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즐거움

현종서
  • 1152
  • 2017-10-25 20:00:16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포럼(종교교회에서 열린)에 참석하여 여러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과 만남이 있었다. 이런 공공모임에 자주나타나는 필수 평소 인물과 숨어있었던 전문인들, 또 지면으로 이견을 주고 받던 이들, 또 이로 인해 새롭게 알게 된 이들과 그들의 이야기 를 들으면서 새로운 공감을 얻기도 한다.

강사들의 이야기는 글을 보면 알지만 대면하여 만나면 또 다른 정신 세계가 있음을 보게 되고 또 청중도 생각과 할말이 있다는 것을 강사도 알게 되어 자기의 학문방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강의를 통해 루터는 성경을 성경으로 또는 성령의 감동으로 또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과 은혜의 구속과 구원의 은총으로 읽었다. 이성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일단  아멘으로 받고 그런 일도 차차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말테 리오 루터대 독일인 교수가 있고 그는 무슨말을 하는 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부수적으로 얻게 되었다. youtube.com  통해 그의 의견을 들어보니 루터전공인의 한국교회및 사회이해가 어떠하며 그가 제안하는  해결방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면서 공감을 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평가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을 아는 외국인의 시각은 우리를 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일부로서 우리도 모르게 어느한 편에 많이 기울어져 있을수도 있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 할 수도 있다. 그런면에서는 한국민으로서의 어떤 특정 환경체험과 인간교제속에 이해 관계가 없으므로 그야말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가 있다고 보여 그의 말을 비중있게 경청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때 유교주류의 사회였으므로 성경번역도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현금에 이르러선 유교적 정신틀(농경사회에 맞는)이 많이 무너진 사회에 이르 대체할 정신적인 기반역활을 할 것이 없으면 사회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인데 물론 이를 대치할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윤리가  서게 되면 괜찮은 데 이것이 미비한 상태라는 지적이다. 성경의 말씀이 사상과 생활속에 여전히 충분히 토착화되지 못한 상태임을 지적해 주고 있다.

다른 말로 "말씀의 생활화"가 안되어 있다고 표현할 까? 또는 말씀의 가치관이 우리의 사상과 삶에 충분히 소화 되지 않은 상태라 할 까?  일부 도시 목회자들이 목회의 축복을 누리게 된게 개인의 탁월한 능력만이 아니라, 농경사회가 갑작스러운 산업사회로 바뀐데도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대교회를 이룬이들이 축복을 즐겨 누렸으나, 농어촌 교회의 피폐 현상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적극돕지 못한 면이 있고, 거기에 덧붙여 도시 개척교회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같은 공동체 의식, 형제 의식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사회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같이 일어나고 있고  전체적으로는 교회의 위축과 성장정지및 하향 곡선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본다.이것은 기독교 윤리적인 입장에서 보는 시각일 것이다.

한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몬몸이 아프다는 기본 인식을 잊고 사는 우리들은 아닐가?

우리 한국 개신교회는 종교개혁 당시 개혁의 대상이었던 캐톨릭 교회처럼, 개혁의 대상이 되어있다고 보는 데, 그 개혁을 어떻게 이룰가하는 것이 문제이다. 일단 종교개혁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본다. 수많은 그릇된 진단과 기성교회의 약점을 치고 들어오는 이단의 창궐 또 좌시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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