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대통령 518 진상 조사 명령 왜 잘못인가?
이경남
- 2297
- 2017-08-28 09:38:57





택시 운전사와 JTBC의 광주 폭격설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부에 진상 조사를 명령하였다 대통령이 명령한 진상 조사의 내용은 세가지이다 하나는 발포 명령자 조사 둘은 전일 빌딩 헬기 사격 조사 그리고 세번째는 광주 폭격설 조사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518 진상 규명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조사이다 518 항쟁 동안 진압군의 만행과 민간인 희생이 크고 이를 통해 집권하다 비자금 사건으로 몰락한 신군부 세력에 대한 증오가 크다보니 518을 신성시하려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그후 드러나는 여러가지 정황들과 부인하기 어려운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북한군개입을 부인하고 은폐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북한군 개입설을 부인하던 내가 판단을 바꾼 것은 세 사람의 기관총 사수와 리을설 사진을 통해서인데 그 후 이 일을 조사하며 이미 북한군 개입에 대한 여러 증언들이 있었음을 발견할수 있었다 2014년 발견된 사진들 외에도 북한군 개입의 정황들은 많다
하나 1994년 7월 망명한 강명도는 북한 내각 총리 강성산의 사위였는데 망명 후 우리 나라 정부 기관에서 “북한이 518 광주 소요 사태를 계획하고 지휘하였다”는 진술을 했다(CIA 요원 마이클 리의 증언)
둘 1997년 4월 20일 망명한 황장엽(김일성종합대학총장,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과 김덕홍(북한여광무역연합총회사 사장)의 증언이다
황장엽은 1996.11월 월간 조선 김용삼 편집장에게 보낸 메일에서 광주 학생 운동은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공명주의자들이 책임을 전가한 일이라고 하였다 1998년 7월 월간조선 김용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광주 사태를 지휘하고 노동당 대남 공작부서 사람들이 사태 후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였다 김덕홍은 구체적으로 누구의 조작에 의해 광주 문제가 생겼는가? 물론 많은 시민들이 민주화 투쟁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 앞에 책임질 장본인이 있다 북한에 이런 것들이 다 기록되어 있다 라고 진술하였다(마이클 리와 김용삼의 증언)
셋 북한 인민무력부 부참모장 박승원 상장이다
2000년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 때 북측 대표로 참석한바 있는 그는 1988년 10월 평양 인민 궁전에서 열린 대남 영웅대회에서 518 광주 항쟁 참전 공훈담을 발표한 사람이기도 하다(마이클 리의 증언) 그러나 2015년 북한의 대대적인 고위 인사 숙청을 피하여 모스크바 제 3국 대사관을 통해 망명 입국하고 우리 나라 정보 기관에서 조사를 다 마쳤다는 보도가 체녈 A 를 통해 잇었다
넷 전북한군 하사 박행운의 증언이다 탈북인 16명이 쓴 화려한 사기극 518의 실체라는 책에서 그는 자신이 들은 일을 진술하고 있다
광주 봉기가 한창이던 어느날 중대병실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광주봉기 참가자들이 장갑차를 끌고 다니는 장면이 나오자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중대군 인들이 갑자기 일어나서 박수를 치면서 환호를 했다고 한다. 중대 군인들중 에서 성근이보다 몇년 선배인 사관장이 텔레비전에다가 손짓을 하면서 고성을 질렀다고 하였다.“야, 저거 광수가 아니야? 광수가 어떻게 저기 나가있어. 저자식이 별을 달고 승진해서 어느 분계선 일대의 특수부대로 간다고 하더니 저기나가 있네.세상 일은 모르겠다.”라고소리치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수의 얼굴을 보고너무반 가워서 어쩔줄 몰라 하는 것이었다. 성근이는광수보다 까마득한 후배이기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자기도 뉴스에서 나오는그의얼굴을 보면서 자기네 부대 출신이라 너무도 신기하게 생각했었다고 하였다.그때 광수는 머리를 기르고 있었지만 그와 생활했던 중대의 구대원들은 모두가 다 광수를 정확히 알아봤다는 것이었다.성근이를 비롯한 중대 사람들은 그날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광주 폭동이 가열되고 있는 장소에서 광수가 장갑차에 올라서 괴뢰군들의 총을 들고 있는모습을 보면서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고말했다. 남조선에서 벌어지는 인민 항쟁에 어떻게 되어서 북한에 있을 사람들이 나가서 참가하고 있는지 참으로 희한안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고말했다.부대에서 한가마 밥을 먹던 사람이 광주에 나가서 총을 들고 싸우는 것을 본 성근이네 중대 사람들은 그때부터 광주 사건이 남쪽에서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만든 것이 아니라 북쪽에서 특수부대 사람들이 나가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광주 폭동 현장에서,광수를 봤다는 이야기가 자랑처럼 부대내에 퍼지자,지휘관들은 밖에 나가서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입단속을하였다고 하였다.
