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수영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아무소용이 없다.
급류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방법은 달리 있다.
우선 물 밖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안전조치를 취해야한다. 한손으로 나무둥치를 잡고 있든지, 아니면 끈으로 허리를 묶어 단단한 곳에 고정해 두든지, 아무튼 자기만은 절대로 급류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한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신속히 이모든 조치를 취해야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 손을 내밀거나 밧줄을 던지면 두 사람모두를 살릴 수가 있다....
오늘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소리를 높이며 온갖 선동으로 패악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 부으면서도 종국에는 자기부터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용기와 함께 무슨 숭고함까지 구비한 것 같아도 실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함께한 이까지도 소멸하고 만다.
우리보다 더 우리를 아는 교활한 사단과의 끊임없는 영적전투를 하는 구도자의 길을 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교훈을 마음깊이 새겨야한다. 이 의미 있는 예화는 타인을 돌볼 수 있으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즉 내가 안전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건져낼 수가 없기에 우선은 내가 먼저 튼튼히 서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분쟁 중인 “감신”사태의 관계된 구성원들을 보노라면, 그의 직분이 과거의 감독이든, 목사든, 교수든, 학생이든 허물어지는 데는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직분과 위치만으로 보면 그에 걸맞은 자기훈련과 함께 품격 있는 언행과 사회적 책임까지 생각하는 수련을 거쳤어야 함에도 하나같이 자기성찰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며 행동하는 이들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더욱이 학생들에게 본을 보여야할 일부교수들의 모습은 정말 실망을 넘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지금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영혼을 계도할 미래의 영적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선지학교에서 이무슨 추태들인가? 이들이 정녕 거듭남을 전제로 한 구도자들이 맞는가? 멀쩡한 대낮에 잡다한 구호를 붙여놓은 텐트 안에서 단식기도한다고 떠벌이고, 어떤 이는 종탑에 올라 변기통까지 들어 올리며 기도하겠다고 난동을 부린 이들도 있다.
이게 도대체가 계시와 신앙을 떠나 정신이 건강한 이들의 행태인가? 오로지 보이는 것은 상대에 대한 증오의 마음뿐, 선교의 대상인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다. 모두가 영혼 없는 이들의 참으로 가련하고 서글픈 자화상들이다. 기억하라,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나 마음에 미움과 증오를 품고 있다면 그것은 병든 사랑 일뿐, 본인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결코 유익이 되지 못한다.
분쟁의 원인 중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사들과 이사장의 행태는 더욱 한심하다.
이미 경험으로 자신의 지도력과 신뢰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 내려놓고 물러나면 되는 것을 무슨 미련 때문에 이사장자리를 서로 주고받고 하는가? 다시 받으면 실추되고 없는 지도력이 생기는가? 모두가 은혜로 인도하신 연륜에 맞지 않는 “표리부동”한 행태들이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시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역자의 길을 위해 본인뿐만이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들, 부모형제자매들의 기도와 염원을 모아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오로지 주님께 부름 받을 그 한순간을 위해 이 무더위 속에서 평생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면 이 큰 죄악들을 어찌 감당하려는가? 현존하는 미래의 희망이 되어야할 그들이 보이고 들리는 그 모습 때문에 실망을 넘어 절망할까 두렵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원죄의 본성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인생들이라면 자신의 삶의 위치와 자리를 지키지 않는 이들의 말로는 요즘 장마에 시세(時勢) 구분하지 못하고 아스팔트위로 기어 나와 본래의자리로 돌아가지못한채 햇볕에 말라버린 지렁이들의 신세와 다를 바가 없다. 자고로 개인이나 한 가정, 그리고 교회와 단체, 국가까지도 단지 허물어지는 이유가 외부의 영향만으로 파멸하는 경우는 없다. 내부에스스로 자신들의 위치를 떠나 이탈하여 이미 파멸의 토대를 준비했기에 외부의 적은 영향만으로 파멸하는 것이다.
지금 그 자리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가? 본인들의 지도력은 생각해봤는가? 스티브 옥포드는 “그리스도인의 리더십이란, 꿇은 무릎, 젖은 눈, 깨어진 심장에 있다.”고 했다. 또한 "진정한 리더는 임명되는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는 말도있다.
주님께 부름 받아 18세기 침체된 미국교회를 구한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글이다.
그는 당시를 가리켜 “이시대의 가장 커다란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는 자신이 외운 대사에 대해 그의 삶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자신의 대사대로 살아야할 의무는 더더욱 없다. 그 이유는 그가 말한 대사는 자신이 서있든 무대의 막이 내리는 것과 함께 끝이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배우가 아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만 하는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자기분수를 모르고 위아래 구분 없이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사마귀처럼 함부로 나대는 이들이 있다. 고사속의 수레주인은 사마귀의 ‘용기?’를 가상히 여겨 자신을 돌아보고 가든 수레를 돌렸다지만, 영적 전쟁터의 교활한 사탄은 자기 덫에 걸려든 영혼을 탈출시킨 예는 전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기에 각자 마음에 명심할 일이다.
그에 대한 수많은 증거는 멀리까지 가서 찾을 것도 없이 낮은 자세로 주변을 둘러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 시세(時勢)를 알고 주님의 엄위를 분별하는 이들은 조용히 각자 떠난 자리로 돌아가 엄위 앞에 무릎을 꿇을 일이다. 그것이 다른 누구보다도 구도자인 자신이 먼저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