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중요 성구: 마태복음 13:24-30(…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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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15 20:55:35
예수님의 비유 해설을 기록한 마태는, 이어서 다른 곳에는 없는 가라지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라지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설이 13:37-43에 나온다.
가라지 비유는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로 시작된다.
[비유]의 원어 파라볼렌(παραβολὴν)은 παρά(‘곁으로’, ‘넘겨’, ‘건네어’)와 βάλλω(던지다)의 합성어이며, 한 사물을 다른 사물 곁에 두어 비교함으로써 깨우치는 방법을 의미한다. 비유는 예수님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자들이 사용한 것이었다(삼하 12:7, 사 5:1-7). 바클레이(W. Barclay)는 “예수님과 같은 시대의 위대한 학자이며 교사인 랍비들도 종종 그들의 교훈을 인식시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①라고 하였고, 또 “예수님은 앞서 사용된 비유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신 것이 아니라, 평범한 유대의 교수 형식을 취하여 새로운 의미와 아름다움으로 채우셨다.”②라고 하였다.
{하늘의 의미를 가진 지상의 이야기인 비유(W. Hendriksen)는 듣는 사람의 이해력이 아니라 영적인 응답을 시험하도록 고안된 것이다(R. A. Cole).}(막 4:2의 주석).
[천국](ἡ βασιλεία τών οὐρανών)은 본서의 독특한 용어이며,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 ‘하늘나라’, ‘주의 나라’ 등과 같은 말이다.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예수님의 교훈의 기본 주제이다(W. W. Wessel, H. E. Luccock). 비록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가 구약성경이나 외경에 나타나지 않으나, 그 사상은 양쪽에 풍부하다. 구약성경에는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 무궁하시도다”(출 15:18),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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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W. Barclay, and Jesus Said(Edinburg: The Saint Andrew Press, 1972), pp. 10-11. 랍비들이 사용한 비유를 몇 가지 소개하고 있다. 또한, 복음서의 비유들과 유사한 랍비들의 비유도 소개하고 있다.
2) Ibid.,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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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도다”(시 103:19),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시 29:10),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사 43:15),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사 52:7),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 145:13)와 같은 진술로 가득 차 있다.
그러한 문장들에 대한 고찰은, 주님의 왕권이 현재적 실재(하나님은 지금 자기 권한을 행사하신다)와 미래의 소망(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통치하실 것인데, 그때에 그분은 자신의 통치를 거역한 모든 것을 진압하실 것이다) 둘 다임을 드러내 준다(W. W. Wessel).
현재(마 12:28, 눅 11:20, 17:21)와 미래(마 13:41-43, 20:21, 막 9:1, 47, 14:25, 눅 22:16, 18, 요 14:2, 18:36, 고전 15:50, 고후 5:1, 갈 5:21)로서의 하나님 나라 사이의 긴장은 예수님의 교훈 속에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그 성격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었다. 즉, 유대교 개념처럼 육적이며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영원한 나라이었다(E. Schweizer). 하나님 나라는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이다.③ 이 통치는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인격적 관계이다.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이며, 이 실제적 구현이 곧 예수님의 인격과 교훈과 생애이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라고 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움직여져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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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 E. G. Swift, “Bruce, Metzger”(in W. W. Wessel), W. W. Wessel, W. Hendriksen, C. R. Erdman, D. W. Burdick, R. McL. Wilson, 山口 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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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막 1:15의 주석).
이어서 예수님은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라고 하셨다.
[원수] 곧 마귀는 디아볼루(διαβόλου)이며 사단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마가와 바울을 비롯하여 신약성경 기자들은 인격적인 악의 왕으로 믿었고(마 4:1, 3, 5, 8, 눅 4:2, 3, 6, 13, 8:12, 벧전 5:8, 롬 16:20, 엡 4:27, 히 2:14, 약 4:7, 요 13:2, 27, 요일 3:8, 10, 12, 5:18, 19, 계 12:9, 유 9), 예수님 또한 그렇게 믿으셨다(마 6:13, 13:39, 25:41, 막 3:23, 26, 4:15, 눅 4:8, 10:18, 11:18, 13:6, 22:3, 31, 요 8:44).