다섯 장형태 당시 전남도지사의 증언이다
“당시 복면을 하고 다니는 자들이 다수 있었는데 그들이 보복을 두려워하거나 또는 경찰에 얼굴이 알려진 잡법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하였지만 북과 관련된 불순세력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당시 변두리에 붙은 벽보에 북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등장한 점, 또 5.21. 헬기를 타고 있을 때 헬기무전으로 교신내용이 들어오는데 ‘지도반 여기는 지도반’이라는 내용이 들여 온 적이 있는데 당시 조종사가 이것은 북에서 보내는 것이라고 하여 저가 불순세력이 접근을 시도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하였습니다”(전남도지사 장형태 1997.3.27.검찰 진술 전두환 회고록 1권 530쪽)
여섯 1980년 3월 28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다.
‘올봄, 북한 대규모 간첩단 남파…북괴, 특수부대 훈련강화’라는 제하의 기사다. 이 기사는 일본 신문 ‘통일일보’를 인용한 보도다.
[북한의 잇단 무장게릴라 남파는 지난 가을 확정된 김철만 북한군 상장을 책임자로 한 대남특수전 전개방침의 일환이라고 동경에서 발행되는 통일일보가 북한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28일 보도했다. 북한의 이 특수군사작전은 당초의 계획으로는 80년 봄을 목표로 다수의 무장게릴라를 남파, ‘자발적인 의용대’로 위장시켜 한국의 정치혼란에 편승, 각지에서 ‘인민봉기’를 주도하려는 것이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북한은 지난해 5월 이후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소위 ‘혁명적 전야’라고 규정한 올봄을 대혼란의 시기로 보고 김철만에게 모든 특수부대의 지휘권을 맡기는 한편 비정규전부대를 재편성, 훈련을 강화해 왔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일곱 그러나 이 모든 정황들보다도 더 확실한게 2014년부터 발견된 북한군사진들이다 위에 실린 사진들은 5월 22-23일 어간에 광주 시내에서 동아일보 기자가 찍은 사진이고 또 하나는 2010년 5월 17일 평양 중앙 노동자 회관에서 열린 광주 인민 봉기 30주년 기념식에서 광주 영웅 세사람이 맨 앞의 로얄석에 앚아 있는 사진인데 우리 나라 연합 뉴스에 실린 것이다 20 사단 짚차를 탈취해 무전기까지 싣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세 사람과 평양의 세 사람은 동일인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사진들을 통해 북한군 개입설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살펴보고 각지 판단하기를 바란다
내가 지금 정부에게 발포나 폭격같은 그런 문제만 아니라 이 북한군 개입도 조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 518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공정한 자세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518을 한편으로는 군정 연장을 꾀하는 신군부와 진압군들의 난폭한 폭력에 맞서 싸운 민주 항쟁으로 이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국가적인 혼란 속에서 북이 게릴라 활동을 통해 사태를 악화 시킨 사건이라고 이해한다 지금 택시 운전사에 열광하는 우리 국민들이 518을 오직 민주 항쟁의 측면에서만 이해하며 북한군 개입 주장을 배척 조롱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또 정부나 국정원같은 국가 기관이 북한군 개입의 문제를 정치적인 판단으로 외면하고 은폐하는 것은 군사 안보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고 아주 사악한 일이라는게 내 판단이다 더 그리고 이런 사태에 우리 나라의 방송 언론과 소위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선동 동조 침묵하는것은 견딜수 없는 악이요 위선이라는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