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나라를 구한 기도

관리자
  • 1453
  • 2017-09-19 22:12:21
 






1. 시작하는 말

어느 나라에나 통치자와 각종 지도자들 중에는, 감투를 부정축재의 방편과 억압하고 싶어하는 병적 심리를 충족시키는 방편으로 삼고, 제 돈이 아닌 세금으로 선심 아닌 선심을 쓰는 못난 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증상이 심해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그 만큼 더 심한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통치자와 각종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사람들의 유익과 피해,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각종 지도자들, 특히 통치자는 엄청난 책임감과 중압감을 감당할 각오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 왕국 유다의 왕으로서 고통스러운 병으로 죽게 된 히스기야는, 남보다 더 극심한 고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앗수르의 침공도 막아야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종이자 사람들의 목자와 히스기야 왕의 기도

히스기야 왕의 죽을병에는 그의 막강한 통치권도 재력도 기라성 같은 현관 대작들도 소용없었고, 명의들과 백약과 민간요법도 전혀 소용없었습니다. 하릴없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나 막연히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 즈음에, 하나님께서 아모스의 아들인 이사야 선지자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전하다가 무슨 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계시 내용을 히스기야 왕 앞에 나아와 정직하게 전했습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막연히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나 바랄 수밖에 없는 히스기야 왕이었기에, 그 말씀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노하여 죽일 수도 있는 왕에게 하나님의 치명적인 말씀을 정직하게 전한 이사야 선지자는, 참 하나님의 종이자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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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참 목자입니다. 그의 정신과 태도는 영적 지도자인 목사는 물론, 모든 통치자와 지도자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요 태도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충격적인 계시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야 책망보다는 칭찬을, 닥쳐올 시험에 대한 경계보다는 축복의 선언을, 병이 있다는 말보다는 건강하다는 말을, 죽음의 선언보다는 더 산다는 선언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망할 때 망하더라도, 병들 때 병들더라도,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은 귀에 달콤한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실은, 하나님께서 불행한 일들을 피하거나 막거나 이용하라고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참 종이요 사람들의 참 목자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는 지도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교인들의 마음에 합하는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목자가 참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5을 보면,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없어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맞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인들이야 목사의 정체성을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 특히 교인들을 위해 교회마다 영적 지도자인 목사를 세우시는 것을 아는 교인들과 사람들은 목사의 정체성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목사인 하나님의 종도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피조물들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기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르치고 지도하며 양육하고 보호하며 천국으로 인도하는 섬김을 하는 목자 노릇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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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목사의 정체성을 바로 아는 것은 목사에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참 하나님의 종이요, 왕에게도 참 목자이었습니다. 왕 앞에서, 그것도 하나님의 사자가 왔다는 말에 복된 소식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는 왕 앞에서, 감히 죽을 테니 유언이나 남기라고 전한 겁니다. 이사야라고 죽을병을 앓고, 앗수르의 침공에 맞설 왕이 듣기 좋아할 말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안 한 것은 사람들의 목자 이전에 하나님의 종임을 알고, 하나님의 종답게 하나님의 지시를 죽을 각오로 복종하는 것이 사람들의 참 목자 노릇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에게 인간적인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씀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을 걸고 정직하게 전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종인 목사가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는 것이 유익과 복을 얻게 하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속수무책으로 죽어 가던 왕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기대를 걸었는데, 그나마 죽음의 선언이니 그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이판사판이니 대노하여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펄펄 뛰면서 이사야 선지자를 해칠 만도 한데, 오히려 왕은 엄숙하고 진지하게 이사야 선지자의 전언을 받아들였습니다. 역시 살 사람이나 복 받을 사람은 어딘가 다른 데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왕은 죽을 테니 유언이나 남기라는 전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결사적인 기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왕은 어떤 방해도 안 받으려고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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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향하고,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했습니다.

여러분, 가정이나 직장에서, 기도를 들어주실 만한 주님 앞에서의 진실과 전심과 선으로 행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런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왕과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덤의 복이 훨씬 더 엄청납니다. 앗수르 왕의 침공에서 나라까지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침공으로 무수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죽거나 부상당할 것을 막아 주신다는 것이고, 약탈과 방화 등으로 재산을 잃을 것을 막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성취의 증거로 아하스의 계단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5:15을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의 기도가 마음에 맞을 경우에 기도한 것은 물론, 그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을 덤으로 주시는 은혜는 오늘날이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인천에서 시무하던 모 교회에 장OO 집사가 있었는데, 부산에 사는 친정집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친정아버지가 허리가 아파서 서울의 어느 물리 치료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장 집사님 집에 거하셨습니다. 장 집사님이 제게 안수기도를 해 주실 수 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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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밤에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안수기도 중에 워낙 영적 싸움이 심해서 물어보았더니, 불교를 열심히 믿는 집안이고, 할머니는 보살이라고 했습니다. 안수기도를 할 때마다 불같은 성령을 체험하면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도 못하면서 그냥 옆에 있던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덥다고 하더니 무릎이 쑤시고 아프다면서 방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따라 들어가면서, “어머니가 먼저 고침 받겠다.”라고 하고는, 무릎에 손을 대고 기도하자고 하는데 막무가내로 거부했습니다. 장 집사와 겨우 설득해서 기도하고 나자, 아픈 것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신기해했습니다. 늘 먹던 두통약도 끊게 됐습니다. 그 바람에 친정 할머니를 비롯한 모든 친정 식구들이 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 낫기를 위해 간구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게다가 훨씬 더 중요한 한 가족의 영생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3. 맺음말

위기의 때일수록 지혜로운 결단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잠언 9:10 이하를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적인 것들에 건 모든 기대가 끊어지고, 좌절감에 빠질 때야말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좋은 기회입니다. 인간의 최악의 상태란 하나님께는 최선의 기회입니다. 인간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란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과 능력에 비추어 나온 판단일 따름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는 인간, 특히 믿는 자녀를 위한 사랑과 능력을 확실히 보여 줄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포기하는 대신에,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죽음을 맞는 때야말로 영생의 주 하나님을 더욱 확실히 믿고, 영원한 운명을 맡기는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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