사단 곧 마귀의 별명은 ‘바알세불’(마 12:27), ‘뱀’(고후 11:3), ‘용’(계 12:3), ‘벨리알’(고후 6:15), ‘악귀의 머리’(막 3:22), ‘이 세상의 왕’(요 14:30),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원수’(계 11:12), ‘악한 자’(엡 6:16), ‘대적자’(벧전 5:8), ‘고소자’(계 12:10), ‘시험하는 자’(마 4:4), ‘거짓말쟁이’(요 8:44), ‘속이는 자’(계 12:9), ‘살인자’(요 8:44) 등이다.
이 외에 마귀를 표시하는 다이모니온(δαιμόνιον)은 복수로 사용되어 그 수가 많은 것을 표시하며, 사단의 부하들로 취급되고 있다.
사단(마귀)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초자연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들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짓을 한다(욥 1:6, 슥 3:1, 마 4:1-, 13:39, 눅 4:1-, 8:12, 요 13:2, 행 10:38, 엡 6:11, 딤전 3:6, 7:11, 딤후 2:26, 3:3, 살전 2:3, 약 4:7, 벧전 5:8). 그는 죽음의 권세를 가진(히 2:14) 이 세상의 통치자이지만, 그리스도에게 결정적으로 패배를 당하였다(마 25:31, 유 9, 계 2:10, 12:9, 12, 20:2, 10).
또, 마귀의 모든 활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고전 5:5, 고후 12:7). 예를 들면, 마귀는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주어(요 13:2),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팔게 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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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원 계획에 이용된 꼴이 되고 말았다.
그와 같이 마귀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원대하고도 심오한 섭리를 위해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할 운명에 처해 있는 존재이다(계 20:10).
가라지는 지자니아(ζιζάνια)이며 질이 나쁜 밀이나 팔레스틴의 밀밭에서도 자라는 독보리를 가리킨다. 가라지 곧 독보리와 밀은 모양이나 성장 과정이 흡사해서 열매를 맺어야 확실하게 분간된다.④
이어서 예수님은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가라지(독보리)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라지는 밀과 모양이나 성장 과정이 흡사해서 열매가 익어 갈 때에야 눈에 띄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한 자와 악한 자,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진리를 전하는 자와 사설을 전하는 자, 진실한 자와 거짓말쟁이, 순수한 자와 위선자, 선물을 주는 자와 뇌물을 주는 자,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 등은 각각 서로 흡사하기 때문에 그 열매인 행실을 보아야 분별할 수 있다. 바울은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⑤라고 하였다.
가라지를 본 종들에 대해, 예수님은 【27】[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라고 하셨다.
집주인의 종들은 좋은 씨를 심은 밭에서 익어 가는 가라지가 어디서 생긴 것인지 알지 못해서 집주인에게 질문하였다. 그들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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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참조: A. Barnes, E. Schweizer, 黑崎幸吉, R. Earle, 마태복음(비콘 성경 주석, 6).
5) 저자의 고린도후서 11:14-15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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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질문은 악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음을 강조해 준다”(E. Schweizer).
바로 알아챈 집주인과 종들의 대화에 대해, 예수님은 【28】[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하였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하는 주인의 말을 들은 [종들]은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하였다. 집주인의 종들로서 당연한 질문이고, 또한 그렇게 할 각오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선의와 열의와 책임 의식이 있다고 해서 일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일을 감당할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클라케(A. Clarke)는 “분별없이 서두르는 열심은 엄한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것만큼이나 두려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29】[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라고 하셨다.
주인이 선의와 열의를 가지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하는 종들의 행동을 막은 것은 가라지를 뽑는 중에 곡식이 뽑혀 나오거나, 가라지인 줄 알고 곡식을 뽑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주인은 많은 가라지가 뽑히는 와중에 행여 뽑힐지도 모르는 한두 곡식을 염려하였다. 그러나 가라지를 항구적으로 그냥 두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면 가라지와 곡식은 따로 처리될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해, 예수님은 【30】[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라고 하셨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는 곡식 곧 선과 의와 진리와 참과 순수와 선물과 경건 등에 해당되는 자들과 가라지 곧 악과 불의와 사설과 거짓, 위선, 뇌물, 불경건 등에 해당되는 자들을 결정적으로 심판할 때까지 공존하게 두라는 것이다.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는, 결정적인 심판의 때에 먼저 가라지에 해당되는 자들을 지옥의 불못(계 20:14-15)에 던져 넣기 위해 한군데에 모으고, 곡식에 해당되는 자들을 한군데에 모아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1판 1쇄), pp. 402-404.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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